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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tobadesign Aug 28. 2021

어느 글∙그림 작가의 접시

네 번째 인터뷰

단아하고 고요했다. 처음 접시를 보았을  떠오른 단어들이다. 조각을 맞추면서  형용사들이 계속해서 머리에 둥둥 떠다녔다. 하얀 접시는 테두리 형태 때문인지 작업하는 내내 활짝  꽃을 보는 듯했다. 겨우내 모습을 감추고 있던 꽃봉오리가 봄이 되어  힘을 다해 꽃잎을 활짝 펼쳐 그대로 접시가  것은 아닐까.


한가운데를 축으로 여러 조각으로 깨져 있던 접시를 조각조각 붙여갔다. 먼저 밀가루와 옻을 섞어 만든 무기우루시로 작은 조각끼리 붙인다. 그리고 큰 조각에 덧붙여간다. 일주일 정도 지나 남아 있는 무기우루시를 떼어 내면 검은색 선들이 모습을 보인다. 이제부터 매우고 갈아내고 선을 긋는 작업의 시작이다. 가끔은 무기우루시의 검의 선 느낌이, 타매로 올린 검은 선의 느낌이 마치 붓글씨의 강한 획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대로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특히 하얀 접시를 작업할 때는 더욱더.


깨진 곳과 금이 간 곳을 함께 매우고 갈아내고 선을 그어 가자 처음 생각했던 선들보다 더 많은 선이 접시에 드러났다. 아무리 봐도 접시에 비해 너무 투박한 선이다. 선을 그릴 때마다 생각한다. 조금 더 얇은 선을 그릴 수 있다면, 선들을 따라 문양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러기에 아직 내 내공은 부족하다는 말조차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미약하다. 작업을 할 때마다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 싫지 않은 작아짐이다.


        



        먼저 자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글∙그림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초선영이라고 합니다. 작가명으로 쓰고 있는 '초선영'은 일상의 '선영'을 초월하는 작업을 하자는 마음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짤막하고 간결한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에 10년 넘게 골몰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물건을 구매하면 오랫동안 사용하시는 편이신가요?

네, 그러는 편이에요. 하나의 사물을 구매하기 위해 오랜 기간, 때로는 1년 넘게 고민하고 그렇게 들인 물건은 되도록 오래 씁니다.


        수리를 맡기신 그릇은 언제 어떻게 구매하셨고 얼마나 사용하셨나요?

수리를 맡긴 하얀 접시는 3년 전 이사할 때 세트로 선물 받았어요. 친구가 이사 선물을 해주고 싶다고 해서 고심해서 골랐어요.


        기물은 주로 언제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함께했던 기억나는 추억이 있나요?

접시는 매일 식사할 때 사용했어요. 물건을 많이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데 킨츠기를 맡긴 접시를 포함해 한 세트 총 9점의 그릇만 가지고 있습니다. 고심해서 고른 만큼 질리지 않고 단단하면서도 무게가 적당해 무척 만족하며 사용하고 있어요.

많이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은 정리에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물건의 가짓수를 줄이게 된 것 같아요.


        기물이 어떤 이유로 손상되었나요? 그리고 그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그릇 정리를 하다가 손에서 놓쳐서 바닥에 세게 떨어지고 말았어요. 그동안 사용하면서 낮은 높이에서는 종종 떨어뜨리는 일도 있었는데 단단해 깨지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때는 너무 높은 위치에서 떨어뜨려 쨍그랑하고 깨졌습니다. 마음이 무척 아팠어요. 자책도 하고요.


        사람들 대부분 그릇이 깨지거나 금이 가면 버리는 일이 많잖아요. 그런데 버리지 못하시고 간직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세트로 선물 받아 사용하던 물건인데 다시 새로운 세트를 들이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용할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보관하고 있었어요.


        그릇을 수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저에게 꼭 맞는 방식이라 생각해 기쁨을 넘어서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저는 한 번 들인 물건은 아껴 쓰고, 오래 쓰고, 고쳐 쓰고 가능하다면 중고도 종종 들이는 편이에요. 새 그릇을 사지 않고 고쳐 쓸 수 있다면 제게도 그릇에게도 그리고 환경에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았어요.

또한 깨진 그릇은 세상에 하나뿐인 무늬를 지닌 그릇이 되겠지요. 의미뿐만 아니라 유일무이한 아름다움을 품고 새로 태어날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돌아온 그릇을 매일 볼 때마다 저도 시련을 마주하면 그렇게 새로 태어나야지 하고 마음먹게 될 것 같아요.


        그릇을 기다리는 동안의 마음이 궁금해요.

잠시 머릿속 한편을 비워두고 있었습니다. 기대가 과하면 그릇에게도 부담이 될 테니까요. 이런 인터뷰를 통해, 또 중간중간 보내주시는 사진을 통해 저를 돌아볼 수 있었어요.


        앞으로 그릇과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으세요?

이제껏 그래 왔듯이 매일매일 식사를 같이 하게 되겠지요. 수선되어 새롭게 생긴 무늬를 볼 때마다 '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야.' 하고 그릇과 저 자신에게 되뇌면서요.






작년 가을 즈음에 작업을 시작해 그해의 끝자락에 그릇을 건네드렸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붓을 다루는 손놀림은 거칠었고 재료에 대한 감각도 무뎠다. 지금 와서 보니 금분이 아니라 은분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한다. 단아한 그릇과 더 잘 어울리지 않았을까. 해를 넘기지 않고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조급한 마음이 앞섰던 것도 같다. 킨츠기에서 조급함은 어쩌면 가장 필요가 없는 감정인데 말이다. 지금은 그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분명 조금 더 고민이 필요했다. 하나하나 완성할 때마다 부족함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연습과 공부만이 답이다.


물건의 가짓수를 줄여 그것을 온전히 사용하는 생활. 좋아하는 물건을 찬장 깊숙이 넣어두지 않고 매일 꺼내 사용하는 모습이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생활. 인터뷰를 진행하며 수리를 의뢰하신 분의 일상에 하얀 그릇들이 놓여 있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그릇에는 없는 무늬를 지닌 이 접시도 자연스럽게 놓여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적은 물건과 함께하는 삶을 선택하면 일상의 모습이 단조로워질까 봐 고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물건이 적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풍요로움과 풍성함이 있다고 믿는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이 물건을 어떻게 사용할까 다른 쓰임새를 발견하는 것. 내가 디저트를 놓던 작은 유리 접시를 방에 들여 작은 소품들을 위한 장소를 만들었듯이. 어쩌면 적은 물건과 살아가는 삶은 자신의 물건에게 또 다른 모습을 찾아주는 여정이지 않을까? 이 그릇을 의뢰해주신 분도 신중하게 고른 자신의 물건들과 함께 풍성한 일상의 여정을 걸어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 여정에서 소중한 물건들의 어떤 모습을 발견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기물을 맡기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

글, 그림 작가 초선영

인스타그램 @chosunyoung.art


*모든 인터뷰는 킨츠기 수리를 완료하고 기물을 전달한 뒤 서면으로 진행해 기획에 맞게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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