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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Dec 04. 2020

바닐라 라떼

나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지만, 집에서까지 일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니까 카페에서는 커피를 내리고 판매하지만, 집에서는 결코 커피를 판매하지 않는다. 집에는 에스프레소 머신도 없고, 카페 도구도 없다. 그저 내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 메이커 한 대 정도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커피를 사겠다고 집에 찾아와도, 마땅히 계산할 수 있는 카드기도 없고, 거스름돈도 없고, 커피를 내릴 머신도 없다. 그리고 여기는 카페가 아니라 집이다.


“하지만 커피 한잔 정도는 팔 수 있잖아요?”

현관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말했다.

그 사람은 다짜고짜 초인종을 누르더니 커피를 사러 왔다고 말했다. 바닐라 라떼로 주문하겠다며, 문 앞에 서서 계속 초인종을 눌렀다. 어째서 여기를 카페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여기는 카페가 아니에요.” 내가 말했다.

“다 소문이 났어요. 여기에 바리스타가 살고 있다고 들었어요.”

“바리스타는 맞지만, 여기서 커피를 팔지는 않아요.”

“하지만 커피 한잔 정도는 팔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저는 지금 바닐라 라떼가 무척 먹고 싶어요. 차가운 걸로.”

“집에는 우유도 없고, 바닐라도 없어요.”

“어째서 없죠. 바닐라 라떼가 없는 카페도 있나요.”

속 터지는 소리를 듣고, 나는 문을 쾅- 닫아 버렸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초인종을 누르기 시작했다.

‘그래,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고, 나는 커피 메이커로 커피를 내렸다.

주-룩 주-룩 하고 커피가 내려졌고, 띵-동 띵-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커피가 다 내려지고, 나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텀블러를 받아, 방금 내린 커피를 담아줬다.

“바닐라 라떼는 없어요. 이건 그냥 블랙커피인데, 이거라도 드세요. 그리고 여기는 카페가 아니니까, 더 이상 찾아오지 마세요.”

나는 눈을 부릅뜨고,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고마워요. 커피 향이 너무 좋네요. 너무 고마워요.”

발그레 해진 볼에, 기분이 좋아진 듯 슬며시 미소를 띠며 그 사람이 이어 말했다.

“다음에는 바닐라 라떼도 부탁해요. 그런데 혹시 스탬프도 찍어주시나요?”


나는 문을 쾅 닫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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