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믿을 구석(the last resort)에 대하여
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하지만 동시에 가장 확실한 사실은 바로 매사 고생스럽게 품을 들여야 비로소 좋은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마흔에 접어들면서 깨달은 이 명료한 ‘팩트’는 이제 삶을 대하는 나만의 확고한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번거로운 것을 끈기 있게 붙들고 늘어졌을 때, 혹은 퇴근 후에도 신랑의 만류를 뒤로한 채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노트북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었던 그때의 결말이 결국은 순탄하게 마무리된 적이 많았다.
한 번은 여러 가지 업무가 한꺼번에 쏟아져 체력적으로 벅차게 느껴질 정도로 야근을 이어가던 시기가 있었다. 며칠 밤낮으로 매달려 완성한 결과물을 본부장님께 보고 드리자, 기다렸다는 듯 날카로운 지적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본부장님의 목소리가 워낙 크셨던 탓에 그 꾸중 소리는 본부장실 밖 사무실에도 고스란히 울려 퍼졌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팀장님이 내 자리로 와 "별일 없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을 정도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본부장님께서 수정사항을 꼼꼼히 짚어주셔서 이제 막 일이 제대로 시작된 것 같아요" 사실 지적을 받는 일이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나는 이 시련의(?) 상황이야말로 일이 잘 될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팀장님은 사석에서 그날 나의 반응에 정말 깜짝 놀랐다고 털어놓았다. "그렇게 혼이 났는데,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고?" 팀장님은 그때 내가 조금 대단해 보였다고 말씀해 주셨다. 이렇게 수많은 지적을 받고, 수없이 수정하며 흘러가야만 비로소 '좋은 결과'에 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그렇게 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나의 ‘고생주의’는 나의 일에 잘 맞아 들었고 이제는 쉽게 흘러가지 않는 과정을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느낄 정도가 되었다.
최근에는 배드민턴을 배우기 시작했다. 현재 나는 걸음마 수준의 실력과 6개월 미만의 구력을 가진 왕초보 회원이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신입 회원이자 2살 아래의 동생은 실력도 나와 비슷하다.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배드민턴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늘지 않은 실력을 자주 한탄하며, 다른 회원들의 경기를 보고 언제쯤 저런 실력을 가질 수 있을지 코치님과 주변 회원들에게 자주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나는 실력을 단숨에 올리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코치님에게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체력의 한계를 느낄 정도로 꾸준히 연습해야 실력이 늘겠지. 고생 없이는 좋은 것이 오지 않는다는 믿음이 때로는 서글프게 느껴져도, 어쩌겠는가. 고생 끝에 ‘낙’이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꽤 희망적이기에, 오늘도 땀을 흘리며 연습에 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