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인터뷰
크기도 생김새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깨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생긴 작은 상처 하나로 일상의 물건에서 비일상의 물건이 되어 시간이 멈춘 그릇들. 그런 그릇들이 내 책상에 서로 다른 모습으로 놓여 있었다.
이가 나간 그릇의 수리를 맡기신 분은 내가 2년 남짓 출판단지로 출근하던 시절, 나의 점심을 책임지던 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킨츠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초보 킨츠기 작업자에게 선뜻 깨진 그릇을 내어주시는 좋은 의뢰자였다.
킨츠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을 때 이가 나가거나 금이 간 그릇만 있고 깨진 그릇이 없어 참 곤란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했지만 일부러 깨진 그릇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나를 구해주신 분이 매니저 님이었다. 어느 날 점심을 먹으러 가서 혹시나 하고 물었는데 금가고 깨진 그릇 많지 하며 기꺼이 건네주었다. 그러니 내 킨츠기는 매니저 님의 그릇으로 시작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제 나는 매니저 님에게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보다는 킨츠기 작업자로 더 크게 인식되어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이가 나간 다섯 점의 그릇을 의뢰받았다. 작게 이가 나간 부분 외에는 크게 손상된 부분이 없었다. 작은 상처로 시간이 멈춰 있었다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모두 멋진 그릇이었다. 천연옻으로 혼킨츠기 작업을 시작했다. 이가 나간 곳을 메우고 건조하고 갈아내고 바탕칠을 3번 정도 하고 마감 분을 올리는 과정. 마감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고민이 들었다. 다른 기물들은 금분으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았는데 검은색 컵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컵 일부에 은가루가 뿌려진 듯한 부분이 있어 금분을 올리면 분명 이질감이 느껴질 듯해서였다. 그리고 이 검은색 컵이 은분을 사용한 첫 기물이 되었다.
먼저 자신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파주출판단지에 있는 '동네부엌 천천히'라는 협동조합 밥집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걸 좋아해요. 그림을 그리고 글씨 쓰는 것도 좋아하죠. 요즘은 휘어졌거나 짝을 잃어 못 쓰게 된 나무젓가락의 끝을 뾰족하게 깎아 펜으로 만들어 글씨 쓰는 재미에 빠져 있어요.
하나의 물건을 구매하면 오랫동안 사용하시는 편이신가요?
네, 그러는 편이에요. 오래 함께 한 물건은 친구 같아서 쉽게 버릴 수가 없어요.
수리를 맡기신 그릇은 언제 어떻게 구매하셨고 얼마나 사용하셨나요?
지금까지 꽤 수리를 많이 의뢰했는데 이번에 맡긴 그릇들은 친구가 만들어주었거나 일본에 사는 친구 집에 갔다가 친구가 준 그릇, 남편과 제가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에서 만든 그릇이었어요. 대부분 10년 정도 사용한 것 같아요.
기물은 주로 언제 어떻게 사용하셨나요? 함께했던 기억나는 추억이 있나요?
이번에 이가 나간 그릇을 다섯 점 정도 의뢰했는데 그 가운데 제가 가장 아끼는 그릇은 길고 네모난 접시예요. 몇 년 전, 남편이 농부로 있는 저희 농장에서 함께 농사짓는 몇몇 가족과 강화도로 1박 2일 여행을 갔어요. 그때 여행 중에 김포에 있는 공방에서 그릇 만들기 체험을 하면서 제가 직접 디자인해 만든 그릇이었지요. 뭘 올려놓아도 근사해서 자주 사용했어요. 밥 먹을 때 반찬 두세 가지를 올려놓고 먹다가 바로 씻어서 과일 같은 디저트를 올려 먹을 만큼 제가 좋아하는 그릇이었어요. 일상을 늘 함께했지요.
기물이 어떤 이유로 손상되었나요? 그리고 그때 마음은 어떠셨나요?
좋아하는 그릇이니까 혹시라도 손상될까 봐 사용할 때마다 조심조심 설거지해서 잘 보관해두는 편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이 마구마구 설거지하다가 그릇의 이가 나가서 제가 엄청 뭐라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 많이 속상하기도 했고요.
사람들 대부분 그릇이 깨지거나 금이 가면 버리는 일이 많잖아요. 그런데 버리지 못하시고 간직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그릇마다 마음과 함께한 시간이 담겨 있어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그릇은 저한테 그 그릇을 선물해준 사람의 마음이 생각나서 버릴 수 없더라고요. 제가 직접 고른 그릇은 고를 때의 제 마음이 담겨 있고 그 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담았던 행복했던 시간의 기억들이 있어서 쉬이 버리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릇을 수선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어떤 마음이 드셨나요?
아주 기뻤어요. 아끼던 그릇이 깨지거나 이가 나갔을 때 정말 속상해서 울 뻔한 적도 있었거든요.
그릇을 기다리는 동안의 마음이 궁금해요.
엄청 궁금하고 설레고 빨리 만나고 싶었어요.
앞으로 그릇과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싶으세요?
좋아하는 그릇과는 한동안 멈춰 있던 맛있는 이야기를 많이 만들어가야겠지요.
그릇을 수선할 때마다 어떤 색의 마감이 어울릴지 항상 고민한다. 아직 나는 금분, 은분으로 작업하는 일이 많고 타메나 벤가라로 마감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꼭 어울리는 그릇을 만나면 시도해보고 싶다. 나는 작가가 만든 그릇이든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그릇이든 어느 것도 같은 그릇은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판매되어 사용자의 손에 들어갈 때는 같은 모양이었다 할지라도 그 사람만의 시간이 쌓이면 분명 처음과는 다른 그릇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릇마다 미묘한 차이를 만들어내므로 더 잘 어울리는 선의 색과 모양과 두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찾아가는 과정도 킨츠기의 또 다른 매력이지 않을까.
인터뷰를 정리하며 '그릇에는 마음과 함께한 시간이 담겨 있다'는 말이 글을 쓰는 내내 가슴에 닿았다. 나의 마음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의 시간이 담긴 그릇에 음식을 담아 함께 나누는 광경이 따스한 불빛 아래 펼쳐지는 듯했다. 이것이야말로 그릇이 사람들 사이에 놓이고 존재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그런 존재의 이유가 작은 상처로 멈추었을 때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숨 쉴 수 있도록 존재 이유를 찾아주는 것이 킨츠기구나 싶다.
작은 상처로 멈춘 그릇들의 이야기가 지금은 어떤 마음의 형태를 하고 음식을 담아 일상을 채워가고 있을지 그 모습을 보러, 그리고 매니저 님의 따뜻한 밥을 먹으러 곧 가야 할 것 같다.
기물을 맡기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
동네부엌 천천히 협동조합 밥집 매니저 '소소'
인스타그램 @patislow
*모든 인터뷰는 킨츠기 수리를 완료하고 기물을 전달한 뒤 서면으로 진행해 기획에 맞게 정리했습니다.
*기물 이미지는 인터뷰에 주로 등장한 그릇의 이미지만 공개했습니다. 함께 작업한 다른 킨츠기 이미지는
인스타그램 @kotobadesign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