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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잡문인 Aug 24. 2019

조금 슬픈   아메리카노

  카페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음료는 당연 아메리카노다. 그런데 가장 많이 판매된다고 해서, 인기가 가장 많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손님들은 주문할 때, 아메리카노가 가장 맛있거나 인기가 많다고 고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고 추측한다).

  손님들이 아메리카노를 고르는 경우를 말하자면, “음, 오늘은 뭘 먹어볼까. 뭐가 실패를 안 할까.” 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에이, 그냥 아메리카노나 먹자.”라는 식이다. 먹고 싶은 음료가 딱히 없으니 그냥 먹자는 식이다. 차선의 선택지다.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마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메리카노는 인기가 많아서 많이 판매되는 게 아니다. 그저 불리는 철수와 영희 같은 것이다. 어쩌면 아메리카노 입장에서는 서운할지도.


  아메리카노라는 메뉴가 어떻게 생겼는가 하면.

  커피(카페) 문화가 가장 먼저 부흥한 곳은 유럽이다. 당시는 산업혁명이 일어난 시대. 모든 게 빨리빨리이던 시절이었다. 얼른 출근해야 했기에, 커피도 빨리 마셔야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30초 내로 커피를 추출할 수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마셨다.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길에 카페에 들려, 에스프레소를 주문하고, 설탕이나 우유를 넣어서 입안에 휙- 털어 넣었다. 진한 커피로 잠을 깨우고, 서둘러 출근했다. 그런 일상이 발전되어 지금의 유럽 에스프레소 문화가 만들어졌다. 

  이후 미국에서도 커피 문화가 생겼다. 카페가 생겼고, 몇몇의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이때 카우보이들도 커피를 마셨는데, 카우보이들은 말을 타고 유유히 카페에 와서 커피를 주문했다. 소들을 돌보며 시간을 때우는 게 일이었기에 서두를 게 없었다. 출근 시간에 쫓기지도 않았고, 잠을 쫓을 이유도 없었다.

  카우보이는 항상 허리춤에 큰 물통을 달고 다녔는데, 진한 에스프레소가 나오면 휙-하고 허리춤에 있는 큰 물통에 털어 넣었다. 그러고는 시가를 물고, 시니컬하게 사라졌다. 에스프레소를 물에 타 마시는 커피가 그렇게 생겨났다.

  이후 카우보이를 흉내 내며, 많은 미국인들이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시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카페에 와서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 달라고 요구하니, 일일이 상대하기 귀찮은 카페의 주인들은 이를 메뉴로 내걸기 시작했다. 이때 이를 아메리칸 스타일이라 하여, 이름을 아메리카노로 지었다.라는 건 어디까지나 순전히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이야기도 소문처럼 있긴 하지만요.

  실제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군인들이 유럽에서 에스프레소를 물에 타서 마셨다고 하여, 유럽인이 미국인을 놀리는 의미로 아메리카노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보다는 시니컬한 카우보이가 “음, 이런 걸 왜 먹나? 진하잖아. 쓸모없군. 난 내 스타일로 먹겠어.”라고 말하며 콧수염을 슬며시 만지고, 시가를 물고, 물통에 에스프레소를 휙- 들이붓는 모습에서부터 만들어졌다고 하는 게 조금 더 그럴싸해 보이지 않는지.


  매장에서 제일 많이 나가는 메뉴가 아메리카노다. 여름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겨울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가끔은 다른 메뉴를 압도할 수준으로 아메리카노가 많이 나간다. 어째서 수많은 사람들이 아메리카노를 마실까. 그렇다고 아메리카노가 너무 좋다고 하는 사람은 드문데 말이지. 어쩌면 좋아하고 인기 있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커피는 아메리카노.’라는 식으로 대중적인 메뉴로 정해져 버린 것이 아닐까. 일종에 짜장면처럼. 중국집에 가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선택지는 결국 짜장면과 짬뽕 혹은 짜장면과 잡채밥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마음은 언제나 비슷하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서 카페에 들어가 메뉴판을 살펴본다. 플랫화이트, 핸드 드립, 에이드… 오늘은 뭘 먹을까 고민한다. 그러다 잠시 하늘 위에 떠다니다 땅바닥에 사뿐히 안착하는 종이비행기처럼, 그냥 아메리카노 먹을래. 하는 가벼운 마음이 든다. 아메리카노는 그런 메뉴다. 무겁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고, 복잡하지 않다.

  피곤하고 성가신 하루를 보내면, 가끔은 아메리카노 같은 기분이 필요하다. 아메리카노 같은 기분이라고 한다면, 텔로니어스 멍크의 I’m Confessin’ 같은 느낌이다. 그러니까 화창한 봄날에 핀 개나리 같은 기분이라 할까. 이해하실는지요? 그리고 그런 게 아메리카노의 기능이라고요. 유효한 기능.

  그나저나 다들 아메리카노는 대체 어떤 맛으로 마시는지요? 매번 궁금했습니다. 어쩌면 다들 ‘약은 약이요.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요.’라는 마음가짐으로, 카우보이처럼 시니컬하게 “아메리카노 따위, 다 거기서 거기지.”라면서 마시는 게 아닌지요. 그렇다면 아메리카노 입장에서는 조금 슬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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