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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철근육 May 04. 2021

영어를 '정말로' 잘하고 싶다. (마무리)

긴 장정의 마무리는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다.

영어를 왜 잘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잘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는 이전 글들을 참고 바란다. 이제는 그 대장정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우선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았고, 무엇보다 어떤 생각이 분명하게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그 결과를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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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 영어를 '정말로' 잘하고 싶다.





1. 당신이 생각하는 '중급'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헬스를 (웨이트 트레이닝) 예로 들어보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중급은 무엇인가? 1년을 배우면 중급일까? 3대 운동 (벤치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쾃) 합쳐 300kg를 들면 중급일까? 체지방이 10% 미만이면 중급일까? 아니면 관련 자격증을 따면 중급일까?


내가 생각하는 중급은 '스스로 운동을 할 수 있는 단계'다. 이게 가능하려면 어떤 운동을 할 때 어느 근육에 집중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내 몸을 알고 그에 맞춰 향후 계획을 스스로 수립할 수 있는 단계가 중급이다.


3대 운동 500kg을 든다고 한들 그 계획표를 짜주는 누군가 있어야 한다거나 본인의 몸 어디에 운동이 되는지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초보다. 초보에게서 보조자를 떼고 스스로 나아가 보라고 하면 결과는 부상일뿐이다. 그래서 초보때는 스승이나 멘토가 필요하다. 중급은 그런 보조자가 없어도 되는 단계다.


나는 영어에도 이를 적용하고 싶었다.



2. 그러나 언어에 등급을 나눌 수 없다.


이 시리즈의 첫 편에서 언급했듯, 나는 처음엔 미국 '변호사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수준'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2년 여가 지난 지금, 어쩌면 그 비슷한 것을 해 냈다. 내가 지금 일하는 곳에서 금융과 리스크에 대한 업무를 하고 있다. 나는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들과 얘기를 나눌 수 있다. 간혹 내가 100% 이해를 못하는 단어나 이론이 나와도 회의가 끝난 후 혼자서 정보를 찾는 데 문제가 없다. 물론 그다음 대화에서 관련 내용이 나왔을 때 거의 100% 캐치를 한다. 


그렇다고 나는 '중급' 내지는 '고급' 영어를 구사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언어의 수준을 나누는 등급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학창 시절엔 단어의 난이도, 구문의 복잡성 등으로 등급을 나누긴 한다. 그러나 일상생활은 다르다. 


일례를 들어보자. 나는 금융과 리스크 쪽에서는 어려운 얘기도 잘 말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이번에 시가 평가 결과가 하락한 것을 보다가 지난번 거래 내역 중 어떤 상품의 시장 가격이 현저히 내려간 것을 발견했는데 다행히 그것은 헷지가 되어 있어서 리스크 상으로 변동성이 크진 않다.'라고 크게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마트에서 피자를 한 조각 사면서 '도우는 바삭하게 굽되 지난번처럼 검댕이 너무 묻어나지 않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건 어렵다. 바삭하게를 말할 때 crisp인지 crispy인지, 굽는 건 burn인지 toast인지, 검댕은 또  burnt area인지 blackish area인지 모른다. 그래서 직원이 '피자 데워 드릴까요?'라고 물으면 'Yes please!'라고 짧게 대답할 뿐이다. 


이처럼 언어는 영역에 따라 사용하는 어휘의 난이도가 개인별로 다르다. 미국 빵집에서 일을 해 본 사람은 당연히 내가 든 예시의 후자가 더 쉬울 거고, 제조업에서만 일해 본 사람은 내가 든 예시 둘 다 어려울 것이다. 대신 나는 제조업의 이야기를 모를 것이다. 당장 '컨베이어 벨트'말고 떠오르는 관련 단어가 없지 않은가?



3. 그래도 언어에서 중급의 기준을 정한다면.


그렇다면 언어에서 중급은 뭘까? 앞선 두 챕터에서 답을 찾아내 보자. 뭔가를 스스로 할 수 있어야 중급이다. 언어에서 뭔가를 스스로 할 수 있으려면 내가 못 알아들은 말이 뭔가의 이름인지(고유 명사인지) 보통 명사인지 정도는 알 수 있어야 한다. 즉 지나가듯이 어떤 단어가 들렸는데, 그게 보통 명사인지 (그래서 사전을 찾으면 나오는지), 아니면 고유 명사 (어떤 것의 이름. 사람일 수도 있고 시스템일 수도 있고 회사일 수도 있고, 이론일 수도 있다.)인지 감이 오는 영역이면 당신은 그 분야에서 중급이다. 


'그냥 구글에서 검색하면 되지 않아?'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말처럼 쉽지 않다. 아주 극단적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와 얘기를 하는데 'Apple'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만약 IT 업계에서 일하는 사람과의 대화였다면 당연히 IT회사의 이름일 것이다. 만약 농업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과일을 지칭할 것이다. 문맥 (Context)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냐고? 그렇다. 문맥을 파악하면 바로 당신이 중급이다. 적어도 그 영역에서 말이다. 



4. 영어를 '정말로' 잘한다는 건, 중급을 넘어서 고급으로?


나는 이 부분에서 고민이 많았다. 중급을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단계'라고 정의한다면 어느 정도로 힘들게 공부를 해야 '고급'이 될까? 그런데 이내 벽에 부딪힌 것은 또 다른 질문에서였다. 


그런데 대체 고급은 또 뭔가?


한글과 한국어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자. 당신이 생각하는 고급은 무엇인가? 아나운서처럼 발음이 정확하고 맞춤법이 올바른 사람인가? 아니면 TV 속 명 MC처럼 상대를 배려하고, 분위기를 이끄는 사람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유명 작가들처럼 수려한 글(말)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인가?


사실 정답은 없다. 저 셋 중 하나의 범주에라도 들면 우리는 고급이라 칭한다. 그러나 이들이 갖는 공통점은 있다. 모두 '표현'에 있다는 거다. 즉 중급의 어려움이 '어휘'에 있다면 고급으로의 나아감은 표현에 있다. 정확하게 하거나 (아나운서), 상대를 배려하거나 (MC), 아니면 멋지게 (작가)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배우는 몇 가지 패턴들은 되레 고급에서 필요하다. 


<예의 바른 표현>

예를 들면 초보 때 'I want to eat this.'라고 배운 표현은

'Can I eat this please?'라는 우회적 표현을 거쳐

극한의 경우, 'If you don't mind, can I eat some of this?'라거나 'It would be much appreciated if I can have some of this.'라는 식의 표현으로 넘어가는 식이다.


<무생물의 주어화>

또는 'I had a good sleep. That's why I feel good today.'라는 표현을

'Having a good sleep makes me feel good today.'라는 식으로 묶는 것도 간략한 예다.


* 물론 지나친 예의 바름, 무생물의 주어화가 더 낫다는 뜻은 아니다. 실제로 영작문 책들을 봐도 생물이 주어인, 짧은 문장을 더 권한다. 하지만 더 복잡하고 예의 바른 표현을 배워둔다는 사실 자체가 도움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즉 [초급]에서 패턴을 통해 기초 대화를 익히고

[중급]에서 어휘나 해당 영역에 대한 지식을 쌓고

[고급]에서 다시 패턴이나 표현법을 배우는 것이다. 



5. 방법론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굳이 어떤 표현을 외울 필요가 없다. 대신 내가 부족한 부분을 잘 알기에 어떻게 공부할지도 혼자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나의 경우, 먼저 통번역 학원 인터넷 강의를 통해 내가 잘 모르는 분야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통상 통번역 학원은 수강생들이 다양한 주제를 접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자료를 활용한다. 예를 들어,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의료에 대한 영역의 통역이나 번역은 쉽게 따라갈 수 있었던 반면 (아마도 헬스 관련 자료를 많이 접해서 그런 듯하다.) 역사나 외교에 대한 부분은 부족했다. 그러면 역사나 외교에 대한 인터넷 서칭으로 기본 어휘를 쌓은 뒤, 관련 원서를 사서 읽었다. 


읽는 방법은 똑같았다. 소리 내서 읽고, 한국어로 번역해 보고, 다시 원서를 읽었다. 묵음으로도 가능하지만 최소 두 챕터 정도는 반드시 소리 내서 읽었다. 해당 영역 어휘들의 발음이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유사한 주제의 대화를 했을 때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발음만으로 사전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영역은 끝도 없이 나온다. 내가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가질 때마다 나는 이 진부한 과정을 통해 어휘를 익히고 지식을 쌓고 표현에 접목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 고로 내 영어 공부의 진행은 마침표가 없다. 그저 영역마다 쉼표가 있을 뿐이다. 





영어 학습 콘텐츠의 대부분이 중급 달성을 목표로 하는 이유도 여기 있었다. 중급, 즉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은 영어 공부를 위해 더 이상 유튜브를 보지 않는다. 직접 그 세계로 뛰어든다. 모르는 단어를 찾고, 그 영역을 공부한다. 궁극의 언어 학습은 독서라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중급을 넘어서려면 영역을 넓혀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해당 영역 원서를 읽는 게 최고다.


그러므로 일단 중급을 이뤄내자. 그러면 그때부터는 자동이다. 뭐랄까.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게 되는데 마음은 조금 더 든든한 느낌이다. 여행자의 기분 좋은 긴장감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자부하며 나를 포함한 모두의 건투를 빈다! Keep up the good work! 



매거진의 이전글 투자의 관점에서 바라본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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