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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시장 박원순 Jan 09. 2018

진감독, 왜 ‘도루묵’이 되었나요?

진경환에게 물었다 part.2

인터뷰에 앞서,
요즘 젊은 직원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그건 시장님이 요즘 트렌드를 잘 모르셔서 그래요"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래서 그 ‘잘 모른다고 하는 것들’을 제대로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젊은이들의 문화를 함께 즐기고, 청년 창업가의 고민을 더 가까이에서 듣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은 노력부터 시작하려 합니다. 서울시장으로서 이런 것들도 모르고 시정을 잘 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그 값진 이야기를 여러분과도 나눌까 합니다.






진 감독과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해진다. 그가 만든 드라마는 내게 ‘별그대’만큼의 감동을 줄 것인가? 자못 기대된다.



72초 드라마는 ‘별그대’만큼 재밌나요?


박원순: 드라마를 만들 때 주제나 설정 같은 것들은 어떻게 결정하시나요?


진경환: 어... 저는 사실 딱히 ‘남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뭘까?’ 하면서 주제를 정하진 않아요. 그럼 이참에 같이 보면서 얘기를 해 볼까요?


진 감독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을 보여준다. 애인에게 팔베개를 해주다 팔에 쥐가 난 남성의 고민이 담긴 드라마라고 한다.

영상을 보시면 인터뷰가 2배 더 재미납니다


현장의 스태프들은 영상을 보면서 키득키득 난리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살짝 난감하다. 집중을 해보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생각했던 드라마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박원순: 음... 72초가 생각보다 기네요.


진경환: 이 영상은 딱 72초는 아니에요. 이거는 조금 더 길답니다.


박원순: (무미건조하게)재미있네요.


진경환: 반응이 저희 어머니 보여드렸을 때랑 비슷하네요.


현장이 웃음으로 뒤집힌다. 촬영을 하던 스태프는 웃다가 뒤로 넘어간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나요?


진경환: 시장님은 팔베개 해주다가 쥐난 경험 없으세요?


박원순: 나도 있지~ 난 다른 방법을 쓰지요. 아내에게 “물 마시고 싶지 않아?” 하고는 “물 가져다줄게” 하면서 쏙 뺀 적이 많아요.


진경환: 오! 상당히 괜찮은 방법인데요? 사실 저 영상은 ‘저 상황에서 팔을 어떻게 빼지?’ 하는 고민을 하다가 만든 거예요. 전 이렇게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야기를 가져오는 편이에요. 사소한 이야기를 살짝 비틀어 거기에서 재미를 찾으려고 노력하죠.


박원순: 그럼 사람들이 좋아하나요?


진경환: 잠깐 말씀드렸었는데 사람들이 좋아할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고민해요. 제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는 공감이고, 그 공감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한다고 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내 안에 있는 생각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내 생각을 사람들에게 잘 정리해서 보여줄 때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크리에이티브이고,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박원순: 그러면 감독으로서 서울시 홍보를 주제로 72초 드라마를 만든다고 하면 어떤 게 좋을까요? 정책이나 편의시설 같은 것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는데 이를 시민분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진경환: 음...


박원순: ...재미없을 것 같나요?


진경환: 아뇨~ 아까부터 계속 말했듯이 사람들이 뭘 좋아할까 고민하는 대신 시장님이 하고 싶은 것, 아니면 할 때 기분 좋아지는 것, 그런 것들을 드라마로 담으면 어떨까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때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지난 김시현의 인터뷰 때도 그랬지만, 확실히 진 감독도 자기만의 세계가 공고하고,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진경환이라는 필터로 세상에 던진다. 그리고 이는 설득력을 가진다. 이렇게 짧은 언어로 정리되기까지 자신의 안에서 얼마나 길고 긴 고민이 있었을까, 그 고민의 흔적들이 엿보인다.



월급통장 보면 놀라신다고요?


양파껍질 같은 청년이다. 까면 깔수록 흥미로운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제는 그가 만든 회사가 궁금해진다.


박원순: 지금 회사에는 몇 명 정도 근무해요?


진경환: 5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박원순: 오~ 많네요? 직원들 월급은 안 밀리고 꼬박꼬박 주나요?


진경환: 네, 그렇습니다. 사실 저는 공동창업자로 회사에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고요, 대표이사는 따로 있어요. 저랑 예전부터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형이 대표를 맡고 있어요. 저는 그 형에게서 월급을 받죠.


박원순: 그래도 수익이 상당한가 봐요? 직원들 월급 안 밀리는 게 쉽지만은 않은데. 저도 예전에 직원들 월급 주는 날만 되면 통장 보면서 한숨 많이 쉬었어요. 본인 월급은 얼마나 돼요? 이런 거 물어봐도 되나...? 허허허


진경환: 네, 대표님이 많이 주시더라고요. 통장 보면서 ‘이렇게나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박원순: 나보다도 많겠네요? 왠지 진짜 많을 것 같아~


진경환: 어... 그건 제가 나중에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웃음).


의외의 답변에 현장에서 웃음이 터진다. 우리 때는 이런 이야기를 쉽게 하지 못했는데, 확실히 신선하다. 이 솔직함이 유쾌하게 다가온다.


박원순: (혼잣말)나도 직업을 바꿀까... 허허허


진경환: (불쑥)괜찮은 것 같아요. 시장님 마스크가 좋아요, 굉장히 좋아요.


박원순: 어? 그래요? 이런 이야기 처음 들어요. 감독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일단 맡겨만 주면 열심히 할 수 있어요. 먼저 현장 막내부터 조감독 등등... 처음부터 주연배우는 힘들테니... 단역으로 슬쩍 지나가는 사람 같은 거 잘할 수 있어요.


진경환: 사실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데요. 서울시장 역할이 있어요. 제가 봤을 때 현재 대한민국에서 누구보다 이 역할을 잘하실 것 같아요.


박원순: 그럼, 드라마 주인공으로 뽑아주신다는 거죠?


진경환: 어... 주인공이 하고 싶으셨던 거군요(웃음).


민망함에 웃음이 터졌다.



왜 예명을 도루묵이라고 지었나요?


민망함을 날리기 위해 얼른 떠오르는 아무 질문이나 던진다.


박원순: 길거리에 나가면 사람들이 알아보나요?


진경환: 네,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박원순: 우와~ 하기야 천만뷰니까! 왠만한 공중파 드라마 배우보다 더 유명할 것 같아요.


진경환: 배우가 본업이 아니어서 사실 조금 민망해요.


박원순: 아 그래서 예명을 따로 쓰는군요?


진경환: 네, 도루묵이라는 예명을 씁니다.


박원순: 도루묵? 그 생선...? 왜 도루묵이라고 지으셨나요?


진경환: 네. 제가 생각보다 소심한 편이에요. 처음 배우를 하고 본명을 쓰려니 뭔가 민망해서 오랫동안 이메일 주소로 썼던 도루묵을 예명으로 쓰기로 했죠. 도루묵의 유래를 아시겠지만, 은어라고도 불렸던 이 생선은 바라보는 관점이나 상황에 따라 특별해지기도 하고 하찮아지기도 하고… 이런 점들이 저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생각해서 도루묵이라고 지었습니다.


박원순: 음, 결혼은요...?


진경환: 아직 못했습니다.


박원순: 아까 드라마에서 팔베개 해준 사람이랑 사랑이 싹 트진 않았어요?


진경환: 연기는 연기일 뿐이니까요. 저분은 사실 jyp 소속의 전문 배우예요.


박원순: 아, 그래도... 잘 되면 좋겠는데~ 잘 어울려요.


진경환: 아 그럼 제가 말을 한번 잘 해보겠습니다. 시장님이 만나보라 하셨다고(웃음).


또 한번 현장이 뒤집어진다. 매 인터뷰마다 그렇지만 오늘도 역시 현장에서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유쾌한 청년과 함께 한 덕분인지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



모든 인터뷰이에게 하는 공식 질문!


박원순: 이제 슬슬 인터뷰를 정리해야 될 때인 것 같군요. 저희 공식질문이 있습니다. 첫 번째 질문, 진경환에게 서울이란?


진경환: 어렵네요. 너무 당연해서 평소 생각 안 해본 거라... 음... 저는 서울을 사랑하는 서울시민이고 서울에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요.


박원순: 뭐가 그리 좋은가요?


진경환: 그게 시장님 때문인 적은 없었던 것 같고... (웃음)


끝까지 짓궂은 친구다.


진경환: 그냥 유학을 해서 그런가 봐요. 파리에 있을 때 서울이 너무 그리웠거든요.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그냥 좋은 곳, 사랑하는 곳. 그게 제겐 서울이에요.


박원순: 연인 같은 거네요. 특별히 이유가 없는 사랑. 진 감독님에게 서울은 연인 같은 존재라고 하면 좋겠네요.


진경환: 오~ 캐스팅하겠습니다! (웃음)


박원순: 그럼 두 번째 질문입니다. 진경환에게 박원순이란? 실제로 만나보니 어떤 것 같아요?


진경환: 예상보다, 그리고 TV로 보는 것보다 훨씬 매력 있으십니다. 


박원순: 진짜? 예의상 하는 말 아녜요?


말은 그렇지만 괜히 기분이 좋다.


진경환: 사실 얼마 전에 뉴스에서 시장님 소식을 접했는데 그 때 호감이 됐어요. 복지박람회던가? 날씨가 추워져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 추울까봐 준비해 간 연설을 직접 취소하셨다고. 저는 그런 결정을 하셨다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멋있으셨어요~


박원순: 사실 밤새 고쳐가며 준비한 연설문이었어요. 제가 평소 중요하게 생각한 분야라서.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 자리에서 읽어봤자 시민들 귀에는 안 들릴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올라가서 인사만 하고 내려왔죠.


진경환: 진정한 복지를 실현하신 겁니다. 현장에서 준비한 연설의 내용은 전달되지 않았을지 몰라도, 시장님의 복지에 대한 방향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느꼈을 거라고 봐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평범한 속의 공감입니다. 초반에 말씀 드렸던 지하철에서 물건 팔다가 그냥 나가버리신 분, 그런 느낌이었어요.


박원순: 아이고, 감사합니다.


진경환: 그런데 오늘 실제로 대화를 해보니 유쾌한 모습이 꾸며진 게 아니라 진짜인 것 같아서 저도 인터뷰 내내 즐거웠어요.


박원순: 민망하니 빨리 진행하겠습니다. 저나 인터뷰를 보고 있는 분들에게 마지막 하고 싶은 말을 해주세요.


진경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방식으로 하세요.


박원순: 확고하시네요. 그럼 진 감독님은 드라마 말고 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진경환: 최근 들어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생겼어요.


박원순: 어떤 건가요?


진경환: 요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식당도 차려서 손님에게 대접하는.


박원순: 원래 요리를 자주 하시나요?


진경환: 네,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집에서도 자주 요리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요. 40대가 되면 요리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박원순: 나중에 식당을 차리면 저도 꼭 불러주세요. 오늘 긴 시간 인터뷰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렇게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진경환: 개인적으로 색다른 경험이었고, 유쾌한 시간이었어요. 저야말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이트] 인터뷰 며칠 뒤, 진경환을 떠올려본다


소확행(小確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뜻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서 처음 사용된 말이라 한다. 내게 소소한 행복은 단연 집무실에서 시정과 관련된 기사나 정책을 위한 아이디어를 스크랩해서 사안별로 차곡차곡 정리하는 순간이다. 내게 이 순간이 행복한 것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에 따른 기대되는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요즘 유행하는 욜로(YOLO), 노말크러시(Nomal crush) 같은 말들을 보면서 청년들의 답답한 현실에 대한 위안이 되는 말들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내일’에 대한 기대보다 ‘오늘’을 견뎌내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여전히 서울시장으로서 시민들에게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법도 함께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진경환 감독을 만나고 난 뒤 조금 더 구체화 되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족보가 없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없어 자신만의 길을 간다고도 했다. 내가 느낀 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쟁에 대해 피로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겨루면 더 빠르게 뛰거나 더 멀리 날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렇기에 그는 그 치열한 트랙에서 내려와 다른 방식을 찾았고, 자신만의 소통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그는 대중들과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했고, 사람들은 그에게 응답했다. 그가 만들고 출연한 영상이 1,000만 번이 넘도록 재생되는 동안 그와 시청자 사이에는 끊임없는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다.


그 대화에는 행복과 성공, 사랑 등등 인생에 대한 그들만의 고민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영상을 보며 웃지 못한 것은, 다르게 말해서 내가 끝까지 그들의 대화에 껴들지 못한 것은 성공이나 행복과 같은 가치들을 판단하는 기준이 서로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시쳇말로 세대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간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단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이번 만남을 통해 그동안 성공과 실패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었나 반문하는 시간이 됐다. 그렇다고 내 생각이 완전히 바뀐 것도, 명확한 답을 찾은 것도 아니며, 이는 쉽게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란 것이란 것도 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래도 가야할 길이다.  


우리 나이쯤 되면 삶의 경계가 명확하게 굳어지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유연함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를 열고 마음을 다해 이에 대한 답을 계속 구하는 것이 서울시장으로서,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선배 박원순으로서 해야할 일이 아닐까 한다.


퇴근길에 젊은 비서에게 물어봤다. “OO씨는 언제 행복해?”라는 질문에 “코인 노래방에서 1절만 부르고 꺼도 스스로에게 미안하지 않다고 느끼는 요즘이요. 돈을 벌면서 누릴 수 있게 된 작은 사치거든요(웃음).”라고 답하더라.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는 못했지만 생글거리는 그 친구의 표정만으로 충분했다.


생글거리는 그 친구의 표정만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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