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망디 Sep 30. 2023

밥이랑 같이 먹는 과일이 있다구요?

내 인생 최초의 아보카도는 20년 전이다.

나는 아보카도를 좋아한다. 더 세밀하게 말하자면 아보카도 특유의 부드럽고 버터리한 맛을 좋아한다. 많은 서양식 요리에 아보카도를 넣으면 아보카도 지방의 풍미 덕분에 음식이 더 맛있어지곤 한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면 요리에 아보카도를 넣는 것을 좋아한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할 때도 아보카도를 주문하기도 하고, 집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때도 아보카도를 넣어 먹기도 한다.


한때 나는 아보카도를 정말 싫어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지독하게 낯설었던 첫 경험 덕분이었다.


엄마는 10대 후반시절 멕시코에서 잠깐 사셨다 20대 중반쯤에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셨다. 거의 10년을 멕시코에서 지냈던 셈이다. 꽤 오랜 시간 외국에서 보낸 터라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종종 멕시코 음식을 그리워하셨다.


"민지야. 이거 먹어봐. 이거 엄마가 멕시코에 있을 때 종종 먹던 과자야."


가끔 엄마는 주방에서 혼자 뚝딱뚝딱 음식을 하시곤 우리에게 시식을 요청했다. 2000년대에는 멕시코에서 쓰는 조미료가 제대로 수입되지도 않았을 시절이라 제대로 된 요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밀가루와 설탕으로 간단한 과자를 만들어주셨다. 하루종일 주방에서 밀가루와 씨름하며 과자반죽을 만들고 직사각형으로 모양을 낸 반죽을 기름에 튀여 설탕에 묻혀 먹는 간단한 조리방법의 과자였다. 엄마는 설레는 눈으로 우리에게 나눠주고는 어떠냐고 물어봤다.


"응? 맛이 어때? 맛있지? 엄마가 좋아하던 과자야~"


엄마가 만들어주어서 좋았던 건지, 갓 튀겨 바삭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좋았던 건지. 나는 항상 해맑게 웃으며 아주 맛있다고 대답했다. 역시 우리 엄마 음식을 세계 최고라고 너무너무 맛있다고 엄마가 만든 수제멕시코과자를 한 움큼씩 쥐어 먹었다.


그렇게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멕시코에 대한 향수를 해소하고 있었나 보다.


처음 먹어보는 엄마표 멕시코 과자 덕분인지 '멕시코요리는 맛있다'라는 생각이 있었던 나는 엄마가 '이거 멕시코에서 먹던 거야'라고 하면 처음 보는 음식도 제법 맛있게 잘 먹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내가 세계 여러 나라 음식에 호기심을 가지고 잘 먹게 된 건 이때의 기억이 좋게 남아서 인 것 같기도 하다.)


내 안에서 '멕시코 음식을 맛있어'라는 생각이 자리 잡혔을 때쯤, 그 전제가 부서질만한 큰 사건이 생겼다. 그건 바로 태어나서 처음 본 과일 조리법 때문이었다.


어느 날 장을 보고 온 엄마는 아주 싱글벙글해서 집에 돌아오셨다. 엄마를 도와 장본 물건을 주방 여기저기에 정리해서 넣어놓고 있었는데, 엄마가 장본 물건 사이에서 처음 보는 까맣고 주먹만 한 열매 하나를 꺼내서 아주 소중하게 보관을 했다. 그리고 나에게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한 마디를 하셨다.


"이거 진짜 귀하고 비싼 거야. 여기 살면서 진짜 오랜만에 본다."


아주 비싸고 귀한 거라고 한 작은 열매는 전혀 비싸 보이지 않았다. 초록빛과 갈색의 경계에 있는 주먹만 한 검은색 열매였다. 한참을 살펴보니까 약간 길쭉하고 색도 거무튀튀한 게 살짝 가지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엄마, 이건 야채야?"


엄마는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니, 이건 과일이야. 아보카도라는 과일."


"과일이 왜 이렇게 못생겼어? 과일이면 그냥 까서 먹는 거야?"


"이건 그냥 까서 먹는 게 아니고, 밥이랑 같이 먹는 거야. 밥에 소금 뿌려서 과일이랑 같이 먹으면 맛이 있어."


정말 놀랐다. 그동안 살면서 항상 밥을 먹고 과일을 먹었다. 밥과 과일은 따로따로 먹는 거지, 절대 같이 먹을 수 없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와장창 부서졌다.


"아냐, 엄마 그거 아니야. 과일은 밥이랑 같이 먹으면 안 되잖아."


"아니야. 이건 밥이랑 비벼서 먹는 거라니까?"


나는 절대 아보카도라는 과일이랑 밥을 같이 먹으면 안 된다고, 그건 먹는 게 아니라고 엄마에게 설명을 했다.


"엄마, 생각해봐 봐! 과일이랑 밥이랑 같이 먹으면 안 된다니까? 밥 먹고 사과 먹는 거잖아. 밥 먹고 감을 먹는 거잖아. 아니면 바나나 먹고 이따가 밥 먹는 거잖아. 밥이라 과일이랑 같이 먹으면 과일밥인데, 그럼 안 되는 거야!"


한참을 엄마 옆에서 쫑알 되며 밥이랑 과일이랑 먹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논리적으로(그 당시 기준..ㅎ) 설명하는 내가 영 귀찮았는지 엄마는 그 자리에서 먹는 법을 보여주겠다며 도마를 꺼내셨다.


아보카도 가운데에 칼을 박고 아보카도를 한 바퀴를 돌리자 아보카도는 금세 반으로 쪼개졌다. 그리고 쪼개진 반 사이로는 아보카의 반만 한 큰 씨앗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엄마는 칼로 콱 씨앗을 찍어 뽑아내곤 과일에서 나올 수 없는 색을 가진 녹색과육을 발라내기 시작했다. 미끄덩한 녹색과일을 아주 먹음직스럽게 바라본 엄마는 작게 저민 아보카도를 한 입 홀랑 드셨다.


"민지, 너두 먹어볼래?"


처음 보는 해괴한 녹색과일이 무서웠던 나는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도리질 쳤다. 엄마는 나에게 두 번 권유하지 않고 남은 아보카도 과육과 밥을 한 그릇에 담아내었다. 그리고 그 위에 소금을 살살 뿌리곤 아보카도와 밥을 잘 섞어 주먹밥만 한 크기로 만들곤 나에게 한 알 먹어보라고 권유하셨다.


흰 밥과 녹색밥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주먹밥이었다.

오묘하고 수상한 그런 이상한 주먹법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 요리를 나는 한입 꿀꺽 넣어봤다.  넣어만 봤다. 아보카도의 맛이 혀에 닿는 순간 나는 꺼름직한 맛을 느꼈다. 그 맛을 도저히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꺼림칙하고 이상한 맛이라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소금 간을 한 흰밥에서 느껴지는 짭조름함과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미끄덩한 맛. 이상하고 수상한 맛이 혀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내가 정의할 수 없는 맛이었다.


"우엑. 엄마 내가 과일이랑 밥이랑 같이 먹으면 안 된다고 했잖아!!"

내가 처음 먹어본 아보카도밥은 아니지만 비슷한 아보카도 밥


대표이미지와, 첨부된 사진 이미지는 픽사베이 출신


작가의 이전글 성공이라는 가면을 쓴 불행 버리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