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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Oct 31. 2024

아침 햇살의 파도

반복 속에 깨어나는 아침의 순간들

5:58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선다.

집이 동향이라, 커다란 창문 밖으로 희붐하게 여명이 밝아 온다.


주방에 놓인 정수기 주위는 어둡지만, 불을 켜지는 않는다. 아니, 켤 필요가 없다. 정수기 밑에 머그컵을 두고 냉수 500ml 버튼을 차례로 누른다. 쪼르르 물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거실로 돌아 나온다.


거실 중앙에는 6인용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다. 의자 하나를 창가로 돌려 앉는다. 멍한 표정으로 낮게 깔린 검푸른 구름 사이를 응시한다. 불그스름하다.

저 멀리 시야 한쪽 귀퉁이에서도 선명한 붉은 반점들이 시선을 끈다. 시력이 좋지 않아 붉은 반점은 달무리 지듯 살짝 번져 보인다. 아파트 정문을 마주하는 신호등이다. 붉다. 그 앞에는 명령을 기다리는 차들의 가지런한 행렬이 후미등을 붉게 밝히고 있다.

서로의 충성을 과시하듯 더 붉게, 더 붉게.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붉은빛이 차례로 사라진다. 진군 명령을 받은 차량은 멀어진다. 그런데, 1분도 채 안되어 다시 신호등은 붉게 변한다. 어디선가 또다시 출근 차량이 하나씩 줄지어 서고, 신호등에 물들 듯 붉은빛을 내뿜는다. 그리고 다시 초록불.

‘똑같은 모습이 반복되는구나’ 생각하면서 동시에, ‘신호등이 빨리 바뀐다’고 생각한다.

혼잣말을 내뱉는다.

‘곧 내 순서가 오겠군’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붉은빛은 투명하고 밝아졌다. 직육면체 아파트의 곧게 뻗은 선이 선명해지고,

신호등의 초록빛은 어느새 아파트 틈새에 짓눌린 나무들로 번져가고, 밀려난 어둠은 아스팔트 바닥으로 숨어든다.


투명한 빛 속에는 모든 색이 담겨 있다.

태양 빛의 파도는 잿빛 세상을 한 줄씩 저마다의 색으로 적신다. 밤새 맡겨둔 색을 찾은 만물은 기지개를 켠다. 태양은 세상을 깨운다.


시계를 본다. 6:22

나도 기지개를 켜고, 잠옷을 벗고, 샤워를 하러 간다.

아침이다.


머그컵에는 여전히 500ml 물이 담겨 있다.

태양 빛의 파도는 기억마저 쓸어간 것일까.

약을 먹을 때야 비로소 머그컵을 찾는다.

‘누가 물을 받아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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