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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선 Oct 26. 2024

빈둥거리는 삶을 위하여

[ 회사 밖 돈 벌기의 시행착오 2 ]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앱을 지웠다

일을 미루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었다. 그렇다고 마감을 넘긴 적은 거의 없다. 다만 최대한 일을 미루다가, 물이 턱 끝까지 아니 코 밑까지 차올랐을 때 일을 시작했다. 미친듯한 집중력으로 일을 완수했다. 결과는 중상 정도. 대단한 결과물을 내진 못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를 받곤 했다. 퇴사 후에도 습관처럼 일을 미루기 시작했다. 더없이 일을 미루기에 좋은 환경이었다. 중간에 진행 상황을 확인하는 사람도 없었고, 보고해야 할 의무도 없었다. 그냥 주어진 시간까지 어떻게든 하기만 하면 됐다. 늘 그렇듯 시작하기 전까지 고통스러워하다가, 가까스로 시작해 겨우 마감하는 날을 반복했다.


기자 시절 마감 직전의 시간을 제외하면 무한한 딴짓의 세계가 있었다. 그날 쓸 기사를 발제하고 커피 한 잔 혹은 잠시 졸고, 미팅 겸 점심 식사는 2시간씩 하고, 급박한 마감 후에는 숨을 돌리는 날들이 반복됐다. 여느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계약서에 8시간 근무가 명시되어 있다 해도, 8시간 내내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사이 웹 서핑이나 온라인 쇼핑을 하고, 커피 마시고 간식을 먹고, 똥도 싼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 때리거나, 동료들과 시답지 않은 잡담을 하거나 새어 나오는 웃음을 자체 음소거로 처리하며 친구들과 마냥 카톡을 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회사는 빈둥거리는 시간까지 돈을 준다. 회사는 직원이 무엇을 하든 약속한 시간만큼 돈을 지불한다. 회사 입장에선 억울해도 법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직장인은 빈둥거릴수록 실질 업무 시간당 급여가 증가하는 셈이기 때문에 비용 측면에서는 오히려 이득이다. 반면 프리랜서에게 빈둥거리는 시간은 말 그대로 빈둥거리는 시간일 뿐이다. 일에 집중하고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 그런 애매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실상 시간당 페이가 감소하는 격이다. 비용뿐만 아니라, 업무의 시작과 끝의 간격이 길어질수록 업무 퀄리티와 삶의 만족도가 함께 극적으로 감소하는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프리랜서로 다시 태어난 나에게 자꾸 딴짓하고 싶은 몸과 마음을 정상적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일에 쓰는 시간의 양을 과대평가한다. 책 ‘가짜 노동’에 따르면, 여러 나라의 연구에서 노동자들이 자신이 실제보다 더 오래 일한다고 답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정확히 자신이 얼마나 일하는지 알지 못할뿐더러 8시간의 근무 시간이 어떻게 채워지는 모른다. 과거의 나는 일하는 시간을 정확히 알고 싶은 욕망 자체가 없었다. 진짜 노동을 하는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자신도 몰랐던 가짜 노동의 시간을 없애고, 일을 더 많이 한다고 하자. 그렇다고 그에 상승하는 만큼 월급이 늘어나기는커녕 일반적인 회사의 시스템을 생각하면 오히려 일이 더 많아지는 악순환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기자 업무 특성상 형식에 치중한 페이퍼 워크는 거의 없었지만, 불필요한 회의 같은 보여주기식 가짜 노동은 분명 존재했지만 나는 그걸 무시했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삶에 가짜 노동은 없고, 있어서는 안 된다. 리모트 워크를 이어갈수록 프리랜서의 삶에서 일은 압축적으로 진행하고, 일찍 끝낼수록 이익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집중력 있게 오전에 일을 마감하면, 점심 이후의 하루는 어느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또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하루종일 놀다가, 저녁부터 일을 시작하고 끝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업무 중에 빈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업무 외 시간에 빈둥거리는 것이다. 무엇이 다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순수하게 텅 빈 시간 속에서 빈둥거리기 위해 퇴사한 나에게는 그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스탑워치를 활용해 업무 시간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업무량에 비해 업무시간이 너무 길었고, 업무에 몰입하지 못하는 집중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알면 무엇하나, 생각과 달리 몸은 따라주질 않았다. 딴짓하지 말자는 마음을 먹고 집중력 있게 끝내자며 일을 시작해도, 마음을 먹은 그 마음을 까먹고, 일하다 말고 웹서핑을 하거나 유튜브 쇼츠를 보고 있었다. 작은 화면에 마음을 뺏겨 시간이 홀랑 지나갔다는 얘기는 구체적으로 쓰지 않아도 많은 이가 알 거다. 어느 순간 이미 집중력 있게 일을 하기에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했고, 눈치를 봐야 할 그 누군가도 존재하지 않으니 고삐가 풀려 버렸다. 그러다가 책 ‘도둑맞은 집중력’을 접하면서 테크 기업이 야기한 스크린 중독과 너무 잦은 멀티태스킹이 내 집중력을 붕괴시키는데 일조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됐다. 처음에는 애플리케이션 시간 제한 기능을 활용했으나 효력은 미미했고, 결국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모바일 앱을 삭제하기로 했다.


이 앱들이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특히 유튜브에서는 내가 좋아하거나 닮고 싶은 사람들의 삶의 면면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이 근사했다. 퇴사를 하는 데 긍정적 영향을 끼친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거기에 모두 담겨 있었다. 우연히 클릭했는데 멋진 인사이트가 있는 영상이나 우울한 마음을 자연스럽게 낫게 해주는 영상도 있었다. 하지만 꽤 괜찮은 영상에 접근하려고 할 때, 유튜브는 여지없이 자극적인 영상을 공격적으로 전시한다. 습관적인 시청으로 절제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본래의 목적을 잊고 모든 영상을 클릭하고 있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주는 모든 이점을 버리더라도, 불필요한 콘텐츠를 보며 낭비하는 시간과 조악한 자극으로 인한 집중력 문제 해결이 시급했다. 앱을 삭제한 후에 생각했던 것과 달리 불편한 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트렌드 서칭과 같은 업무나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의 가벼운 대화를 위해서 SNS를 봐야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오히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나오는 정보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대신 양질의 책을 더 많이 읽게 됐다. 몸 담고 있던 곳에서 빠져나와 들여다보니, 대부분의 SNS 활동은 ‘시간 낭비’로 요약 가능했고, 내가 바로 그 시간을 얻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자각하는 순간 조금 더 냉정하게 스크린 중독을 끊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집중력이 돌아왔다. 작업을 시작하고 끝낼 때, 웹서핑, 온라인 콘텐츠 소비, 청소, 화장실 가기, 간식 먹기 등 불필요한 개입 없이 한 번에 작업을 처리할 수 있는 근육이 생겼다. 집중력 있게 작업을 반복하니, 한 작업을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미세하지만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업무 시간을 무한정 늘리고 싶지 않다면 집중력 있게 일을 수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차적으로 집중력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하면 업무 시간이 오히려 줄어든다. 집중력과 반복의 결합으로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면 업무량을 조금씩 늘려도 시간은 그대로인 상황까지 맞이할 수 있다. 본인의 노동력을 투입해 돈을 버는 프리랜서에게 높은 집중력이란 업무 시간을 줄여 시간당 단가를 올리는 일과도 같고, 일의 질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꼭 필요한 능력이다. 일을 하다가 빈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일을 다 끝내고 빈둥거리기 위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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