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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비 파크 Dec 19. 2022

홍대병 환자의 새로운 식당 찾기

이태리식 정통 화덕피자 - 석촌동 피제리아 다븟

나에겐 불치병이 있다. 약도 없고 영원히 나을수도 없는 병. 나는 태어났을때 부터 이병을 앓고 있다. 그것은 바로 홍대병이다. 나만 알고싶은 멋진 인디 뮤지션, 나만 알고싶은 힙한 패션 브랜드, 남들이 모르는 세계를 내가 먼저 알고 있어서 그 엣지를 내가 모두 챙겨가고 싶다. 고급 취향을 선점하는 센스있는 남자로 각인되고 싶은 마음도 홍대병의 주요 증상 중 하나일 것이다. 요즘은 이놈의 홍대병이 식당 취향에서 까지 도졌다. 내 새로운 취미는 남들은 모르는 나만알고 싶은 숨겨진 맛집 찾기다.



돼지들은 촉이 있다. 얼마 전 석촌고분역 주변을 산책하다 느낌이 오는 식당을 하나 발견했다. 식당 이름은 피제리아 다븟. 이건 분명 프랜차이즈가 아닌 개인 식당이다. 읽기 조차 힘든 이름의 식당 앞을 지날 때 돼지의 촉이 발동했다. 먼저 후각이 반응했다. 기분좋게 고소한 빵굽는 냄새가 났다. 그리고 돼지의 촉은 후각에서 시각으로 이어졌다. 재빠르게 식당 내부를 스캔했다.



조그맣고 아담한 식당에는 5~6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었다. 그중 한 테이블에만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슬쩍 그 테이블을 훔쳐봤다. 따끈한 피자가 놓여 있었고 초록색 루꼴라가 한가득 올라가 있었다. 정통 이탈리안 피자로 보였다. 아까 그 빵 굽는 냄새는 화덕에서 갓구운 피자 냄새였다. 이태리식 피자 근본이 느껴지는 곳. 이건 못 참지. 이집에는 분명 뭔가 있을거다.



며칠을 벼르다가 택한 건 수요일 저녁이었다. 내 손에는 테행가 소비뇽블랑도 들려있었다. 산뜻한 산미가 나는 화이트와인을 들고 전투에 임했다. 이 식당을 제대로 즐겨 보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현이다. 수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혹은 원래 사람이 없는지 테이블은 모두 비어있었다. 홍대병 기준에서 일단 합격. 이제는 맛만 검증하면 된다. 창가 쪽 자리를 잡고 조용히 메뉴판을 탐색했다.



메뉴판을 둘러보기도 전에 사실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부라타 피자. 이곳의 시그니쳐 메뉴였다. 미리 확인한 블로그 리뷰에서도 부라타 피자는 단연 압도적 비주얼을 보여주고 있었고 메뉴 옆에도 “BEST!”라고 적혀 있었다. 사장님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부라타는 못 참지. 그렇게 주문을하고 기다렸다. 본 메뉴에 앞서 식전 빵이 나왔다. 아보카도 스프레드가 발라진 쫀득하게 찰진 식전 빵이었다. 화이트 와인을 한잔 하고 쫄깃한 빵 한점으로 입맛을 돋궜다. 본 메뉴가 점점 기대가 됐다.



식전빵을 클리어하고 식당 내부를 구경했다. 무심한 듯 적당히 신경 쓴 인테리어. 힘주지 않은 아늑한 우드 계열의 가구와 할로겐 조명이 곁들여진 편안한 분위기가 오히려 안심이 됐다. 다행히도 핑크색 네온 사인 글귀로 벽에 걸려진 “넌 예쁘니까 예쁜 것만 먹어” 따위는 없었다. 대신 잔잔하게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며 연말 저녁 식사 기분을 더해줬다.



드디어 기다리던 부라타 피자가 나왔다. 역시나 풍성한 초록빛 루꼴라에 바질페스토, 조각낸 새빨간 산마르자노 토마토와 통통한 부라타 치즈 한 뭉텅이. 토핑의 모든 재료들이 신선해 보인다. 가운데 올라가 있는 부라타치즈 부터 칼로 배를 갈라 본다. 순두부처럼 새햐안치즈가 흘러나온다. 한 조각 가득 새하얀 치즈를 올려 내 입으로 가져가 본다. 남유럽 지중해의 신선함이 입안 가득 느껴진다. 부라타치즈의 새콤함과 짭짤함, 루꼴라의 향긋함, 바질페스토의 파릇함, 고소한 올리브유의 풍미. 미쳤다. 엣지 있는 남자의 선택은 역시 옳았다.



한남동 부자피자를 우리집 앞에다 옮겨놓고 웨이팅 없이 먹는 느낌이다. 신선한 재료를 가득 품은 쫄깃한 도우를 한손에 들고 입으로 가져간다. 테행가 소비뇽블랑으로 산뜻함을 더해주며 페어링 완성. 이 모든 것을 고요하게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나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홍대병 환자다. 오늘의 취미 역시 대성공. 모두들 석촌동 피제리아 다븟을 가지 마시라. 이 숨겨진 맛집을 알고있는 세련된 취향은 나혼자 온전히 독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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