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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비행기 티켓으로 가장 큰돈을 쓴 날이었다. 항상 20~30만 원의 아시아권의 비행기 티켓 구매만 해봤지 67만 원의 비행기 티켓을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끊어보았다. 이 티켓을 가격을 제외하고도 나에게 처음인 것이 많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가장 멀리가 보는 여행이었고, 태어나 가장 오랫동안 가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혼자 가는 여행이었다.
분명 혼자 가는 여행이었다.
시작은 퇴근 후 집에서 가족끼리 모여 저녁을 먹을 때였다. 그날의 반찬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우리 다섯 식구가 모여 거실에서 옹기종기 모여 오랜만에 다 함께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항상 8시에 퇴근해 혼자 밥을 먹던 여동생도 게임하느냐고 밥만 후다닥 먹고 방으로 들어갔던 남동생도 자리를 지키고 앉아 다 함께 숟가락을 뜨고 있었다. 나도 밥 한 숟갈을 뜨며 설레는 마음을 입 밖으로 토해냈다.
"나 유럽 갈 거야! 그때 말했던 산티아고 순례길, 그거 가는 비행기 티켓 샀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알게 된 그 순간부터 하루 종일 '유럽에서 하는 트래킹'이 있다고 귀가 닳도록 말한 터라 엄마는 내 목적지가 산티아고 순례길인 게 놀랍지는 않은지 심드렁히 내게 물었다.
"그래. 그래서 누구랑 같이 가는데? 친구?"
"아니, 같이 갈 친구가 내가 어딨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려면 40일은 있어야 한다는데 친구들은 다 학교 다니잖아."
"그럼 누구랑 갈 건데? 혼자 갈 거야?"
"당근 혼자 가지! 800km를 혼자 걸으면서 하는 여행 너무너무 낭만적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낭만적이었다. 숲길 따라, 도로를 따라, 들길 따라 한걸음 한걸음 내디뎌 800km를 걷는 일. 두 다리와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공평하게 걸을 수 있는 그 길을 걸을 수 있게 된 내가 행운아 같았다. 또, 유럽에 다녀온 친구들도 잘 모르는 그곳을 내가 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생각만 해도 소설 나니아 연대기 속 옷장을 열어 나니아로 들어가게 된 행운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있을 건데?"
딸내미의 첫 혼자 여행에 걱정된 엄마가 물었다. 어디에 갈 거고, 그곳은 안전한 건지, 여자인 네가 혼자 가서 뭘 어떻게 할 건지 그리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 엄마의 모든 질문은 '내 딸 혼자 하는 여행은 절대 허락 못함'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딸이 소중하게 지켜온 '유럽여행'의 꿈을 막지는 못하셨는지 절대 입 밖으로 '가지 말라'는 말은 하시지 않았다. 다만 엄마의 모든 말은 '그곳은 안전한 곳이니? 혼자 가도 정말 괜찮니? 이왕이면 누군가와 함께 갔으면 좋겠구나'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한 63일? 아직 한국행 비행기 티켓은 안 샀어. 스페인에서 일본으로 들어올 거야."
"일본? 일본 어디"
밥 먹는 내내 듣고만 있던 동생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 항상 나와 함께 일본에 가곤 했던 동생은 '일본 여행'이란 말에만 귀가 쫑긋 했다.
"일본 도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일본 나리타 공항으로 도착하는 걸로 샀어. 그게 젤 싸더라고."
일본이란 말이 동생을 자극한 건지, 도쿄라는 말이 동생을 자극한 건지 동생은 그 식사가 끝난 이후에도 내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유럽은 어디를 가는지, 가면 뭐를 하는 건지 그리고 돈은 얼마 정도 필요한지. 여행의 하나부터 열까지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퇴근한 동생이 가족들 앞에 당당히 선전포고를 울렸다.
"나 언니랑 같이 여행 갈래. 나도 스페인 그거 할래"
하나뿐인 장녀를 혼자 유럽에 보내기 걱정됐던 엄마는 단번에 동생의 말을 물었다.
"그러니? 잘됐다. 민지야, 민정이랑 같이 가라. 민정이도 좋은 경험이고 좋잖아."
꼬박 하루 동안 얼굴에 근심이 어려있던 엄마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언니! 나 언니랑 똑같은 비행기 티켓 사줘"
굳은 결심을 마친 동생의 얼굴도 엄마를 따라 환한 웃음이었다. 동생도 처음으로 유럽을 간다는 사실이 설레고 기뻤는지 회사를 다닌 이래로 처음 보는 환한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 얼굴을 보며 나에게 얼른 동생의 비행기 티켓을 사주라고 재촉하는 엄마의 얼굴도 3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것 같은 편안한 얼굴이었다. 집안의 여자들의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단, 한 명 혼자만의 여행이 박살난 나만 빼고.
"야. 너 내가 가는 여행이 어떤 여행인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