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커피는 어른이 되어야 먹을 수 있어.” 이런 말, 들어본 적 있으신지.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가게를 운영하셨는데, 인스턴트커피가 항상 박스채로 있었다. 손님들이 음식을 다 먹어 가면, 엄마는 종이컵 여러 개를 쟁반에 올려 두고 커피를 탔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나를 보고 매번 하시는 말씀이, 너는 먹으면 안 돼. 어린이는 안돼. 였다.
왜 커피는 어른만 먹을 수 있는 걸까? 머리가 나빠져 공부를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어른들은 말했지만. 믿을 수 없었다. 커피를 마셔서 머리가 나빠진다면, 어른도 머리가 나빠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어른들은 그다지 머리가 나빠진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커피를 마셔서 머리가 나빠진다면 어떻게 될까.
커피를 마시면 머리의 세포가 죽고, 두뇌 회전이 늦어져 점점 숫자 셈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계산을 할 때, 천 원을 냈는지 이천 원을 냈는지 잊어버려, 거스름돈도 못 챙기고 가게를 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고 돈을 더 냈는지 안 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손님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날 때 즈음이면 커피를 준다. 손님들이 계산을 하기 전에 머리가 나빠지게 만들어서, 만원을 냈는지 오만 원을 냈는지 잊어버리고, 그만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손님이 가게를 나가게 하기 위해서. 흐음.
어린이를 데리고 카페에 오는 엄마들이 있다. 둘은 메뉴판 앞에 서서 한참을 본다. 그러다 엄마가 아이를 보며 말한다.
“너는 뭐 먹을래?”
그러면 아이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 말한다.
“엄마는 뭐 먹어?”
“엄마는 커피 마실 거야.”
“나도 그거.”
“너는 안돼. 커피는 안돼. 다른 거 안 먹을래? 핫초코나 주스 있잖아.”
아이는 시큰둥한 얼굴로 대답을 안 하고 우물쭈물거린다. 그러면 참다못한 엄마는 핫초코 먹자, 달달하고 맛있어.라고 아이를 달래고 주문한다.
“아메리카노 하나, 핫초코 하나 주세요.”
음, 어른만 마실 수 있는 커피라니. 이거 왠지 불공평하다. 어린이도 커피를 마실 수 없을까.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거나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하면 카페인이 과하지 않아서 조금 마셔도 문제가 되지 않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되면 콜라나 초콜릿이 카페인이 더 많은 셈인데 말이지.라고 주문을 받으면서 속으로 생각한다. 어린이를 키우지 않는 나로서는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대뜸 손님에게 아메리카노를 연하게 드시면… 하고 말해버리면 괜한 간섭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내가 아는 오랜 단골손님 중에 유치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마 손님이 있었다. 그 꼬마 손님에 대해 말한다면, 네 살 즈음에 이미 에스프레소의 맛을 알았고, 과하지 않은 선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겼는데 말이지요(엄청난 영재)… 그렇다고 지금 그 꼬마 손님이 머리가 나빠졌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 굉장히 똑똑하고 착하고 귀여운 꼬마 손님이었다.
병원에 다녀온 친구가 말한다. “나 이제 커피 끊었어.” 왜냐고 물어보니,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더니 커피를 끊으라고 했던 것이다. 몸이 어디가 안 좋으냐고 물으니, 식도염이 조금 있다고. 식도염인데 왜 커피를 마시면 안 되냐고 물으니, 카페인 때문이겠지.라고 친구는 말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친구가 한의원에 다녀와서 말했다. “나 이제 커피 끊었어.” 왜냐고 물어보니, 다이어트를 하는데 커피를 마시면 안 된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왜 다이어트를 하는데 커피를 마시면 안 되냐고 물으니, 카페인 때문이겠지.라고 친구가 말했다.
아무래도 어린이나 식도염이나 다이어트에는 커피가 좋지 않은가 보다. 그 이유는 카페인 때문이겠지만. 하지만 정말 카페인 때문이라면, ‘커피를 끊으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카페인을 줄이세요.’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다짜고짜 커피를 끊으라고 말하면 커피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았다. 커피를 못 마시게 하는 이유는 치킨을 먹을 때 날개를 먹으면 바람피운다는 이유로 못 먹게 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것은 주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그래서 엄마 몰래 인스턴트커피를 여러 번 먹었다. 달콤하니 맛있었다. 그래서 머리가 나빠졌는가 하면, 으흠, 잘 모르겠다. 잘 모르기 때문에 머리가 나빠진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사고를 치거나, 가게에 가서 돈을 내고 거스름돈을 받지 않거나, 그런 일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저는 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요?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잊어버렸습니다. 뭐였을까요?
아무래도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