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40대 중반 공돌이의 평범하지 않은 글쓰기 여정
자기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평범하지만 평범하고 싶지 않은 40대 중반의 한국 남자입니다. 호돌이를 기억하고 있는 ‘국민학교’ 졸업생이죠. 수학 점수가 조금 더 높아 이과를 선택했고, 남들 따라 열심히 공부하다가 공대에 들어갔죠. 그리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맘껏 놀다가, 학사 경고 맞고 군대로 도망가서 또 맞았죠. 복학 후에는 남들 따라 열심히 공부하다가 대학원에 들어갔고, 공장에 끌려 들어온 지 어느덧 17년이 되었네요. 물론, 공장에서 눈 맞아 결혼한 아내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하나 있어요. 어엿한 40대 중반의 한국 아빠죠.
평범하지만 평범하고 싶지 않은 40대 중반의 한국 남자라는 말은 평범한 이공계 출신의 삶에서 문과를 선택했기 때문일까요? 40대가 되면 대부분 현실을 자각하고 미래를 고민하게 되는 시점인 것 같아요. 어떤 부분에서 평범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요?
평범하다는 말은 평균적인 이공계 직장인을 말했습니다. 사회 시스템이 키워낸 정형화한 인간이 로드맵에 따라 살아가는 인생이요. 정규분포상에서 튀지 않고 중심에 모여 있는 삶.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고 받는 평균적인 수입에 만족하며, 힘들어도 가족을 바라보며 의무감을 되새기면서, 아이의 잠꼬대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힘내야 한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요. 이렇게 순진하게 15년 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는 주변 동료를 보았어요. 정년퇴직. 굽은 등 보이며 떠나는 선배의 모습에 박수를 치는데 문득 울컥했습니다. 내가 투영되어 커다란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내가 해 온 일이 무엇이지? 난 무엇을 잘하지? 어떤 일을 하고 싶지? 찾아 헤맸습니다. 불안함 때문에 안주할 수가 없었어요. 역피라미드 구조가 된 대한민국 인구는 2,30대 청년들에게는 더욱 비관적이겠지만, 40대 중반에게 커다란 그늘을 드리우고 있죠. 승진할 자리는 없는데, 시력은 나빠지고 머리도 안 돌아가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 결과가 ‘인맥’이라는 허상을 쫓아 골프장으로, 술집으로 향하는 이유죠. 이것이 바로 40대 중반 한국 남자의 평범함이 아닐까요. 저는 어떻게 해서든 등을 활짝 펴고 회사를 떠나고 싶었습니다.
40대 중반의 나이에,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인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평일에는 아침 8시에서 저녁 6시까지 공장에서 바삐 근무할 텐데요. 어떤 이유로 대부분의 동료들과 다른 길에 들어섰는지 궁금합니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계기였죠. 친구도 이공계 출신입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다니다가 파일럿이 꿈이라며 공부하더니 덜컥 항공사 파일럿이 되더군요. 아이 둘 아빠로 멋지게 사는 부러운 친구였죠. 그러다 어느 날 연락이 왔죠. 위암 말기. 그리고 신을 야속해할 겨를도 없이 곧 떠나더군요. 빨리 감기 돌리듯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저는 그즈음에 퇴근하면 바로 독서실로 향해 졸린 눈 비벼가며 변리사 준비를 하고 있었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다 때아닌 친구의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독서실을 박차고 나왔어요. 욕 밖에 안 나왔습니다. 때마침 비도 내리더군요. 기숙사로 차를 끌고 돌아오며 쉴 새 없이 욕하며 울었습니다. ’젠장, 젠장! 빌어먹을! 어쩌라고!’ 며칠은 정신이 나간 듯 멍해 있었어요. 그러다가 책장에 꽂힌 책을 펼쳤어요. 책을 보려고 했다기보다는 무의식적으로 손이 간 것이었죠. 프랭크 퍼트 교수의 ‘개소리에 관하여’. 한마디로 개소리의 향연이었고, 세상이 개판이라고 다소 복잡하게 정의해 주더군요. 정신 차리지 않으면 개소리에 현혹되고 내 인생도 개판이 된다. 퍼뜩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물론, 친한 동료는 모두 물갈이되었습니다. 술과 골프로 맺은 인연은 멀어지고, 책과 공감의 대화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시작했죠.
책과 공감의 대화로 맺은 인연은 왠지 따뜻해 보여요. 다양한 활동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여 글쓰기 공부에 매진하고 있기도 하시죠.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하셨고 글쓰기에 이른 과정은 어떠했는지요.
40대 중년 남자들이 만나 카페에서 두 시간 동안 이야기만 하는 모습이 상상되시나요? 함께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부터 영화, 연극, 그리고 최신 과학 동향까지 폭넓게 이야기합니다. 저보다 한 살 많은 형님 한 분과 40대의 삶, 그리고 독서에 대한 뜻을 같이 했죠. 밴드를 만들어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매주 한 권씩 읽고 소감을 공유했고, 또 한 달에 한 권은 벽돌책을 함께 읽고 서평을 남겼죠. 참 힘들게(?) 읽었습니다. 주변 독서모임에도 참가했고요. 결국, 회사 내 독서동호회도 만들었죠. 솔직히 놀랐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이 거의 없었죠. 대다수 한 목소리였습니다. ‘웬 책?’ 그래도 굽히지 않고 일단 해보기로 했습니다. 동호회 개설 신청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가입 권유를 했죠. 우정과 친분으로 가입은 해주더군요. 매월 독서모임을 진행했는데, 점점 인원이 빠지더니 오프라인 모임에는 세 명만 남았습니다. 신기하죠. 두 번째로는, 올해 초 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했고 6월 말 첫 학기 종강 모임에 참석했었죠. 제가 어린 편에 속한 것도 놀랐지만, 나이에 무관하게 열정적으로 글에 대해, 책에 대해 말씀 나누는 모습에 더욱 놀랐습니다. 초면임에도 편안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오픈챗방에서 충청지역모임을 제안하셔서 덥석 수락했죠. 9월에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두 시간이 넘었음에도 끝낼 줄 모르는 대화를 가까스로 끝내고 10월을 기약했죠. 독서보다는 글쓰기 모임이기 때문에 새로운 기대감으로 가슴 부풀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문예지 공모였습니다. 수필을 응모했는데 작가로 받아주시더군요. ‘시’가 중심이고 수필이나 소설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지만,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기쁨에 정모에도 참석했죠. 아니나 다를까 제가 막내였습니다. ‘시’적 감성이 충만하신 어른들과 함께 인사도 나누었죠. ‘시’는 잘 모르지만 앞으로 좋은 경험의 계기로 삼고 싶습니다. 솔직히, ‘수필’을 쓰고 싶다기보다는 끄적이다 보니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수필이 된 것일 뿐,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은 간절합니다.
‘삭막한 공장 문을 나서면 펜을 집어드는 삶’이라니, 독특한 색채의 글쓰기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왜 굳이 소설가가 되길 바라는지요?
평소에 다양한 장르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뭐라도 써볼 요량에 끄적인 글들은 책이 소재가 되었기 때문에 독후감에 가까웠고, 계속하여 쓰다 보니 책을 벗어나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더군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에세이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저에게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는 미묘합니다. 독자가 ‘나’이냐 ‘너’이냐의 차이로만 이해해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다른 장르로 욕심이 생기더군요. ‘시’는 무지한 탓인지 너무 압축적이라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시’는 무겁고 ‘수필’은 가볍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가치‘의 무게가 아니라 표현 방식의 무게죠. 인물, 사건, 배경을 창조하여 소설을 구성하여 나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주제를 드러내고 독자에게 각인시키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아직 자신도 없고 시작할 엄두도 못 내고 있지만, 그렇기에 열심히 수업도 듣고 소설책을 집중하여 읽고 있습니다. 독자로서, 그리고 소설가의 안내서로써 읽는 것이죠. 삶 자체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수필보다는 조금 긴 이야기를 쓰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요. 내가 그린 세상 속 메시지를 조금 길게 풀어내고 싶은 마음 말이죠.
평소에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등 다양한 SNS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글쓰기에 어떤 도움이 되시나요?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글쓰기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죠. 여러 모임에 참석하기 때문에 활발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모임에 나가면 조용히 있는 편입니다. 그래도 모임에 나갈 수 있는 용기라도 생긴 것은 다양한 SNS활동 덕분이기도 합니다. 독후감을 꾸준히 올리고, 일기 같은 에세이를 올리면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거든요. 손수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럼, 적잖은 힘이 되죠. 얼굴을 모르는 친구와 시간차를 두고 대화하는 느낌인데, 반복할수록 대담해지거든요. 무례하게 막말을 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이런 SNS의 댓글일수록 내용이 깊기 때문에 저 역시 다시 생각하고 섬세하게 댓글을 달려고 노력합니다. 자칫 너무 진지해지지 않도록 노력도 합니다. 친근하면서도 팔랑거리지 않을 정도의 무게로 말이죠. 브런치에는 30편짜리 연재를 하면서 감성 에세이와 오피셜 에세이, 엽편소설도 시도해 보았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호응해 주셔서 큰 용기를 얻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꾸준히 글 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른 많은 작가들이 풀어내는 다양한 형식의 글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형식을 배우기도 합니다. 다만, 자칫 SNS중독이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은 주의해야겠죠.
마지막으로, 다른 40대 중반 공순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책을 펼치세요. 재테크나 자기 계발 책도 좋지만, 에세이나 소설을 한 번 펼쳐보고 목차라도 훑어보세요. 마흔다섯이라면, 16400여 일을 살았어요. 태어나서 고등학생까지 18년(6400여 일)은 얼떨결에 지냈다면, 10000일은 어떻게 보냈나요? 하루에 한 권씩 읽었다면 독파만권이겠네요. 2023년 대한민국 성인 연평균 독서량은 4권입니다. 10000일이면 약 110권입니다. 어떤 책을 봤는지 기억나나요? 우리는 하루 세끼 밥은 잘 챙겨 먹습니다. 덕분에 몸은 튼튼할까요? 공장의 기계음, 용매 냄새, 복잡한 숫자들과 기호들로 마치 세포들이 허물어져 가는 듯합니다. 마음은 이미 비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마음마저 돈의 숫자로 채워 넣으려 할 뿐이죠. 졸면서 자기 계발서를 읽는 이유는 그마저 승진이 목표일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산 정상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오르막이거나 내리막일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한 세기가 채 안 되는 기간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입니다. 자, 여기서 한 번 뒤를 돌아보고 고개를 들어 다시 앞을 바라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하얀 종이 위에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를 글로 그려보는 것입니다. 적다 보면 어느 순간 ‘삶’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죠. 저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펼쳤습니다. 고전을 읽고, 소설과 수필을 읽고, 역사나 과학도서를 읽으며 묻고 또 물었습니다. 내 인생은 어디로 향하는 것이냐고. 공장의 값싼 기계 부품이 되고 싶냐고? 부품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유일무이한 원자의 총합이며, 꿈과 목적이 있는 유기체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삶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제가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유일무이니까요. 자, 이제 직접 쓰고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