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이 자주 연락을 못하고 또 너희들이 자주 형한테 연락을 못한다 하더래도 우리,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자. 좋아하는 사람끼린데 연락을 얼마나 자주 하냐, 못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우리 가끔씩 오래 보자”.
바쁜 현실로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잊지 말고 가끔씩 오래 보자, 가끔씩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이 도시의 고단함을 잊고 다시 잘 살아내 보자. 다이내믹듀오의 ‘가끔씩 오래 보자’는 가끔씩 오래 보는 관계를, 고단한 일상을 잊고 살아내는 삶을 노래한다. 나에게도 이 가사와 닮은 인연이 있다. 대학 시절 인턴십을 계기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네 명의 동갑내기들. ‘유배김박’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임의 친구들이다. 친구들 이름의 성(姓)이 모두 달라 생년월일 순서로 성을 이어 붙여 만들었다. 같은 과는 아니었지만 10개월간 참여한 인턴십을 통해 동고동락한 사이였던 우리는, 짧은 시간에 가까워졌다.
우리 중 생일이 제일 빠른 ‘유’라는 친구는 현재 연년생 딸들 육아에 집중하고 있다. 나와 닮은 점은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이 많다는 점이다. 여행과 사진에 진심이었고, 손재주가 좋아 꾸미는 것도 잘했다(싸이월드 사진도 예쁘게 정리하고 꾸며서 업로드해 줬다). 최근에는 바리스타 자격증을 땄다고 했다. 카페를 하든, 인플루언서가 되든, 다시 회사에 취업을 하든, 앞으로 할 일을 고심 중인 것 같다.
‘배’는 나이는 같지만 우리 중에서 가장 먼저 육아를 시작했고, 휴직도, 초등맘도 가장 먼저 된 워킹맘 선배다. 얼마 전 회사에서 부서원은 하나라고 했지만 벌써 ‘팀장님’이 되었다. 직접 보지 않아도 우리가 지나온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그녀가 일도 육아도 야무지게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딸 둘이 많이 커서 함께 야구도 보러 다닌다는데 그 점도 부럽다.
‘김’는 내가 서울에 가면 항상 나를 재워준 친구이다. 휴학하고 서울에서 지냈을 때는 그 좁은 고시원에 데리고 가서 재워줬고, 취업 후에는 그녀가 사촌동생과 살고 있는 집에도 재워줬었다. 내가 무쓸모의 아무 말을 해대도, 그 친구는 나의 이야기를 잘 받아주었다. 사회성이 좋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며, 성격도 무던하다. 대학 졸업 후 10년 이상 같은 회사를 무탈하게 잘 다니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2번이나 회사를 옮긴 나와는 다르다.
‘유배김박’과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연애, 일, 취미, 주변인을 공유하며 자주 시간을 내어 만나곤 했었다. 짬을 내어 대천, 부산, 여수, 방방곡곡에서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기도 하였다. 지금은 사는 일에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은 봐야지, 그래도 연말이니까 만나야지, 애들과 신랑 놓고 함께 여행 가자,라고 말하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몇 달 전부터 서로의 일정을 확인해야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다 보니, 서로의 속속들이 자세한 사정까지는 알기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조금씩 새로운 근황을 가지게 만나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그 근황의 자질구레한 면은 덜어내어 간결하고 정돈된 것으로 전달한다. 그렇게 요즘의 나를 설명하고 친구의 요즘을 듣고 나면 일상의 번잡스러운 고민은 자연스레 그 부피가 줄어들고 가벼워진다. 그래, 다들 그렇게 살고 있지, 나만의 고민만은 아니었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담담한 친구의 모습이라던가, 조금씩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근황을 알게 되면 나도 나의 일상을 돌아보게 된다. 내년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11월에는 지고 있는 2024년이 아쉬워 1박 여행을 다녀왔다. 일정이 정해지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착착 준비가 이루어졌었다. 친구 하나는 일찌감치 우리가 묶을만한 아기자기한 숙소를 예약해 두었고, 나와 다른 친구는 일정에 맞춰 기차표를 예매하였다. 10주년이 되었다는 ‘킹키부츠’라는 뮤지컬을 보려고 각자의 신랑까지 동원하여 티켓팅에 도전하여 성공하였다. 최근 막을 내린 인기 절정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셰프의 식당 예약만은 못했지만, 아이들과는 절대 갈 수 없는 곱창집도 알아 두었다. 우리는 늘 그랬듯 10년도 더 된 옛이야기를 안주 삼아 떠들다가 10년 뒤의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까이에서 자주 함께하는 사이가 아니라서 당장의 내일모레를 약속할 수 없지만, 이렇게 좋은 사이는 가끔 만나더라도 내 삶에 알록달록한 기분과 활기찬 기운을 불어넣어준다. 이번 여행 내내 이야기 했던 내년 봄 여행도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