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땐 세계여행이 쉬운 줄 알았다

[알림]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by 방망디

내가 중학생 때였나. 그당시에 친구들 사이에서 서로서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유행했다. 버킷리스트, 즉 '내가 죽기 전에 꼭 이뤄야 하는 결과'의 모음집이었다. 한참 게임에 빠져있던 어린 중학생은 이 목록들을 게임에서 캐릭터에게 주어지는 퀘스트로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나는 내 삶의 퀘스트를 작성하고 이 퀘스트들을 작성한 지금부터 죽기 직전까지 전부 완수해야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렇게 어른의 삶의 환상을 가진 어린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내 삶의 '퀘스트'들을 작성했다. 16살이 바라본 나의 삶은 아주 반짝이고 멋지고 바쁜 삶 속에 내던져진 성공한 어른이었으니까 내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바쁘고 치열할 2030에 세계의 모든 것을 여행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울 줄 알았다.


그렇게 중학생이던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대입의 쓴맛을 알아가며 버킷리스트의 목록들은 없어지거나 새로 생기기도 했다. 어느 날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 입학하기'였다가 어느 날에는 '국공립 대학교 입학하기'였다가 또 어느 날에는 '대학교 가기로'로 바뀌는 것처럼 내 꿈은 점점 소박해지고 있었다. 인생에 중대한 전환점인 대학 조건이 점점 소박 해지는 것처럼 나의 꿈 또한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세계의 모든 곳을 누비며 걸어 다니는 '세계지도'가 되겠다는 꿈에서 '1년 정도 해외에 살아보는 것'에서 어느 새엔 '1개월이라도 해외에 있어보자'로 나의 현실과 점점 타협하게 되었다.


현실과 점점 타협하면서 몇 가지 조건이 붙기도 했다. 나의 세계여행 버킷리스트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은 '대학생일 때 1개월 이상 해외에 있어보기'였다. 대학교를 졸업하면 회사에 매어 1개월 이상 해외에 체류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겠다는 현실을 고려한 조건이었다.


제한된 시간 속에서 버킷리스트를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가 생기니 한해 한해가 지날수록 점점 초조해지고 말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벌 수 있는 수입은 제한되어있는데 그마저도 학교생활 생활을 하면서 내게 남은 돈은 한 줌뿐이었으니까. 그나마 남은 한 줌도 모이면 홀랑 쓰기 일 수였다. 이번에 친구들끼리 내일로 여행을 간다고 쓰고, 동생이랑 일본 여행을 다녀온다고 쓰고, 가지고 싶던 전자기기 산다고 써버리고. 그렇게 돈을 모아보려고 치면 쓰고, 돈이 모여지려고 하면 쓰는 날들이 계속된 와중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났다. 이제 내가 꿈을 이룰 수 있는 시간이 겨우 2학기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휴학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