#5. 좋은 글감이란?!
목차를 대략 구성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을 시작할 차례였습니다. 처음 한 일은 브런치에 있는 글 중 원고에 쓸 수 있겠다 싶은 글을 모아 놓고 원고지 매수를 가늠해보는 것이었습니다. 출간이 가능하겠다 싶은 글을 모두 모아 놓고 보니, 예상보다 훨씬 분량이 많았습니다. 분량에 대한 부담감을 덜고 나니, 마음이 여유롭고 편안해지더군요. 사실 채우는 작업이 힘들지 덜어내는 작업은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한숨 돌린 후, 여유롭게 정리해나가려 원고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다가올 미래를 모른 채 이때만 해도 마음이 느긋했습니다). 원고에 쓸 수 있을법한 구절은 남겨두고 필요 없는 내용을 덜어내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일종의 가지치기 작업이었지요.
막상 책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바라보니, 생각보다 고칠 부분이 꽤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썼던 글은 책 원고라기보다는 인터넷 블로그용 성격이 짙었습니다. 인용 부분도 많았고, 비속어 남발 등 너무 가볍게 적힌 구절도 있었지요. 일기장에 쓸법한 정제되지 않은 문장도 있었고요. 정돈이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그래도 구독자가 내 편이라는 든든함이 있지만, 전국(혹은 전 세계일지도 모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쓰는 글은 확실히 부담이 컸기 때문이었죠. 일단 인쇄하고 나면 수정하기 어렵다는 부분도 압박감에 일조했고요. 그렇게 애매한 문장들을 모두 가지치기하고 나니, 분량이 기존 원고의 1/3 정도로 훅 줄어들었습니다. 갑자기 너무 줄어든 분량에 당황스럽더군요.
큰일 났다!!!
거의 반 이상의 글을 새로 써넣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원고 마감일을 조율할 때만 해도 사실 '이미 작성되어 있는 글이 있으니 부담이 크지 않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지를 치고 보니 새로 써야 하는 글의 분량은 상당했습니다. 아마 이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원고 마감일을 그리 촉박하게 잡지 않았을 것 같고요. 출판사에 마감기한 연장을 요청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아직은 시간이 좀 더 있으니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부족한 부분의 글을 쓰고 분량을 메꿔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이때의 작업은 듬성듬성한 상태의 옷감에 급하게 천을 덧대어 기워가는 느낌 같았달까요.
특히 가장 부족하다고 느낀 부분은 에피소드 파트였습니다. 글을 정리하고 보니 무언가 글의 뼈대는 있는데 살은 없는 느낌이었습니다. 글의 핵심 내용과 어울리는 사례가 부족한 상태였죠. 이전에도 브런치에 글을 올릴 때 어떠한 사례 중심으로 올리지 않았기에 ―올린다고 해도 간단한 상황 설명 정도에 그쳤을 뿐― 이 시점의 원고는 주장만 나열되어 있고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비어있는 상태였습니다.
문득 출판사와의 첫 미팅에서 편집자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글에 좀 더 사례가 풍부하면 좋겠다는 말씀이었죠. 메시지에 적합한 일화는 그 당시의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독자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는 사실 그 말에, 사례가 장황하면 너무 감성적인 톤이 될까 우려된다고 반박 아닌 반박을 했지만- 지나고 보니 편집자님 말에 일리가 있었습니다. 사례가 부족한 글은 어느새 정보 전달에 치중한 딱딱한 톤이 되어 있었죠. 텁텁한 글에 에피소드를 첨가하여 좀 더 설득력이나 공감을 끌어낼 필요가 있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로 이전의 기억을 돌이켜 긴급 에피소드를 착즙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여 사례를 발굴해야 했지요. 평범한 일상의 사례를 발굴하여 에피소드 글감으로 다듬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제 경우에는 대략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 주제에 맞춰서 어떤 사례를 쓸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를 테면 '똑똑하게 직장을 이용합시다'에서 <내 성장이 곧 회사 성장으로 이어지게끔 하자>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는데, 이전 글에는 단순히 '메시지 전달'에만 초점을 뒀다면, 책으로 나올 원고에는 이 메시지에 맞는 사례를 넣어주어야 하는 식이었죠. 그 말인 즉, 지금까지 거쳐왔던 모든 직장 생활을 복기하여 메시지와 맞아떨어지는 사례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이번 원고 작업의 경우에는 이미 브런치에 작성된 글이 있었기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기반으로 에피소드를 발굴했지만, 보통은 평소에 겪는 일상의 경험에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추출해 내는 편입니다. 저는 이 편이 좀 더 수월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해도 생각이 안나는 에피소드는, 연도별로 특징적인 기억을 떠올려보거나, 관련 주제의 키워드를 포털에 검색해보며(운 좋게 연관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기억을 상기시키려 애썼습니다.
특히 에피소드를 발굴하기 위해 추천하는 방법은, 모든 생각나는 경험을 시계열로 나열해보는 겁니다. 각각의 연도마다 시간순으로 특징적인 일이나, 사소하더라도 의미있던 경험을 떠올려보는 거죠. 제 경우에는 스케쥴러나 일기장,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토대로 기억을 떠올려보았던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찾아낸 에피소드는 저만의 기준을 거쳐서 원고 글감으로 채택할지 말지를 결정했습니다.
첫째, 시의성 - 지금 시기에 적절한 에피소드인가?
에피소드 후보군 중에 '코로나' 관련 이야기가 있었는데, 에피소드 자체는 좋았지만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원고를 작업할 당시에는 한창 코로나가 창궐할 시기여서 개연성이 있었지만,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옛날 이야기로 묻힐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대신 가급적 시기를 타지 않거나, 가까운 미래에 적합한 에피소드 위주로 찾았습니다.
둘째, 흥미성 - 매력 있는 에피소드인가?
아무리 전달하려는 메시지와 딱 맞아지는 에피소드라 하더라도 매력도가 없다면 독자는 읽고 싶은 생각이 없어질 겁니다. 많은 에피소드 중에 극적이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들어도 재밌다고 해줄 만한―물론 겪은 당사자에게는 모두 재미있는 이야기 같지만― 에피소드 위주로 찾습니다. 실제 주변 친구들이나 지인들 사이에서 이미 흥미롭다며 검증이 된 이야기라면 더 좋습니다.
셋째, 교훈성 - 뭔가 깨달음을 주는 에피소드인가?
흥미도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무언가 깨달음을 줄만한 교훈적인 에피소드라면 괜찮다고 봅니다.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는, 재미있거나 혹은 무언가 배울만한 사례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깨달음을 주는 에피소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통 일반적인 상황을 어떤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때 주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나름의 기준을 두고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에피소드를 채택했습니다. 사실 이 기준도 정답이 아닌지라 한번 고민해 보시고, 본인만의 적절한 기준을 세워서 적용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나만의 기준을 세워두면, 앞으로 글을 쓰거나 원고 작업해나가실 때 많은 도움이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글의 뼈대도 있겠다(메시지), 에피소드도 대략 정했겠다, 꾸준히 써 나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역시나 중간중간 생각지 못한 복병에 부딪힙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원고를 쓰며 맞닥뜨린 슬럼프 순간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나름의 해결 방안을 공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