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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호구입니다.

베트남에서 사진 찍다가 코코넛 2개에 15만 동에 산 사람됨.

by 방망디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한 가지 철칙이 있다면 '외국인이라서 당하는 덤터기 당하지 않기'였다. 그래서 우리 둘은 호이안, 다낭, 호치민, 무이네를 방문하면서 절대 길거리에서 음식이나 물건을 쉽게 사지 않았다. 원하는 물건을 찾고 물건이 '베트남에서 사기에 적합한 가격인지'를 언제나 고민했던 것 같다.


편의점이나 마트가 보기 드문 호이안에서는 물 하나를 사려고 최소 3개의 마트를 돌아다녔다. 대체로 호이안에서는 1.5L 생수가 약 1만 동내 외에 판매되는 것 같았고, 그 범위에서 물을 구매했다. (덧붙이자면 아주 저렴한 물은 약 8000동 정도였다.) 물뿐만 아니라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도, 카페에서 커피를 이용할 때도 대체로 주변 시세와 비교하여 '적합한지'를 따져가며 다녔던 것 같다.


합리적인 구매를 하겠다는 고집을 더욱 철저하게 지켰던 것은 재래시장이나 길거리음식점/마켓을 이용할 때 두드러졌다. 베트남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망고나 용과를 먹으려면 꼭 정찰제 마트를 이용했다. 숙소 코 앞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음식이나 과일을 살 수도 있지만, 선입견 때문에 쉽사리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동남아 여행을 떠나기 전 종종 보았던 베트남 여행영상에서 보았던 '외국인 호구 잡기'가 너무나 강렬하게 뇌에 박혀서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사려다가도 자동적으로 몸이 멈칫하거나 몸이 알아서 조금 더 먼 거리에 있는 마트로 향하게 했던 것이다.


가끔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재래시장에서 사는 것이 더 저렴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가격도 제대로 모르는 가게에서 눈탱이를 맞고 여행에서 이런 경험을 해보는 것도 경험이라고 자기 위안을 할 필요도 없고, 동생과 '이 물건 누가 사자고 했어?' 하며 티격태격하며 싸울 일도, 물건을 사고서도 '이게 내가 잘 산건가?'라는 찝찝한 뒷맛이 없는 정찰제 마트를 이용하는 것이 좋았다. 몸이 조금 고달프긴 했지만 그래도 손해 본 것은 없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했다.


그러나 여행은 언제나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이제 베트남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동한다는 생각이 마음이 풀어진 탓이었을까, 호치민을 떠나기 하루 전날 나는 호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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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전쟁박물관을 관람하고 호치민 박물관을 지나 오페라 하우스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다. 호치민 관광밀집지역답게 이 근처에는 아름다운 공원들이 많이 몰려있다. 호치민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듯한 오래된 나무들이 곳곳에 존재했다.


베트남을 제법 돌아다니며 크고 오래된 나무들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호치민 박물관 앞에 있는 한 나무는 내 상상을 뛰어넘는 크기였다. 모양도 크기고 독보적이어서 이 나무와 함께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오페라하우스까지 부지런히 걸어 다니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베트남 전통 지게를 들고 걸어가시던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그 나무 120년이나 된 나무야"


동생과 내가 너무나 아름답고 멋지다고 연신 셔터를 눌러대던 나무가 120년이나 된 나무라고 친절히 알려주신 아주머니는 어깨에 있던 짐을 내려놓고서 우리에게 몇 가지 정보를 더 알려주셨다. 맞은편에 있는 건물은 호치민 박물관이고 박물관 입구는 저쪽이라고 밝고 환하게 웃으며 말해주셨다.


아주머니의 슈퍼 친절함에 마음이 풀어진 나는 연신 "깜언(감사합니다)"와 "굿굿!"을 외치며 감사함을 표했다. 거듭 감사하다고 말을 하고 마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아주머니는 지고 있던 지게에 있던 코코넛 하나를 내 손에 쥐어주셨다. 인간불신 맥스를 찍은 동생은 내 손에 있던 코코넛을 아주머니에게 다시 드리며 외쳤다.


"노! 노땡쓰!!!"


단호하게 괜찮다고 말한 동생은 사진은 다음에 찍자며 오페라하우스로 걸어가자고 말을 했다. 우리가 자리를 떠나는 제스처를 취하니 아주머니는 자신은 이제 집을 가려고 한다며 이번엔 동생의 손에 코코넛을 쥐어주셨다.


기나긴 여행동안 몇 번의 현지인의 친절에 감동했던 나는 아주머니가 정말 친절하신 분이라며, 마지막 날인데 어차피 현금을 다 써야 했다고 합리화 회로를 돌리며 가방에 있던 지갑을 주섬주섬 꺼냈다. 나이스하게 웃으며 이번엔 내게 줄 코코넛을 꺼내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물었다.


"하우 머치(얼마예요?)"


투 코코넛 이즈 150,000동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무려 코코넛 두 개에 15만 동이라며 절대 평상시에는 사 먹지 않을 금액을 말해준 뒤, 우리 손에 있던 코코넛을 가져가 먹기 좋게 손질하신 뒤 야무지게 빨때까지 꼽아 돌려주었다.


차가운 아이스박스에 들어있던 코코넛은 무척이나 시원했지만 그만큼 나의 마음도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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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하우스 근처에 있는 무인양품에서 내가 산 코코넛을 3만 동정도에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날 하루종일 동생과 함께 한 말은 이것 하나였다.


어차피 베트남 현금은 다 쓰고 가야 했잖아. 럭키비키지 뭐.
어차피 여행당하면서 호구는,, 한 번쯤 당하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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