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잡문인 Dec 15. 2020

커피 냄새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택배 왔어요.”

나는 일어나기 귀찮아, 아무도 없는 척 소리를 삼켰다. 그리고 현관문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내 툭- 하고, 택배 놓는 소리가 났다. 나는 택배 아저씨가 갔겠지, 하고 생각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곧장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박하늘 씨, 택배 왔어요.”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소리가 나지 않게 현관문으로 가서, 구멍으로 슬그머니 밖을 봤다. 커다란 코끼리가 택배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왼손에 우편 가방을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냥 두고 가면 될 텐데 왜 자꾸 문을 두드리는 거지, 라고 나는 생각하며 소파에 다시 가서 앉았다. 그러자 또 소리가 들렸다.

‘쾅. 쾅.’

“박하늘 씨. 집에 있는 거 다 압니다. 택배예요.”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 다음, 변기 물을 내리고 바지를 추스르는 척하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아, 네. 죄송해요. 화장실에 있었거든요.”

“네. 택배이고요. 받으시는 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박하늘이요.”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수상쩍은 표정으로 코끼리 택배 기사에게 물었다. “제가 집에 있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그러자 코끼리 택배 기사는 슬며시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괜히 코끼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코끼리 택배 기사는 코를 들어 오른쪽 어깨너머로 둘러 넘기며 말했다.

“냄새가 났어요. 냄새가. 제 코가 워낙 길다 보니, 냄새를 잘 맡거든요. 더군다나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 냄새는 귀신 같이 찾아냅니다.”

그는 코로 모자를 집어 들고, 손으로 이마의 땀을 훔친 다음, 다시 모자를 머리에 얹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말했다.

“안에서 커피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게, 아무래도 커피를 내린 지 얼마 안 된 것 같더군요. 그래서 사람이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커피를 내리고 집을 비우지는 않으니까요. 안 그래요? 그동안 택배를 하면서 커피를 내려놓고 마시지 않는 사람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문을 계속 두드린 겁니다. 집에 계시다면 택배를 직접 드려야 하니까요. 받으실 물건을 온전하게 직접 전달한다, 그게 제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는 의무이자 권리니까요.”

코끼리 택배 기사는 어깨를 들었다 놓으며 말했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택배를 주워서 내게 건넸다.

“의무이자 권리.” 나는 코끼리 택배 기사의 말을 읊조렸다.

나는 인사하고 택배를 들고 문을 닫았다. 코끼리 택배 기사는 털털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소파에 앉아 택배를 뜯으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때 다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 쿵.’

“박하늘 씨. 박하늘 씨.”

코끼리 택배 기사의 목소리였다.

나는 다시 문을 열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니, 궁금해서 참을 수가 있어야 말이죠. 지금 내린 커피가 케냐인가요, 에티오피아인가요? 그 어디쯤인 것 같은데.”

나는 파나마 게이샤에요, 라고 대답했다. 코끼리 택배 아저씨는 향이 너무 좋다고, 고맙다고 말하며 모자를 슬쩍 들었다가 다시 썼다.

코끼리 택배 아저씨는 다시 털털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