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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장 박원순 Dec 26. 2017

시현씨, 뽀샵한 이게 원본이라고요?

김시현에게 물었다 part.2

인터뷰에 앞서, 
요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건 시장님이 요즘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그 ‘잘 모른다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청년 창업가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이런 것들도 모르고 시정을 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그 값진 이야기를 여러분과도 나눌까 합니다.





보통사람들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김시현은 오히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가다보니 거기가 더 높고, 특별한 곳이 되어 버린 경우다. 그렇다면 그의 부모님은 무조건 그의 편을 들어줬을까?  



사진관을 연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뭐라시던가요?


박원순: 그런데 부모님은 사진관 내는 걸 찬성하셨어요? 


김시현: 많은 부모님들이 그러시듯 저희 부모님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어요. 제가 증명사진을 찍을 거라고 하니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할 거면 차라리 연예인 쪽으로 가라. 지금 사진관들은 망하고 있는데 왜 그걸 하려고 하느냐?” 하셨죠. 그래서 제가 시장조사한 것을 보여드리며 잘할 수 있다고 어필도 했는데도 설득이 안 됐어요. 결국 시작부터 지금까지 부모님 도움 없이 모두 혼자서 했어요. 


박원순: 아 정말요? 겁이 안 나던가요?


김시현: 겁보단 어차피 잃을 게 없다 싶어서 신나게 했던 것 같아요. 알바를 해서 돈을 모으고 그 돈으로 지하에 있는 가장 저렴한 작업실을 마련하고, 그렇게 또 열심히 모아서 지금은 이렇게 지상에 있는 스튜디오를 열었죠!! 독하게 마음먹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발로 뛰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이 공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져요. 


박원순: 이야~(감탄) 처음부터 부모님 도움 없이 자력으로 했군요. 대단합니다.


김시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동시에 스튜디오를 쓱 훑는다. 다시 보니 공간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의 피땀이 곳곳에 배어 있는 것 같다. 스튜디오에 걸린 사진 하나하나가 다르게 보인다.  


   

제 얼굴의 주름에서 뭔가 보인다고요?


박원순: 시현씨의 작품들을 보니 모델들이 전부 미남, 미녀들이네요. 일부러 그런 분들만 받은 거예요?


김시현: 아니예요. 모두 직접 신청하신 분들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은 단순히 예쁘다기보다 다들 자기 개성을 잘 표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시장님도 제 작품의 모델이 되어 주시면 안 되나요? 제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세요.


박원순: 그런데 나는 미남이 아니라서, 허허


김시현: 제가 보기엔 충분히 ‘미남’이신데요? 개성이 중요하지요, 시장님.


박원순: 절대 잘생겼다는 이야기는 안 하고, 개성이 있다는 이야기만 하는군요(웃음).


김시현: 특히 시장님은 미소가 너무 좋아요. 원래 사람이 마흔이 넘어가면 그 사람의 인상에 인생이 남는다고 하잖아요? 시장님은 웃는 주름이 너무 예쁘게 잡혔어요. 그리고 거기에 시장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증명하는 것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게 시장님은 탐나는 모델이십니다!


박원순: 그런가요?


김시현: 아! 제가 오신 손님들에게서 배운 건데요, ‘내가 잘생겼다, 나는 멋있다’ 이렇게 생각하는 자존감 높은 분들은 멋있게 보이더라고요. 예전에는 저도 겸손하게 “아닙니다.” 이렇게 말했는데, 지금은 장난으로라도 사람들에게 “나 되게 예쁘다.” 이렇게 말하고 다녀요.


박원순: 맞아요. 약간 오버(!)를 하더라도 자신감을 갖는 게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제가 가끔 사람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어요. “당신의 삶이 거대한 하나의 서사시가 되게 하라!” 큰 꿈을 가지고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해서 얘기하고 다녀요.   


김시현: 그럼 시장님도 스스로 잘생겼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박원순: (속삭이듯)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순간 현장이 뒤집어졌다. 웃기려고 한 말이긴 하지만 막상 하고 보니 민망하다. 


김시현: 그렇구나! 갑자기 급 멋있어 보이시는데요?


박원순: 부처님이 그러셨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흔히 오해하는데 이 말은 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의 존엄을 얘기하는 말이에요. 우리 모두 소중한 존재라는 거죠.


김시현: 자기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


박원순: 이야~(감탄) 맞아요. 하이파이브!


김시현: 그러니까 이제 시장님도 미남이잖아요. 제 모델이 되어주세요~~


김시현에 이끌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작업실로 이동한다. 묘한 설렘이 느껴진다. 원래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인데 목덜미에 땀방울이 송글 맺힌다. 긴장과 기대감을 갖고 작업실로 이동한다.



포토샵을 한 사진이 원본이라고요?


좁은 작업실에서 그가 지시하는 대로 15도 정도 비스듬히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영 어색하다. 어정쩡한 포즈로 질문을 이어간다. 


박원순: 사진을 찍다보면 정말 다양한 얼굴들을 보게 되는데, 그분들의 얼굴이나 표정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김시현: 제가 이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친구들이 자기 색깔이나 개성을 보여주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정말 세상에 안 예쁜 사람은 하나도 없구나 싶더라고요. 


박원순: 솔직히 정말 한 번도 못생겼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나요?


김시현: 전 항상 사람들에게 콩깍지 다이아몬드깎지로 낀다는 소리를 들어요~ 다 개성있고 멋져요.


박원순: 정말로요?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지금 이 순간?(웃음)


김시현: 아니에요~ 시장님도 아름답습니다. 왜냐면 저에겐 포토샵 후가 보이거든요! (웃음) 저는 보정을 좀 중요하게 생각해요.


박원순: 그건 진정한 자기 모습이 아니지 않나요?


김시현: 시장님, 제가 질문을 해 볼게요. 거울에 비치는 모습이 원본이라고 생각하세요? 또 사진 찍으면 바로 보이는 보정 전 사진이 원본인가요? 그럼 그것들이 모두 시장님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하세요?


박원순: 흐음... 당황스럽네요. 일단은 그럴... 것... 같기는 하네요. 물리적으로 보면 그대로 찍은 게 원본 맞지 않아요?


예상외 질문에 살짝 말문이 막힌다. 그게 원본인 것 같은데, 저렇게 물어본 것에는 뭔가 이유가 있을 테니까.


김시현: 만약 그것들이 원본이라면 시장님이 저를 눈으로 직접 볼 때랑, 거울을 통해 저를 볼 때랑, 사진을 찍어서 볼 때랑 모두 같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아직 무슨 말인지 감이 안온다. 


김시현: 예를 들어서 연인을 눈으로 직접 본다고 상상해 봐요. 우리는 지금 상대방이 너무 사랑스럽기 때문에 상대방 얼굴에 뾰루지가 났는지, 코털이 삐쳐 나왔는지 등 그런 것들을 굳이 보지 않잖아요. 그런데 카메라로 얼굴을 찍으면 그런 디테일을 다 잡아 내거든요. 그래서 사진으로 봤을 때는 내 눈으로 봤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도 하죠. 그럼 어떤 것이 원본일까요? 


박원순: 흐음...


김시현: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더 예쁘게 바라보잖아요. 흔히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죠. 반대로 화가 나 있으면 상대방이 더 못나 보일 때도 있고요. 결국 예쁘게 나온 사진도, 못나 보이게 나온 사진도 전부 내 얼굴에서 비롯된 것이니 어느 특정 하나를 콕 집어 “이게 너의 진짜 모습이야” 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박원순: 제가 맞게 이해한지는 모르겠지만, 시현씨의 말을 들어보니 우리가 원본이라고 칭했던 것들이 어쩌면 우리의 본질을 다 담고 있진 않다는 얘기로 들리네요. 하긴 실제로 사람의 얼굴이란 건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보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서 달라지기고 하지요. 빛의 세기에 따라 달라 보이기도 하고. 결국 절대적인 원본이란 건 애초에 없는 거네요?


김시현: 그렇죠. 제 사진의 보정은 그런 사랑의 콩깍지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며 빠져든다. 과학적 사실 관계를 떠나 이 주장에 솔깃해지는 이유는 본인 안에서 많이 고민하고 단련된 언어들이기 때문 아닐까? 더 깊이 물어보고 싶어진다. 



얼굴의 흉터를 지우지 않았다면서요?


박원순: 새로운 발견이네요. 그런데 만약 보정을 해서 사람들이 실물이랑 너무 다르다고 비판을 하면 어떻게 해요?


김시현: 그래서 저는 ‘뽀샵’을 너무 무리하게는 하지 않아요. 제가 기본적인 비대칭과 전체 균형을 잡은 후  같이 상의하면서 수정해요. 그 친구가 생각하는 본인만의 아름다움이 있고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있으니 그걸 하나로 만드는 작업을 하는 거죠. 또한 자신의 개성을 없애고 싶어하는 분에겐 제가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해요.


박원순: 소통을 하는 거군요?


김시현: 네, 전 그게 저만의 차별점이라 생각해요. 보통 증명사진은 “30분 뒤에 오세요” 하고는 알아서 포토샵을 해서 주잖아요? 저는 전적으로 서로가 같이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요. 


박원순: 이야기를 듣다보니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진 고객을 만났을 것 같은데, 그분들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분이 있나요? 물론 개별적으로는 다 특별한 분들이긴 하지만.


김시현: 모든 분들이 다 기억에 남고 소중한데요, 가끔 제게 큰 울림이나 가르침을 남기고 가는 분들이 있죠. 


박원순: 예를 들면?


김시현: 촬영을 마치고 보정할 때 제게 큰 가르침을 준 친구인데요. 저보다 어린 여자분이었어요. 얼굴에 큰 흉터가 볼에 길게 있었어요. 저는 당연히 얼굴 보정할 때 그 흉터를 지우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 분이 흉터를 지우지 않았음 하는 거예요. 


박원순: 응? 왜요?


김시현: 흉터가 있는 얼굴이 본인의 얼굴이고, 본인은 그게 너무 좋다면서요. 그 순간 그분이 너무 아름다워 보이는 거예요. 솔직히 저라면 일상생활에서 신경 쓰일 정도로 되게 큰 흉터였거든요. 그래서 그 이후론 손님들 얼굴에 있는 작은 점까지도 다 물어보고 지워요. 그 점이나 흉터도 그 사람에겐 다 의미나 사연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박원순: 요새는 흉터가 있으면 수술해서 다 지울 수도 있던데, 그걸 드러내다니... 물론 쉽지 않은 시간을 견뎌낸 결과겠지만... 아무튼 대단한 분이네요. 시현씨도 뭔가 띵 하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겠어요. 


김시현: 네, 저도 놀랬어요. 그래서 저도 다음에 오는 손님들한테는 얼굴에 점이 있으면 나름의 애드리브로 그 점들에 의미 부여를 해줘요. 예를 들면 “이 점은 북두칠성 같네요” 아니면 “은하수 같아요” 이렇게요. 그러면 그 점이 되게 예뻐 보이는 거예요. 


박원순: 지금 저한테 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잘할 것 같아요. (웃음)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 거네요?


김시현: 또 얼마 전에는 웃을 때 한쪽만 입이 올라가는 손님이 있었거든요. 스스로 어떻게 웃는지 몰랐던 손님이었는데, 제가 되게 멋있게 웃는다고 말해주니까 그 웃음을 개성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그전까지만 해도 본인이 어떻게 웃는지 몰랐다가 그 미소가 자신을 보여주는 것 같다며 좋아하셨어요. 


박원순: 한 사람의 인생을 변화시킨 거네요?


김시현: 제가 배운 게 더 많아요.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해주는 것은 결국 주위에서 그것을 어떻게 보고, 말해주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죠. 



박원순: 저도 오늘 시현씨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작은 깨달음을 얻어 가는 것 같아요. 자기만의 것, 자기만의 세상, 자기만의 역사가 중요한 법. 구태여 남과 같아지려 노력할 필요가 없잖아요? 


김시현: 그래서 저는 사진 찍을 때 배경색도 손님들에게 직접 정하시라고 권해요. 색깔이 정말 많거든요, 세상에는.


박원순: 본인의 표현하는 색을 본인이 정하는 것은 의미가 있겠군요. 그런데 저처럼 색이 담긴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은 어떡하죠?


김시현: 그럴 땐 또 제가 배경색을 조언해 드려요. 손님들이 입고 온 의상 스타일이나 화장과 표정, 이런 걸 보면서 그들의 취향이나 잘 어울릴 색을 파악해서 도리어 제안을 드리기도 해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화를 주고받으며 사진 촬영을 이어간다. 내 표정이 어색한지 나를 웃게 하려고 끊임없이 칭찬을 던진다. 과하다기 보다 기분 좋아지는 말들에 저절로 미소 짓게 된다. 이런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김시현만의 힘이 아닐까?



제겐 어떤 색이 어울리나요?  


조금은 긴장됐던 촬영을 마치고 배경색을 고를 시간이다.


김시현: 시장님 스스로는 어떤 색깔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오시는 손님에게 배경색을 직접 골라 오시라고 숙제를 드리거든요.


박원순: 나는 뭐, 그냥 뭐... 하하(당황)


살면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고민은 많이 했지만 스스로 어떤 색깔의 사람인지 고민해 본 적이 없었기에 말문이 막힌다.


박원순: 나는 다양한 취미와 다양한 삶을 살아와서 하나를 선택하긴 쉽진 않은데... 음... 그래도 블루, 파란계열이 좋은 것 같아요.


김시현: 파란색이요? 이유가 있으세요?


박원순: 어... 음... 이유를 말로 하려니까 어려운데... 그냥...


김시현: 더불어민주당! 민주당 색깔이라?


현장에 또 웃음이 퍼진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면서 현장에 웃음이 많은 것도 처음이다. 


박원순: 나는 바다색이 좋아요. 바다도 다 색이 다르긴 하지만, 정말 푸른 바다는 에메랄드빛이 나잖아요. 맑은 하늘의 색도 좋고. 


김시현: 제 생각에 시장님은 나무 같은 갈색이 잘 어울릴 거란 생각을 했어요. 나무란 게 오랫동안 한 자리에 그대로 서 있어서 남들이 기댈 수도 있고 사람들을 달래주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시장님께 어울리는 색은 어두운 갈색인 나무색을 생각해 봤어요.


박원순: 내가 좋아하는 색과 내게 어울리는 색은 다를 수가 있으니까요.


김시현: 제 경험상 본인에게 어울리는 색과 그 사람의 표정이 합쳐지면 시너지가 나더라고요. 자신을 진짜 증명해주는 증명사진이죠.


박원순: 그럼, 두 장도 찍어줄 수 있어요? (웃음)


김시현: 아뇨. 저는 증명사진은 한 포즈만 드려요. 저는 딱 한 장에서 나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시는 손님들 중에 다른 사진들도 달라고 하시는데 정중히 말씀드려요. 저는 한 장으로 승부합니다.


박원순: 그럼, 색을 정해볼까요?


김시현: 일반적으로 연세가 있으신 남자분들은 피부톤이 좀 어두운 편이라 너무 밝은 배경색을 쓰면 얼굴이 더 어두워 보여요. 그래서 좀 더 차분하고 따듯하고 채도가 높은 어두운 색이 얼굴을 살리거든요. 만약 꼭 블루를 원하신다면 짙은 남색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는 남들이 기댈 수도 있고, 때론 달래주기도 하는 나무 같은 느낌을 살려서 어두운 갈색을 추천드립니다~


박원순: 그럼 시현씨를 믿고 직접 추천해 주셨던 나무색으로 한번 해보지요.


김시현: 이제 가장 즐거운 뽀샵을 같이 하러 가실까요?


박원순: 아이고, 주름은 살짝 좀 지워주세요. 하하하(민망)


     

박원순 by 시현하다, 전격 공개!


김시현: 일단 주름을 너무 펴 버리면 시장님의 삶의 여정도 안 보이니까 피부 톤만 살짝 조정할게요. 그런데 시장님 너무 장난꾸러기처럼 나오셨어요~


박원순: 내가 사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말썽이란 말썽은 혼자 다 부린 애였어요. 가족들도 못 말릴 정도로.


김시현: 진짜 인상이 너무 좋아요. 저희 아버지 다음으로 잘 생기셨어요.


그의 칭찬은 보정작업에도 멈추지 않는다. 타인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영업왕이 되고도 남겠다.


김시현: 잔머리도 조금 정리하고, 수염도 밤이라 많이 자라셨네요. 제가 살짝 면도를 해 드릴게요. (쓱싹쓱싹) 쨔잔~ 원본보다 좀 더 잘생긴 원본입니다~ 제 눈에는 시장님이 이렇게 보여요. 


박원순: 아까 시현씨가 말한 ‘꽁깍지가 씐 원본’이란 게 이런 거군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박원순 by 시현하다



앞으로도 증명사진만 찍을 건가요?


박원순: 보정하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제가 인터뷰하러 왔다는 사실을 까먹을 정도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볼까요? 시현씨는 앞으로도 증명사진만 찍을 생각이에요?


김시현: 저는 사진관이란 곳이 개인의 초상사진을 찍어주는 곳이라 생각해요. 보통 연예인들은 ‘스튜디오’에 가지만 우리들은 ‘사진관’에 간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평범한 사람들이 오래오래 간직할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관 언니가 되고 싶어요. 사진 잘 찍는 아줌마가 되고 싶고,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가족사진을 찍고 싶어요. 집집마다 걸려 있는 가족사진.


박원순: 가족의 변화, 성장을 담는 것도 의미가 있겠네요. 아이들이 자라고 손자가 생기고...


김시현: 그래서 그걸 잘 하려면 저도 계속 성장해야겠죠. 삶의 깊이가 깊어져야 좋은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 멀었죠. 아직 주름의 의미나 삶의 깊은 감정들을 다 겪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박원순: 나 같으면 지금 장사 잘될 때 증명사진만 찍지 않고, 가족사진도 찍고 이것저것 다할 것 같은데. 가족을 잘 찍으려면 가족의 마음과 그 세월의 무게를 다 이해해야 된다는 얘기죠? 마지막까지 제게 감동을 주네요. 


김시현: 스물다섯인 제가 다 이해했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잖아요. 그러나 저는 계속 성장 중이니까 나중에는 누구보다 좋은 가족사진을 찍는 사진관 언니, 아줌마, 할머니가 될 거예요.


박원순: 이런 표현이 좀 외람될 수도 있겠지만 참 기특하단 생각이 드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해요?  


김시현: 제가 좀 잘 나가지고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런 건 인터뷰에서 빼주세요(수줍).



모든 인터뷰이에게 하는 공식 질문!


박원순: 이전 인터뷰들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이 인터뷰의 공식 질문이 있어요. 


김시현: 네, 봤어요. 그런데 너무 어려워요~


박원순: 그럼 질문 들어갑니다. 김시현에게 서울이란?


김시현: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곳. 지방에 있을 때는 잘 몰랐던 것들을 서울에 와서 많이 알게 되었어요. 시골에서 온 제게 서울이란 너무 신기하고 다양한 공간입니다.


박원순: 저를 실제로 본 건 처음이잖아요. 김시현에게 박원순이란?


김시현: 사실 시장님을 예전부터 좋아했고, 책도 보고 했어요.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그 책을 정말 좋아해요. 


박원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출판을 많이 하는데 잘 팔리진 않아요(웃음).


김시현: 워낙 높으신 분이라 마냥 어렵게 생각했는데 실제로 대화를 나눠보니까 ‘이런 분이 서울시장이어서 너무 안심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박원순: 오늘 제가 비행기를 너무 오래 탔군요. 그럼 이제 진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김시현: 이런 인터뷰 프로젝트를 하시는 것 자체가 놀랍고 신선했어요. 제겐 저~ 멀리 계셨던 시장님이 저를 인터뷰하신다니, 하고 있는 지금도 꿈만 같아요.


박원순: 아이고, 아니에요. 오히려 오늘 내가 많이 배우고 있어요. 요즘 이 프로젝트 덕분에 대단한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많이 만나고 있어요. 시현씨도 그분들 중에 한 분이구요.


김시현: 감사합니다!




[인사이트인터뷰 며칠 뒤김시현을 떠올려본다


입신양명(立身揚名).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드날린다는 뜻이다. 젊은 날을 함께 보낸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을 떠올려보면 입신양명을 지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다. 본인이 입신양명에 뜻이 없더라도 이름을 떨치는 이들을 동경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 내 삶에 故 조영래 선배를 만났고 그에게 영향을 받아 삶의 항로를 변경했다. 결국 변호사를 관두고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고, 온 힘을 다했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지금 모두가 아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입신양명을 바라고 산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그렇게 되어버린 셈이다. 그런 내게 선배가 초심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연한 기회에 내게 김시현이란 젊은 친구가 찾아왔다. 마치 선배 대신 온 것처럼.


내가 만난 김시현에게서는 ‘입신양명의 정서’를 느끼기 어려웠다. 많지 않은 나이에 벌써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예술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로 성장하고 싶다거나 역사에 남는 사진을 찍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사진관 언니로, 아줌마로, 할머니로 살며 늙고 싶단다.


또, 현재 운영하는 사진관 <시현하다.>가 자신이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고도 했다. 누구든지 아무 때나 찾아와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느리고 한적한 소도시의 사진관을 원한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나서야 만날 수 있는 포토그래퍼, 입신양명을 이룬 젊은 작가라면 더 높은 곳을 꿈꿀 줄만 알았는데 아니더라.


타인의 시선, 사회의 기준으로 성공을 재지 않고, 나만의 목표, 나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김시현의 꿈은 어릴 적 나의 꿈과 닮아 있다. 그러나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이런 청년들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기에 적절한 바탕을 우리 어른들은 제공하고 있는가? 나는 이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들을 했는가?


내가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 있다. 서울이 어떤 도시가 되어야하고, 그 상황에서 난 어떤 선택들을 해야 하는가? 매번 답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오늘만큼은 청년들이 주위 사람과 자신의 삶을 비교하는 게 아닌,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도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도시를 만드는 것이 내가 가진 작은 소명이 아닐까 마음 한 켠에 새겨본다.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도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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