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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장 박원순 Jan 02. 2018

진감독, 족보 없는 드라마를 만든다고요?

진경환에게 물었다 part.1

인터뷰에 앞서,
요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건 시장님이 요즘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그 ‘잘 모른다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청년 창업가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이런 것들도 모르고 시정을 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그 값진 이야기를 여러분과도 나눌까 합니다.




하루에도 스무개가 넘는 일정을 소화하다보니 매번 일정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하게 된다. 기다리시는 분들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노력하지만, 매번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그런데 오늘은 하늘이 도운 것인지 교통상황이 수월해 30분이나 일찍 도착,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진경환 감독이 도착하기 전이다.  


일찍 도착은 했지만 마냥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 오늘의 인터뷰 영역은 웹드라마. 요즘 웹드라마가 ‘핫’하다고는 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가 ‘별에서 온 그대’이다 보니 그가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사실 인터뷰이가 누군지 모르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매번 그래왔기 때문에) 인터뷰이가 활동하는 영역 자체가 내겐 너무 생소한 것이 조금 염려스럽다. 


우선 나처럼 진경환 감독이 누군지 ‘전혀’ 몰랐던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준비했다.

- 성명: 진경환(예명: 도루묵)
- 직업: 감독 겸 배우
- 소속: 72초(주식회사 칠십이초)
- 특징: 72초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크리에이티브 그룹으로 기존의 방송 매체가 아닌 유튜브, 페이스북 등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초압축 드라마로 유명한 72초 드라마부터 72초 데스크, 오구실 등 현실을 다양한 관점으로 담은 영상들을 통해 현재 합산 5,000만회에 달하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와 주목을 받고 있다.

# 주요 작품
: 72초 시즌1 몰아보기 https://youtu.be/Jgu-J29DZkc
: 72초 데스크 EP.절도범 https://youtu.be/pv0FihuZDOo



제가 할아버지를 닮아서 어려워졌다고요?

이런 저런 생각을 정리할 때쯤 진경환 감독이 늦어서 죄송하단 얼굴로 들어온다.


진경환: 시장님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해요. 차가 좀 막혀서...


박원순: 아녜요. 충분히 이해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잠시 한숨 돌리세요. 차라도 한잔 하실래요? 


진경환: 바쁘신데 이렇게 저를 인터뷰를 다 해주시고... 


박원순: 아녜요~ 괜찮아요. 내가 남는 게 시간 밖에 없어요.


괜히 진감독이 미안해 할까봐 너스레를 떨어본다. 막연히 떠올린 것과는 달리 세련된 인상을 주는 청년이다. 생글거리는 표정에서 조금 엉뚱한 면이 엿보인다.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몸풀기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대뜸,


진경환: 시장님이 저희 할아버지 닮으셨어요. 그래서 뭔가 갑자기 좀 어려워졌어요.


박원순: (당황)네? 


확실히 엉뚱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박원순: 지난번에 만났던 씬님도 그 얘길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할아버지 같았는데 인터뷰 끝날 때쯤엔 아빠 같다며... 얼마 전에 시청 앞에서 씬님이랑 그 아버지랑 같이 또 만났어요. 행사 때 만났는데...


진경환: 아아, 제 얘긴 할아버지뻘이란 얘기가 아니라 저희 할아버지랑 외모가 닮으셨다고요. 저희 할아버지 젊으셨을 때 모습이랑 많이 닮으셨어요.


멋쩍게 웃는다. 내가 혼자 찔려서 괜한 소릴 했구나.

     


몰라서 물어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박원순: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항상 인터뷰 시작은 이렇게 시작해요. 몰라서 물어봅니다. 진경환 감독, 당신은 누구십니까? 오늘은 특별히 72초 안에 답변을 해주세요.


현장에 시작부터 웃음이 퍼진다. 내 애드리브가 먹혔다.


진경환: 음... 어... 아직 시간 안 가고 있죠?


박원순: 자, 시작!


진경환: 음... 저는 기본적으로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는 걸 좋아해서, 지금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족보 있는 결과물’이 아닌, 오히려 족보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 감독 겸 배우, 진경환입니다.


박원순: 족보가 없다라... 어떤 콘텐츠인지 궁금한데요. 사실 제가 일부러 안보고 왔어요. 콘셉트를 유지하기 위해서!


진경환: 사실 제가 평소에 ‘특별한 생각을 해야지’라고 하는 건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프랑스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프랑스는 영화도 음악도 다양한 주제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아, 제가 프랑스어를 전공해서 파리에서 유학을 했었거든요.


박원순: 봉쥬~흐 (씨익)


진경환: 옷! 발음이 좋으신데요?


박원순: 제가 제2외국어를 불어로 했어요. 아무튼 그러면 시나리오도 직접 쓰나요?


진경환: 네, 직접 쓰기도 하고 함께 상의해서 쓰기도 해요.


박원순: 혼자 다 해먹네(웃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고~


진경환: (수줍)죄, 죄송합니다. 


다시 현장에 웃음이 퍼진다. 나랑 쿵짝이 잘 맞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잘 맞춰주는 것 같다. 역시 센스가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진경환: 사실 혼자 다 하고 싶어서 했다기보다 초기에는 배우를 캐스팅하기가 어려웠죠. 이런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없었으니 선뜻 캐스팅이 안 되더라고요.


박원순: 돈도 없으니까, 그죠?


진경환: 정확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혼자 하게 됐습니다.


박원순: 그런데도 1,000만 뷰가 넘는 영상을 만들었다는 거죠?   


진경환: 네, 그렇습니다. 운이 좋았어요.


박원순: 정말 부럽네요. 나는 책을 써도 항상 초판클럽에서 못 벗어나는데. 나도 뭔가 1,000만 명이 좋아할 만한 것을 만들 수 없을까요? 그러고 보니 서울시민이 1,000만이네요.


진경환: 책도 좋지만 다른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방법은 유행이 아닌, 시장님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으로 하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법이라... 짧게 소름이 돋는다. 지나가는 말에도 힘이 실려 있다.



왜 하필 72초인가요? 

박원순: 그런데 왜 하필 그 많은 시간을 두고 72초인가요? 


진경환: 새로운 문법의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래서 생각한 게 압축 드라마였어요. 그리고 이걸 편집해보니 대략 1분에서 2분 사이가 되더라고요. 70초에서 80초 정도가 가장 많았어요. 


박원순: 그런데 굳이 72초로 한 이유가 있나요? 73초도 있고 77초도 있고 많은데...


진경환: 사실 72초는 크게 의미가 없어요. 70초대에 있는 숫자 중에서 가장 평범한 숫자를 고른 거예요. 발음도 해봤더니 부드럽게 읽히기도 하고. 특별한 의미가 없이 평범한 숫자를 고르다보니 72초가 됐습니다.


박원순: 그런데 확실히 시간이 짧으니까 경제적일 것 같아요. 짧다보니 시간도 비용도 많이 절약되지 않나요?


진경환: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사실 시간을 압축할 뿐이지 찍는 내용을 다 풀어서 보면 1시간짜리로 만들 수도 있어요. 실제로 촬영하는 분량을 보면 보통 드라마와 비슷한 수고를 들여요. 


박원순: 아, 보여지는 것이 짧다고 해서 들어가는 시간이나 노력이 적은 것도 또 아니군요. 


진경환: 네, 맞습니다. 같은 내용을 압축시키는 거죠.


박원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진경환: 사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 다 비슷하잖아요. 성공하는 작품들을 보면 공식이 있다 싶을 정도로. 평론가들은 그런 걸로 비판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보니까 일반적으로 제작하는 공식이 아닌 조금 다른 방법으로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쉽지 않은 게, 제가 영상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보니...


박원순: 오히려 전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진경환: 그런가요?


박원순: 기존의 틀을 벗어날 수 있으니까, 얽매이지 않으니까.


진경환: 아까 말씀 드렸던 것과 같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실험을 했는데 타이밍이 잘 맞아서 요즘처럼 짧은 영상에 열광하는 분위기와 맞물린 것도 있고. 아무튼 많은 분들이 재밌게 봐주셔서 그 덕분에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냥 운이 좋아서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 설령 로또와 같은 행운이 오더라도 그것은 길게 가지 못한다. 겸손한 말 뒤에 단단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왜 진경환에게 열광하나요?

박원순: 제가 봤을 때는 운만으로는 이렇게까지 올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진감독에게 왜 이렇게 열광하는지, 솔직히 오늘 만난 김에 비법 하나만 털어놔 봐요~


진경환: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평범한 것을 좋아하는데요. 그래서 그 평범한 것을 자주 관찰하고 오래 관찰해요. 그러다 보면 뭔가 재미있는 발견을 하게 돼요.


박원순: 아직 잘 모르겠어요.


진경환: 그러니까 되게 평범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흘러가다가 어느 한순간 맥락을 벗어나는 순간이 와요. 눈에 띄지 않게 잘 정돈된 평범함이 흐트러질 때 새롭게 느껴지는 거죠.


박원순: 예를 들면요?


진경환: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어요. 지하철에 물건을 파는 분이 여느 때처럼 들어오셨어요. 우리 모두 흔하게 경험하는 일상인데, 어느 날 그 분이 평소와 같이 물건을 파시다가 “아... 못하겠다” 이렇게 혼잣말을 하시다가 승객들에게 “그만 하겠습니다” 하고 힘없이 그냥 나가시는 거예요. 그 순간이, 그 아저씨의 뒷모습이 뭔가 드라마나 영화처럼 느껴졌어요. 


박원순: 그러니까 우리 주위에서 늘 있는 상황들이 갑자기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상태로 변해버리면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거죠?


진경환: 네, 그런 것들을 발견할 때 짜릿해요.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작품을 만들 때 재료로 쓰이는 것 같아요.


박원순: 하기야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예전에 독일에 있는 한 고등학교를 갔어요. 지인의 초대로 개교 30주년 행사라고 듣고 갔는데, 이런 웬 걸...?


진경환: 왜... 왜요?


박원순: 갔더니 30주년이 아니고 29와 1/3주년 기념식을 하는 거예요. 29주년도 아니고 30주년도 아니고, 29년하고 4개월이 지나서 하는 기념식이었어요. 


진경환: 재미있네요. 되게 신선한 것 같아요. 저도 한 번도 생각 못해본 건데.


박원순: 발상 자체가 내겐 너무 충격이었어요. 그러다가 ‘왜 꼭 30주년이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기존의 관행에 너무 파묻혀 있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진경환: 맞아요. 그런 생각들이 모여서 나중에 하나의 구체화된 드라마로 탄생되는 것 같아요. 시장님도 좋은 이야기를 만드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통했다. 하이파이브!



남들처럼 사는 게 더 어렵다고요?

박원순: 본인은 평범한 것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대화를 할수록 확실히 평범한 것 같지는 않아요. 처음부터 이런 창의적인 생각을 많이 했었나요?


진경환: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요. 그냥 평범하게 남들처럼 직장생활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죠. 


박원순: 왜 힘들었나요?


진경환: 원래는 공연분야로 취업을 했었어요. 그런데 현실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회사에서 제가 경험한 창작이라는 작업이 늘 똑같이 흘러가는 거예요, 패턴과 공식에 따라.


박원순: 그럼 더 쉽지 않아요? 공식에 잘 대입하면 성공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진경환: 고백하자면... 사실 남들이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하는 걸 잘 못해요. 


박원순: 똑같이 하는 게 오히려 힘들다...?


진경환: 네, 기존의 문법대로 하면서 좋은 결과를 내려면 그걸 뛰어 넘어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진짜 죽도록 열심히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경쟁이 오히려 힘들어요. 뛰어넘는 걸 떠나서 그냥 남들과 똑같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그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써야할 것 같았어요.


박원순: 재밌는 얘기네요. 보통 사람들은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 게 오히려 쉽다고 생각하는데, 진경환 감독님은 그게 어려워서 독자적인 길을 찾다 보니 혁신이 이뤄진 거네요. 


진경환: 그리고 회사생활이 즐겁지 않았어요. 그리고 10년, 또 20년 동안 이 일을 하고 살 수 있을지 막막했어요. 게다가 선배들을 보니 과연 인생이 앞으로 재밌을까 하는 걱정도 되더라고요.


박원순: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살잖아요.


진경환: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전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보통 남들이 하는 그걸 못하는 사람인거죠. 그렇게 살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타인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남들만큼 잘할 자신이 없어서 자신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는 이야기가 황당하지만, 어쩌면 혁신이란 것은 이런 고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간다. 그의 생각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 보고 싶어진다.




<진경환에게 물었다 part.2>는 1월 9일에 이어집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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