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잔 것 같다. 월요일 오전 9시.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지만 몸이 기상시각을 기억하는 통에 눈 감고 가만히 누워있어도 잠은 일찌감치 깼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카톡 문자 때문에라도 이불속에서 오래 뒹굴기는 애당초 그런것이었다. 엄마는 자신이 요새 너무 늙은 것 같다고, 요즘따라 느의 외할머니가 자꾸 생각난다며 한숨지었다. 엄마와 바로 마주 보고 앉아 문자를 보냈을 아빠는 오늘자 신문 사설을 사진 찍어 보내면서 유익한 글이니 꼭 읽어 보라고 한다.
하....... 귀찮아... 나중에... 나중에 할래......
그러나 나는 머리까지 덮어썼던 이불을 홱 젖히고 꾹꾹 눌러 답신을 보냈다.
"그러게 세월이 참 빠르다. 그래도 엄마 아직 괜찮아."
"고마워 아빠, 이따가 읽어볼게."
내가 보낸 카톡의 1자가 지워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싶어서 문자를 보낼 때가 있다.
오늘 기필코 써야 할 원고에 겨우 제목만 달고서 커피만 석 잔 내려 마셨다.
나는 거실을 빙빙 돌며 손톱을 뜯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쏜살같이 써 내려갔다.
"기라성 같은 작가님들이 대거 참여하시는 프로젝트에 저 같은 애송이를 끼워주시는 게 얼마나 큰 기회이고 영광인 줄 너무 잘 알지만, 송구하게도 제가 글을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모두가 역량 부족인 제가 제 부족함을 모르고 욕심만 부려서 이리되었습니다. 준비하신 계획과 일정이 있으실 텐데 이리 차질을 빚게 만들어 정말로 죄송합니다."
폭탄을 던지듯 보내기를 눌러 놓고 초조하게 기다리길 몇 분. 답장이 왔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빠졌다. 나는 벌러덩 소파 위로 누워 버렸다.
세상엔 의외로 쉽게 풀리는 일이 있고, 세상엔 내가 아니면 꼭 안 될 일이란 없단 말은 참이었다.
몇 주 전에 막을 내린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꼭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볼일이 없어도 서로 전화하며 지내는 사이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걸었는데 그냥 마음만 먹을 걸 그랬다. 목적 없이 연락하면 좋아할 줄 알았는 데 목적 없이 전화하니 어색해하는 눈치였다.
천만다행으로 나에겐 넉살은 없어도 임기응변은 있었다. 나는 얼른 다른 작가의 이름을 대며 이미 내 폰에 저장되어 있는 이의 전화번호를 모르는 척 태연하게 물었다. 인간관계란 게 쉽게 맺어지지만 제대로 맺어지긴 쉽지 않는단 걸 깨닫는다.
몹시 애착을 기울였던 것들이 별안간 심드렁해지는 게 한순간이다.
밖에서 일한다고 몇 달 소홀히 했더니 엄동설한과 찌는 무더위도 견뎌낸 허브들이 죄다 말라죽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굽고 빚고 하며 조물딱 거리던 제빵기구 위로 먼지가 소복이 앉았다.
열정이란 게 얼마나 쉬이 꺼지는 것인지.
진작에 읽어 보려고 사둔 책을 들춰볼 시력도, 보다만 넷플릭스 시리즈를 마저 챙겨볼 기력도 없다.
콩나물 값이라도 벌어 보겠다고 직장을 잡은 게 엊그제인데, 여기에 뼈를 묻을 각오로 열심히 하겠다고 의욕을 다진 게 엊그제인데, 회사는 내일 당장 그만둘 것처럼 다니는 거라고 한 동네 언니의 말이 귓전에 맴돈다.
어쩜, 산다는 게 이리도 다 똑같은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