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롤랑가로스 리뷰
코로나 19의 전 세계적 유행으로 올해 롤랑가로스는 봄이 아닌 가을에 펼쳐졌다. 프랑스테니스협회는 엄격한 방역 절차와 함께 관중수를 제한을 두고 진행됐다. 전통을 중시하는 롤랑가로스도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다. 지붕과 조명시설을 설치하며 매번 골칫거리였던 우천 연기를 해결하니 새롭게 등장한 악재였다. 한편 롤랑가로스는 4대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클레이코트고, 호크아이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았다. 장내 인원 최소화 원칙에도 선심을 유지했고, 조코비치는 이에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남자 단식은 역시나 라파엘 나달의 경이로운 우승이었고, 여자 단식은 19살 챔피언 이가 시비옹테크의 스타 탄생이었다.
나달은 2005~2008년 4회 연속, 2010~2014년 5회 연속, 2017~2020년 4회 연속으로 롤랑가로스 챔피언에 오르며 그랜드슬램 최다 우승에 페더러와 함께 이름을 올렸다. 사실상 올해 한 번도 진적이 없는 세계 랭킹 1위 조코비치를 압도하며 거둔 기록이라 더욱 의미가 있었다. 이와 함께 시비옹테크는 여자 복식 4강에도 오르며 환상적인 경기력을 뽐냈고, 폴란드 선수 최초로 롤랑가로스 단식 정상에 오르며 단숨에 세계 17위로 뛰어올랐다. 결승에 오른 케닌 역시 21세로 패기 넘치는 플레이를 펼쳤지만, 시비옹테크의 공격적인 경기 운영에 무릎을 꿇었다.
롤랑가로스 100승, 13회 우승. 그랜드슬램 우승 공동 1위(20회). 라파엘 나달의 프랑스 오픈은 모든 게 압도적이었고, 매 순간이 의미 있는 기록이었다. 나달은 코로나 19의 여파로 US오픈을 불참해 경기 감각이 떨어졌고, 클레이코트인 로마 마스터스에서 8강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롤랑가로스는 흙신 나달의 무대였다. 4강 상대는 US오픈 우승장 도미니크 팀을 꺾은 170cm 단신 디에고 슈워츠먼이었다. 게다가 슈워츠먼은 지난 로마 마스터스에서 나달을 이기고 준우승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상승세를 자랑했다. 두 선수 모두 엄청난 코트 커버력을 자랑하며 끈질긴 랠리를 펼쳤고 첫 게임만 무려 14분이 걸릴 정도로 체력 싸움이 펼쳐졌다. 그렇지만 나달은 3세트 타이브레이크를 무려 7대 0으로 끝내버리는 집중력과 승부욕으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예상대로 1위 조코비치였다. 조코비치는 2015년 준우승 이후 5년 만에 롤랑가로스 결승에 올랐고, 올해 37승 1패의 압도적인 페이스였다. (1패는 US오픈 실격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롤랑가로스는 나달의 독무대였다. 나달은 1세트를 무려 6대 0으로 압도하며 완벽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나달의 강력한 백핸드는 코트 구석구석을 찍었고, 조코비치는 1세트에만 13개의 언포스드 에러를 기록하며 맥을 추지 못했다. 수세에 몰린 조코비치의 드롭샷은 번번이 막혔고, 나달은 결국 2시간 41분 만에 3대 0으로 우승을 결정지었다. 7경기에서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완벽한 우승이었고, 나달은 우승 후 "내가 이 코트, 도시와 만든 ‘러브 스토리’는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일"이라며 대기록을 자축했다. 나달은 20번째 그랜드슬램 우승으로 페더러와 동률을 이뤘고, 조코비치(17회)와의 격차를 벌리며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춘추전국시대가 이어지는 여자 단식 무대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했다. 2020 롤랑가로스 결승전의 주인공은 아직 학생인 19살 이가 시비옹테크였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오른 2001년생 시비옹테크는 폴란드 국적으로는 롤랑가로스에서 무려 81년 만에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며 대기록을 세웠다. 메이저 대회 16강이 최고 성적이고, 일반 투어 대회에서 우승 경력이 없는 학생 선수가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대학에 진학할지, 테니스에 올인할지 고민하던 어린 선수가 이제는 올림픽 메달, 메이저 대회 우승을 노리는 강호로 거듭났다. 나이만큼이나 롤랑가로스에서 보여준 경기력도 일품이었다. 시비옹테크는 롤랑가로스 여자 단식 13년 만에 무실세트 우승을 거뒀고, 여자복식에서도 4강까지 올랐다.
무서운 공격형 테니스를 구사한 시비옹테크는 파죽지세였다. 리턴 게임에서 브레이크를 여러 차례 따내는 집중력도 훌륭했고, 힘 있는 스트로크로 상대를 공략했다. 16강에서 톱시드 시모나 할레프도 68분 만에 2대 0으로 물리쳤고, 결승전 상대는 98년생 소피아 케닌이었다. 케닌 역시 공격적인 경기 운영으로 유명한 선수였고, 만 21세 이하 신예들의 결승전 맞대결은 2008년 호주오픈(마리아 사라포바, 아나 이바노비치) 이후 처음이었다. 하지만 클레이에서 자신감이 넘치는 시비옹테크는 강력한 서브와 스트로크, 적절한 드롭샷을 섞으며 케닌을 요리했다. 네 살 때부터 나달의 롤랑가로스 우승을 보며 자란 어린 소녀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2대 0으로 무실 세트 우승을 거뒀다. 폴란드 대통령부터 각계 인사들이 새로운 영웅에게 축하의 인사를 전했고, 시비옹테크는 더 큰 목표를 위해 다시 연습에 돌입했다.
2020년 롤랑가로스는 나달의 당연한(?) 우승이었지만, 여자 단식을 비롯해 다른 경기들은 이변의 연속이었다. 그랜드슬램 3회 우승에 빛나는 바브링카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20살 위고 가스통에게 패했다. 3회전에서 프랑스 출신 가스통은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하며 안정감 있는 경기를 펼쳤다. 바브링카는 49개의 위너를 성공시켰지만, 무려 74개의 언포스드 에러를 범하며 무너졌다. 특히 끈질긴 수비를 펼치며 왕성한 활동량을 선보인 가스통은 5세트에서는 무려 6대 0으로 바브링카를 완파하며 자국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여자 단식에서도 세계랭킹 131위 나디아 포도로스카가 와일드카드로 대회에 출전해 무려 4강까지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예선 3경기를 치르고, 8강에서 랭킹 5위 스비톨리나까지 2대 0으로 꺾으며 돌풍을 일으켰다. 아울러 16세 소녀 가우프 역시 작년 4강 진출자 콘타를 1회전에서 이기며 미래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긴 호흡의 클레이코트 특성상 장기전도 펼쳐졌는데, 올해는 더욱 끈질겼다. 1회전에 무려 6시간 넘게 접전이 이어졌고, 로렌조 지우스티노가 코렝탕 무테를 꺾으며 최후의 승자가 됐다. 5세트 16대 16에서 엄청난 집중력으로 지우스티노가 2포인트를 연속을 따내며 경기를 끝냈다. 6시간 5분은 롤랑가로스 역사상 2번째로 긴 경기 시간이었다. 지친 지우스티노를 가볍게 이긴 슈워츠먼 역시 새로운 스타였다. 170cm 단신이지만 경이로운 체력을 선보이며 8강에서 도미니크 팀까지 이기며 4강에 진출했다. 2년 연속 롤랑가로스 준우승, 올해 US오픈 우승자인 팀을 꺾으며 이변을 완성했다. 강한 멘털과 훌륭한 서브 리턴으로 상대를 괴롭히며 대역전극을 완성했다. 한편, 한국 선수로 유일하게 본선 무대에 오른 권순우는 25위 브누아 페르에게 0대 3으로 1회전에서 패했지만 좋은 경험을 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 사진 출처 : 롤랑가로스 홈페이지 Corinne Dubreuil / JTBC GOLF&SPOR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