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베드버그가 아닐까요?
처음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유럽은 지명만 알고 있던 동생과 함께 유럽여행이자 순례여행을 떠났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인 프랑스 생장으로 이동하기 전에는 며칠간 파리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호스텔에 머물렀다. 3일가량 파리에 머물며 유럽의 분위기를 익힌 뒤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파리에서 TGV를 타고 프랑스 바욘으로 이동을 했다.
바욘에 도착하자마자 한 일은 숙소를 찾아가는 일이었다. 다음날 오전에 생장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우리는 바욘역 근처에 있는 2성급 호텔을 예약했다. 으슥하고 시끄러운 골목을 지나쳐 도착한 호텔은 내가 생각한 깨끗한 느낌의 호텔과는 거리가 멀었다. 호텔이 전체적으로 낡아 보였다. 오래된 페인트의 호텔은 언젠가 미국영화에서 보던 주유소에 딸린 작고 허름한 호텔 같았다. 약간의 긴장감을 가진 채 숙소의 체크인을 마친 채 방에 들어간 나는 혼자만의 비상이 걸렸다.
"민정아, 여기 침대 매트리스 한 번 들어봐야 해."
그 비상은 바로 유럽여행 커뮤니티에서 흔하게 보았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사람이라면 모를 리 없는 '베드버그' 때문이었다. 늦은 밤 침대 위를 기어 다니며 사람들의 몸을 타고 피를 쪽쪽 빨아먹는 이름바 침대모기인 베드버그가 왜인지 바욘의 숙소에는 있을 법했다.
오래되고 낡은 분위기 덕분만은 아니었던 게 베드버그는 햇빛을 싫어해서 어둡고 습한 곳에 있다고 하는데 그 숙소는 정말이지 햇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민정아, 뭐 보여?"
"아니, 안 보이는데, 언니 근데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니, 너 몰라? 유럽에서 베드버그 조심해야 해"
아니 어떻게 베드버그를 모를 수가 있지? 그렇게 유럽여행자 사이에서 악명이 높은 베드버그를 모르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하지만 설명해 주기도 귀찮아서, '그냥 모기 같은 애야, 근데 알레르기 있을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해'라고 한마디로 말해주고 말았다. 짧게 설명을 마치고 우리는 계속해서 베드버그 수색대작전을 진행했다. 침대커버도 한번 들춰보고 동생과 함께 힘을 모아서 매트리스도 들어서 핸드폰 플래시로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어디에 이상한 점은 없는지, 검은 물체가 지나가지는 않는지를 꼼꼼하게 살핀 뒤에 우리는 매트리스를 내려놓았다.
모든 것을 살폈음에도 왜인지 불안한 마음에 나는 가방에서 아직 개시하지 않은 침낭을 꺼내 침대 위에 살포시 펴놓았다. 한 장짜리 얇은 침낭이었는데, 그 침낭이 주는 만족감은 굉장했다. 만약 베드버그가 있다 해도 침낭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겠지.
그렇게 침낭 안에서 자려고 누워있는데, 계속 내 몸 어딘가에서 뭔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 위에서 차르륵- 촤르륵 움직이는 느낌이 들 때마다 자는 자다가 말고 벌떡 일어나서 그 느낌이 든 자리를 손으로 훑었다. 손으로 만져보면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그렇게 밤새 내내 이상하고 꺼림칙한 느낌을 가진 채 잠에 든 것도, 깨어난 것도 아닌 채 바욘에서의 하룻밤을 보냈다.
일어나서 확인해 보니 빈대는커녕 모기 한 방 물리지 않았다. 혹시 빈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긴 밤 내내 불안에 떨며 잠을 이루지 못한 게 웃겼다. 혹시 모르기 때문에 잠자리를 정리하며 침낭을 있는 힘껏 탈탈 털었다. 아무리 털어도 부족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침낭을 들고 테라스로 나가 온몸으로 침낭을 몇 번 더 털어냈더니 만족이 되었다.
"이따 생장 가는 버스 타러 가기 전에 약국에 들러서 베드버그 스프레이 하나 사자"
그렇게 베드버그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첨언 1) 실제로 파리 지하철에서 빈대가 발견되어 빈대와의 전쟁중이다.
첨언 2)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빈대가 있을까 봐 노이로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첨언 3) 베드버그(빈대)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 엄청 간지럽고 크게 부풀어 괴롭기 때문에 알레르기약을 먹어줘야 한다. 베드버그 알레르기약은 순례길에서 만나는 약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