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출산, 육아 중에도 내 삶은 계속된다
노아 바움 백의 ‘결혼이야기’라는 영화는 이혼을 결심한 한 부부가 이혼을 위해 상담자 앞에서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담담한 말투의 남녀 주인공의 내레이션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이 함께 나오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두 남녀의 이혼사유가 더 궁금해진다. 평범해 보이는 한 부부의 일상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혼을 하게 된 걸까?
영화 결혼이야기 포스터 및 한 장면
니콜(아내)의 변호사는 이혼이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니콜의 마음을 터놓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통해서 나는 그 둘의 이혼 사유를 추측할 수 있었다. 남편인 찰리(남편)에 대한 불만이 조금씩 쌓여가게 되면서 문득 자신의 삶을 둘러보게 되는데, 그 순간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흘러왔는지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다. 니콜이 원하는 것은 TV에 출연하는 배우였고, 배우가 되기 위해선 지금 이 가족이 살고 있는 '뉴욕'이 아닌 자신의 고향이었던 'LA'가 적합하였다. 그러나 뉴욕에서 자리를 잡은 극단 대표이자, 감독인 찰리는 그 선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둘은 사는 지역부터 현재의 상황, 앞으로의 삶 대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해 이혼하기로 한다. 니콜의 입장에서는 결혼이라는 관계 안에서 자신은 원하는 것을 고집할 수 없는 사람, 원하는 것을 할 수 없다는 희망 없는 미래만을 가진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영화를 보며 나는 10여 년 전 내가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을 때가 떠올랐다. 옆 팀의 여자 선배는 당시, 연년생이자 유치원생 남매를 키우고 있는 맞벌이 부부였다. 아이가 잔병치레를 자주하여 병원을 자주 다니면서 연차를 자주 쓰며 일하고 있었는데, 매일 퇴근 후 유치원에서 가장 늦게 하원하는 자신의 아이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워킹맘이었다.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인정받는 선배이긴 하지만 일과 육아로 항상 바빠 보였다. 선배는 내 결혼식에는 참석이 어려울 거 같다며 축의금을 건넸고 그 김에 결혼준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나는 결혼식 준비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저런 얘기를 듣더니 축하인사와 함께 결혼식이 아닌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자신은 미혼인 지인에게 항상 결혼을 추천한다며, 결혼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정을 꾸려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독립하기 전(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님 그늘에서 부모님의 뜻대로 살아야 했지만, 결혼 후에는 나만의 가정을 꾸릴 수 있으니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니 자신은 그런 결혼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과 육아에 치여 하루하루 힘든 날을 보내고 있는 줄 알았던 그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조금 놀랐는데, 대부분의 내 주변의 기혼자들은 결혼 전에 즐겨라, 출산 후 10년간은 자유롭지 못하니 신혼기간에 여행을 많이 다녀라, 가족이 생기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 포기할 것도 많다.. 등 인생의 쓴맛은 결혼 후에 모두 느낄 수 있다는 종류의 조언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 선배처럼 결혼의 장점을 이야기해 준 사람은 나에게 처음이었던 것이다. 선배의 말을 곱씹어 보니, 결혼 준비도 가족과 지인들의 여러 사례가 있긴 하지만 마지막 결정은 나와 남편이 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기보다는 우리 부부가 즐겁게 하나씩 하나씩 결정해 나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부부가 함께 고민해서 결정해 나가야 할 첫 번째 과업인 셈이었다.
‘결혼이야기’ 영화 속 두 남녀 주인공도 나처럼, 서로에 대한 사랑이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졌지만, 가정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으로 원하는 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은 어떨지 부부간의 깊은 고민은 없었던 것 같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완전히 달라진 삶을 방식으로 내가 꿈꿔왔던 ‘나’는 그저 희망사항뿐이기에, 내가 성장하는 방법과 방향을 가족과 공유해보지 못한 것이, 이 두 남녀 주인공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던 것은 아닐까.
결혼의 좋은 점을 이야기를 해준 그 선배는, 이후 그간 사용하지 않았던 육아휴직 4년을 활용하여 영국 생활을 위해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배의 남편이 연애시절 유학생활을 영국에서 했었는데, 그 부부는 그때 좋았던 추억을 아이들과 공유해보고 싶다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4년 뒤 영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오면 빈털터리가 될 수 있기에 짧은 시간 동안 계획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며 쉬운 결정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후에는 4년간에 커리어 공백이 있었음에도 회사에서 한 팀의 장으로 승진하여 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혼이라는 관계 속에서 가족과의 시간, 관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성장하는 방법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혼 후에도 아들을 번갈아 가며 함께 양육을 하고 있는 니콜과 찰리의 생활을 보여준다. 니콜은 그동안 자신의 일을 인정받아 상을 받았다며 기뻐하였고 찰리는 그렇게 고집했던 뉴욕에서가 아닌, 니콜이 살고 싶었고, 살고 있는 LA에서 겸임교수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나지막이 말한다. 이 말을 하는 순간이자 듣는 순간 이혼한 부부에 마음이 만감이 교차하였을 것이다. 이혼이라는 선택지 없이도 충분히 논의하고 고민했었더라면 그 둘 모두를 만족시킬 삶을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관계 속에서도 성장하는 방법을 알았다면 니콜은 이혼을 선택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