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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장 박원순 Dec 19. 2017

시현씨, 이런 사진으로 민증을 만들 수 있다고요?

김시현에게 물었다 part.1

인터뷰에 앞서,
요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건 시장님이 요즘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그 ‘잘 모른다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청년 창업가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이런 것들도 모르고 시정을 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그 값진 이야기를 여러분과도 나눌까 합니다.





오늘은 인스타그램으로 유명해진 사진작가를 만나러 간다. 바로 <몰라서 물어본다> 세 번째 인터뷰이 <시현하다.>의 포토그래퍼 김시현이다. 그런데 조금 의아하게도 그가 유명해진 이유가 증명사진 때문이라고 한다.


그에게 증명사진을 찍으려면 촬영예약을 해야 하는데 30초면 마감이 된다고 하더라. 젊은 직원들은 <시현하다.> 촬영예약이 수강신청보다 어렵다(?)고 하던데, 이것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프로젝트의 모토가 뭔가? 몰라서 물어본다! 모르면 찾아가서 물어보면 되지 않는가. 오늘도 일단 가서 왜 그렇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지 물어볼 작정이다.


우선 김시현이 누군지 몰랐던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준비했다.

성명: 김시현
직업: 포토그래퍼
소속: 증명사진 전문 사진관 <시현하다.>
특징: 사진관 <시현하다.>를 운영하는 포토그래퍼 김시현은 틀에 박힌 사진으로 간주되던 증명사진을 작품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의 판에 박힌 증명사진들과는 달리 그가 찍은 사진을 보면 피사체가 어떤 성격을 지닌 사람인지 진짜 ‘증명’이 되는 것이 특징이다. 촬영예약을 하려고 해도 오픈하자마자 마감이 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사람 다 됐네, 다 됐어!


박원순: 김시현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시현: 시장니이이임~~ 만나봬서 너무 좋아요! 식사는 하셨어(↘)요(↗)?


이 친구의 억양에서 친근한 느낌이 든다.


박원순: 네, 저녁식사하고 오는 길이예요. 그나저나 시현씨는 고향이 어디예요?


김시현: (살짝 당황)왜(↗)요(↘)? 저 거의 티 안 나는 편인데...


박원순: 딱 들으면 알아요. 나야말로 중학교 졸업하고 서울 와서 살다보니 이제 사투리를 안 쓰(↗)게(↘)됐어요.


김시현: 사실 저도 이젠 거의 안 쓰는데... 티 안 나지 않나(↘)요(↗)?


박원순: 서울사람 다 됐네, 다 됐어! 하하하


우리 둘의 첫 대화에 사람들의 웃음이 터진다. 스태프들은 서로 사투리를 안 쓴다는 이야길 ‘사투리로 하는 게’ 귀엽다며 둘 다 서울태생이 아닌 건 확실해 보인다고 한다.



몰라서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박원순: 그럼, 이제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할까요? 제 첫 질문은 늘 이렇게 묻습니다. 진짜 몰라서 물어봅니다. 김시현씨는 어떤 사람입니까?

   

김시현: 저는 사진관 언니입니다.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진 찍는 사람이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대중과 가장 많이 소통하는 작가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박원순: 사진관 언니? 그럼 주로 어떤 사진을 찍으시나요?


김시현: 요즘은 증명사진을 찍고 있는데, 원래 증명사진은 파란색이나 하얀색 배경으로만 찍잖아요. 그런데 저는 노란색이나 분홍색 같이 조금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배경색을 사용하는 증명사진 작가입니다.



박원순: 상당히 매력적인 증명사진이군요. 그나저나 이런 증명사진을 실제로 사용할 데가 있나요? 개인소장용인가요?


김시현: 보통 신분증이나 면접용 사진으로 다들 사용하시죠.



박원순: 그럼, 이 사진들로 여권을 만들 수 있나요?


김시현: 아뇨, 여권 사진은 흰색 배경만 됩니다. 단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같은 곳에는 쓸 수 있어요. 이력서에도 가능하구요.



스튜디오를 한 바퀴 둘러보는 내내 오랜만에 눈을 통해 신선한 자극이 들어온다.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어쩌면 그래서 너무 평범한 증명사진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30초 만에 마감, 이거 실화입니까?


박원순: 저도 사진을 찍고 싶어서 문의를 했더니 따로 촬영예약을 해야 한다면서요? 한 달에 딱 100명만 찍는데 그것도 30초만에 마감이 된다면서요? 이거 실화입니까?


김시현: (쑥스럽지만 당당하게)그렇더라구요!


쑥스러워하면서도 눈빛에 당당함이 있다. 잘난 체가 아니라 자신감이 묻어난다. 그나저나 ‘이거 실화입니까?’를 얼마 전에 배웠는데 이제야 한번 써 먹어본다.


박원순: 장사가 잘 되는데 200명, 300명 받으면 되지 않나요?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으란 말도 있는데.


김시현: 사실 저도 그 부분은 고민 안 해본 것은 아니예요. 그런데 직접 해보니 하루 첫 손님부터 마지막 손님까지 모두 똑같이 잘해드리려면 하루에 10명 이상은 못 찍겠더라고요. 제가 딱 사진만 찍는 게 아니라 손님의 모습을 끌어내기 위해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더 많이 찍으면 돈은 많이 벌겠지만 더 잘 찍어 드릴 순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하루 10명으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일종의 품질보증제네요. 보통은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길을 택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군요.


김시현: 안 한다기보다 못 하는거죠.


벌써부터 자기원칙이 확실하다. 이미 어느 정도 유명세를 얻었으니 나쁜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더 많은 손님을 받을 수 있을텐데. 왜 사람들이 굳이 저렴하지 않은 비용의 증명사진을 어렵게 예약해서 찍으려고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런 사진으로 민증을 만들 수 있다고요?


박원순: 그나저나 어쩌다 이런 증명사진을 찍게 됐나요?


김시현: 흔히 증명사진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전형적인 것들이 있잖아요. 참하고, 올림머리 하고, 피부는 하얗고, 눈은 크고, 입술은 빨갛고 이런 사진들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 증명사진이나 이력서 사진은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어요.


박원순: 그럼요?


김시현: 저는 머리도 보라색이고 평소 튀는 걸 좋아해서 제 학생증 사진부터 일부러 장난스럽게도 찍고 그랬었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개성있는 증명사진을 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박원순: 본인의 개성을 보여주자?


김시현: 맞아요. 뻔한 사진이 아니라 나를 정말 증명해줄 한 장의 사진을 찍자고 한 거죠. 세상이 원하는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성격을 숨긴 사진이 아닌 진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박원순: 우리는 증명사진이라면 너무나 일반적인 보통 사진들을 생각하는데, 이건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네요. 그런데 신분증으로 쓰이는 사진에는 규정이 있지 않나요?


김시현: 그래서 저도 규정을 찾아 봤어요. 시장님, 저기 핑크색 친구 사진 보이세요?


박원순: 이런 사진으로 민증을 만들 수 있다고요?


김시현: 저 사진도 규정에 맞춰서 찍은 거예요. 규정에는 입 모양에 대한 게 없거든요. 입이랑 눈썹에 관한 세부적인 규정이 없어요. 그렇다보니 입이랑 눈썹도 자유롭게 움직여도 되거든요. 배경색깔에 대한 규정도 없으니까요. 저 친구는 결국 저 사진으로 실제로 주민증도 만들었어요. 멋있죠?


박원순: 오~(감탄) 사진 한 장 한 장이 다 각자의 특색이 살아있네요. 나도 이런저런 표정으로 찍어보고 싶기도 하고, 배경색을 파란색으로도, 분홍색으로도 넣어서 찍어 보고 싶기도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네요.


입을 뾰족하게 내민 사진이 눈에 들어와 그 친구의 표정을 따라했더니 김시현이 손사래를 친다.


김시현: 시장님~ 안돼요 그건(웃음). 제가 아까도 말했다시피 가장 자신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게 제 작업의 핵심입니다. 시장님은 시장님이 보여주실 수 있는 걸 보여주셔야죠.


박원순: (아쉬운 듯)난 저것도 멋있어 보이는데...



왜 굳이 ‘사진관 언니’가 되고 싶은 건가요?


박원순: 아까 얼핏 듣기로 ‘사진관 언니’가 되고 싶다고 한 것 같은데, 맞나요?


김시현: 네 맞아요. 지금은 아직 어리니 사진관 언니로, 조금씩 나이를 먹으며 사진관 아줌마, 사진관 할머니... 그렇게 불리고 싶어요.


박원순: 시현씨가 말하는 사진관이 우리가 아는 그 사진관 맞나요?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동네 사진관?


김시현: 제가 어릴 때 저희 동네에 사진관이 하나 있었는데 저는 심심하면 거기로 놀러 갔어요. 사진관 사장님이랑 이런저런 수다도 떨고 걸핏하면 증명사진 찍어서 잘 나오면 좋아하고 잘 못 나오면 실망하고... 그런 것들을 반복했죠.


박원순: 일종의 놀이터였네요?


김시현: 그래서 저도 저 같은 친구들에게 놀이터이자 휴식처인 그런 사진관을 만들고 싶어요. 그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요. 고향 사진관의 사장님처럼. 지금도 고향에 갈 때마다 그 사진관에 들러요.


박원순: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나보네요?


김시현: 네, 제가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가지고 노는 게 취미였어요. 제가 학창시절 전학을 7번이나 다녔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사진을 찍어주고 포토샵을 해줬어요.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 프로필 사진은 전부 제가 찍어준 사진들이더라고요.


박원순: 그래서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거군요?


김시현: 사실 처음에는 대학을 갈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간디학교를 나왔는데, 그 학교는 수업시간 중에 “너는 어떤 삶을 살 거냐? 너에게 행복이란 무엇이냐?” 이런 질문에 고민을 해보는 시간이 많아요.


박원순: 아, 대안학교를 다녔군요. 저도 강의하러 몇 번 갔었어요.


김시현: 학교를 다니면서 철학적 사유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그렇다보니 행복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행복함을 느끼면서 잘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려보니 사진관을 하는 일이었어요. 내가 찍어주는 사진으로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행복할 것 같더라고요. 그게 고2 때예요.


     

스스로를 창의력이 없는 아이라고 규정했다면서요?


박원순: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찾다보니 사진관 언니가 목표가 됐다는 얘기네요? 그래도 보통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사진관을 운영하는 것보다는 작품 사진을 찍거나 유명인 화보를 찍고 싶어하지 않나요? 아니면 조금 더 창의적인 창작 활동에 매진한다거나...?


김시현: 저는 제 스스로 ‘창의적이지 않은 아이’로 규정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 학원 선생님이 저보고 창의력이 없는 아이라고 하셔서 저도 그런 줄로만 생각했죠. 그래서 예술이나 창의적인 일은 못할 테니 사진 관련 기술을 배워서 사진관을 열고 증명사진을 찍을 거라고 생각했었죠.


박원순: 그러다 결국 대학에 갔네요?


김시현: 네.


박원순: 얘기한 대로라면 학문보다는 기술을 배우는 게 낫지 않나요?


김시현: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돼죠?


박원순: 으음, 불편하면 말씀 안하셔도 돼요.


김시현: 아녜요. 사실 제가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부모님께서 “안 가는 것이 아니라 못 가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씀하셔서 발끈해서 갔죠(웃음). 제가 또 이상한데 승부욕이 발동해서. 그렇다고 사진관을 여는 꿈을 접은 것은 아녔어요. 막상 대학에 와보니 오길 잘했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원순: 의외네요? 왜 그런 생각을 했어요?


김시현: 입학하기 전에는 조금 대학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면도 있었어요. 그런데 확실히 대학에 오니 주위에 사진에 관해 깊게 고민하고 토론할 자리가 많더라고요. 혼자 고민할 때와는 제 생각의 확장폭이 달라졌어요. 대학친구들과 사진에 대한 대화를 많이 하게 되고, 교수님들에게 영향을 받기도 하고. 확실히 환경이 주는 영향이 있더라고요. 그러면서도 점점 ‘증명사진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고요.


박원순: 시현씨는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가장 소박하고, 가장 평범하고, 가장 단순한 길을 선택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큰 길이 되고 꿈이 된 거네요.


김시현: 아이고~ 그렇게 말해주시니 더 힘이 나는 것 같아요.


솔직하다. 보통 인터뷰에서 이런 흐름에는 회피하거나 애매하게 이야기하는데 자신의 고민의 흐름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보통사람들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데, 김시현은 오히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으로 가다보니 거기가 더 높고, 특별한 곳이 되어 버린 경우다. 그렇다면 그의 부모님은 무조건 그의 편을 들어줬을까?




<김시현에게 물었다 part.2>는 12월 26일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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