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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디 Oct 14. 2023

고수를 못 먹는 당신이 불쌍해요.

엄마로부터 내려온 고수매니아의 피

나는 지방에 산다. 서울사람들은 흔히 시골이라고 여기는 지방에 산다. 서울에서 제법 먼 이곳은 유행이 항상 한두 발 정도 뒤처져 있다. 서울에서 이제 유행한 음식이 붐을 넘어 스테디가 되어야 이곳에는 하나둘씩 생긴다. 그래서 나의 첫 고수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였다.


유럽여행의 시작이었던 영국 여행을 마치고 프랑스로 넘어가기 위해 런던 히드로 공항 대합실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대기시간이 제법 길고, 다 쓰지 못하고 남은 파운드화가 많아 우리는 공항에서 한 끼를 먹기로 했다. 공항에 있는 음식점을 둘러보다 런던에서 제법 많이 본 브랜드가 입점되어 있어 그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 곳은 음식을 직접 조리하진 않고, 조리되어 있는 음식을 고르면 데워주는 식이었다. 영어를 못하는 우리로써는 오히려 좋았다. 실제로 어떤 음식인지 확인할 수도 있고, 주문할 때 영어를 적게 쓸 수도 있으니까. 나름 신중한 얼굴로 메뉴를 골랐다. 동생은 런던에서 마지막 날이니, 런던의 대표메뉴(?)인 샌드위치를 골랐고 나는 밥순이의 대표주자로서 쌀이 먹고 싶어 계란볶음밥을 골랐다.


주문을 끝내고 전자레인지에서 가볍게 돌려진 음식은 나름 뜨끈뜨끈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포장을 열어 한 입을 먹어보는 순간, 나는 볶음밥을 다 먹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바로 볶음밥 사이사이에 숨어있는 고수조각 때문이었다. 간단한 계란 볶음밥이 분명했는데, 이상하게 씹을 때마다 어딘가에서 음식에서 나면 안 되는 향긋한 섬유유연제맛이 났다. 볶음밥이 조리가 잘못되어 나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향긋한 향신료가 들어가서 향긋한 건지 알기 어려웠다.  그 향기는 너무 고묘 하게 숨어있어 몇 번을 음미해야 겨우 느낄 수 있었다. 


처음 겪는 대혼돈의 향과 맛에 내 동공은 쉴 새 없이 흔들렸다. 먹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내 팔은 착실히 작동을 해서 결국 그 볶음밥은 완뚝(완벽하게 뚝딱 해치웠다)했지만 말이다. 그 볶음밥을 맛보면서 내가 동생에게 한 줄 평을 내린 게 있다.


"아니, 나 이제 고수는 절대 못 먹을 것 같아."

고수가 들어간 마라탕

고수 손절 선언을 한 뒤에 나는 절대로 고수를 먹지 않았다. 절대로 먹지 않는 건 시골 사는 사람에게는 몹시 쉬운 일이었다. 일부로 고수를 달라고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음식(쌀국수 등등)에 고수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다행인 일이었다.


그렇게 평화로운 고수손절인생을 살던 날, 엄마가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자고 정육점에서 고기며, 상추며 한가득 사 오셨다. 엄마의 삼겹살 선언에 우리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누구는 거실에 신문지를 깔고, 누구는 엄마를 도와 야채를 손질했고 누구는 거실로 식기들을 날랐다. 고기를 향한 가족들의 대화합 속에 우리는 금세 불판 위에 고기를 올릴 수 있었다.


지글지글 고기가 익어가는 소리가 심금을 울렸다. 치이익- 찌이익하며 지방이 익어가는 소리에 침을 꼴딱꼴딱 넘기고 있었는데, 엄마가 씻은 야채들 사이에서 쑥갓더미를 꺼냈다. 야채 위에 잘 보이게 올려두고선 말했다.


"이따가 삼겹살 쌈 싸 먹을 때 이거 하나씩 넣어서 먹어봐. 맛있을 거야."


쑥갓을 고기랑 같이 먹는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엄마가 쑥갓을 할머니에게 받은 것일 수도 있고 나도 모르는 존맛탱 고기조합일 수도 있으니까 알겠다고 대답했다. 고기가 다 익은 뒤 엄마의 추천대로 상추쌈 위에 낯선 쑥갓을 하나 위에 올렸다. 쑥갓은 삼겹살의 반지르르한 기름이 닿아 더욱 반짝였다. 상추를 곱게 포개 한 입에 입에 넣고 씹는 순간 나는 혀에서 낯선 맛 하나를 감지했다.


쑥갓이라기 하기엔 묘하게 낯설고, 처음 보는 맛이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익숙한 맛이었다.

이 맛은 바로 오래전 영국의 공항에서 먹었던 그 이색적이고 음식에선 나면 안 되는 그 맛이었다.


"엄마, 이거 고수야?"


"응. 같이 먹으니까 맛있지?"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면서 고수랑 고기랑 같이 먹으면 정말로 맛있다고 고수에 대한 칭찬일색이었다. 그러면서 가족들 쌈 위에 고수를 한 잎씩 넣어주었는데, 그 쌈을 먹은 가족들은 다들 표정이 안 좋았다. 한국에서 맛보기 힘든 이국적인 맛에 다들 글자 그대로 혀를 내둘렀다.


다들 맛이 없다고 하니 고수 극호인 엄마는 약간 시무룩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들도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는데, 안 좋아한다고 하니 실망을 한 것이다. 곁눈질로 엄마의 눈치를 살피던 나는 고수더미를 뒤적였다.


"그래도 삼겹살에 고수 조금 넣어 먹으니까 먹을만 한데?"


그랬다. 신기하게도 처음 히드로공항에서 먹은 고수보다 한국식 조리법으로 먹는 고수는 꽤 먹을만했다. 그리고 그 먹을만했다는 고수는 쌈 싸 먹으면 쌈 싸 먹을수록 '맛있음'으로 바뀌었다. 기대 없이 먹어서 그런 건지, 향긋함 덕분에 느끼한 삼겹살과 조합이 잘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메커니즘으로 혀에서 고수를 맛있다고 인식을 해버렸다.


그 맛을 맛있다고 인식하게 되어버리니까 이제는 고수랑 삼겹살이 조합이 가끔 생각나더니. 이제는 고수를 넣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면 고수를 넣고 먹는 게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이젠 고수 필승 조합에 고수가 없다면 섭섭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삼겹살에도 고수를 곁들여 먹고, 쌀국수에도 고수를 넣어먹고, 마라탕에도 고수를 추가해서 먹는 게 맛있게 느껴진다. 이게 바로 고수매니아의 길...?


이제는 엄마와 쇼핑을 가게 되면 마트의 야채코너에 고수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을 하게 된다. 

시골에 몇 없는 고수 수급처를 확보하기 위해서. 

고수 넣은 쌀국수를 맛있게 먹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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