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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Sep 18. 2019

그럼 그렇게 주세요

  두 명의 여자가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어왔다. 그리고 카페 입구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스트라이프 블루 셔츠를 입고 펑퍼짐한 베이지색 치노 팬츠를 입은 여자가 매장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한다. 신발은 깔끔한 흰색 스니커즈. 한쪽 귀에는 둥글고 큰 은색 귀걸이를 달고 은색 시계와 팔찌를 심플하게 착용했다. 짙은 색의 작은 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고, 시선은 먼 산으로, 손은 살짝 들어 귀 밑을 만졌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손짓과 표정이지만 여러 번 해본 포즈인 듯 능숙했다.

  다른 한 명은 포즈를 취하는 여자를 찍고 있었다. 청바지에 흰 티셔츠. 깔끔한 옷차림이다. 검은색 가방을 둘러메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든 채 사진을 수차례 찍었다. 사진을 찍는 여자의 포즈는 한쪽 다리를 내밀고 비스듬히 기울인 자세로 앉았다 일어섰다 했다. 마치 기괴한 서커스 단원 같았다.

  매장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는 여자는 일정 박자에 맞춰 포즈를 바꿨다. 포즈의 변환이 자연스럽다. 이에 맞춰 카메라를 든 여자는 리듬을 타듯이 셔터를 계속 눌렀다. 그렇게 10분 정도 사진을 찍었다.


  한참 뒤에 포즈를 취하던 모델의 여자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자세도 촬영 포즈 같다.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부자연스러운 포즈가 몸에 배여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뒤따라오는 여자는 핸드폰을 들고 연신 사진을 찍으며 들어왔다. 눈은 핸드폰 화면을, 핸드폰 화면은 카페를 보고 있었다.

  모델의 여자는 계산대 앞으로 곧장 왔다. 메뉴판 옆에 가방을 올려 두고, 오른쪽 팔꿈치를 바에 기대고 몸을 비스듬히 기울였다. 여자의 눈은 메뉴판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었다. 가격의 끝자리까지 다 눈에 새기는 것처럼 천천히 살펴봤다. 아직 촬영 중인 것처럼 메뉴를 보며 부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마침 사진을 찍던 여자가 메뉴를 보러 왔다. 그러자 모델의 여자가 말했다.

  “뭐 먹지, 커피는 아까 전에 마셨는데. 다른 거 먹을까?”

  “그럼 에이드 먹어.”

  “그래도 커피가 먹고 싶은데”

  모델의 여자는 왼손으로 오른손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메뉴판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보다가 이내 비스듬히 기대고 있던 상체를 세우고 귀찮다는 듯이 표정을 찡그렸다.

  “그냥 아아 먹을까?”

  “그러든지. 여기는 에이드가 유명하데. 난 에이드 먹을까.”

  사진을 찍던 여자는 내려 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더니 핸드폰으로 SNS를 뒤적거렸다. SNS에 올라온 카페의 메뉴 사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메뉴, 사진에 잘 나올 법한 메뉴를 찾는다. 사진에 나온 음료를 보고 색깔과 모양새를 보며 그에 맞는 메뉴를 찾는다.

  “몰라, 그냥 네가 골라.”

  모델의 여자는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리고 휙 돌아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벽의 색감을 살피고, 옆에 놓인 나무의자 모양새를 눈으로 더듬었다.

  “으음, 아무래도 이건 유자 에이드인 것 같은데. 맞죠?”

  핸드폰을 보던 여자는 나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나는 맞다고 대답했다.

  여자는 핸드폰은 선반에 내려 두고 이내 가방에서 카드를 꺼냈다. 그리고 오른쪽에 있는 디저트를 흘깃 쳐다봤다. 여자의 오른쪽 어깨는 오른쪽으로 슬그머니 내려갔고, 오른팔을 바 선반에 걸친 채 몸을 기댔다. 몸이 비스듬히 기울었다. 그리고 여자는 말했다.

  “그럼 그렇게 주세요.”

  여자는 왼손에 든 카드를 슬쩍 내밀었다. 시선은 여전히 오른쪽 아래에 있는 디저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델의 여자는 밖으로 나가 햇살 아래 서서 부자연스러운 포즈로 카페를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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