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밖 돈 벌기의 시행착오 1 ] '재취업'이라는 선택지를 제거했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일자리를 잃은 청년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려는 듯 밝은 표정으로 선생님이 물었다.
“작.. 가.. 요. “
나라에서 주는 구직촉진수당을 받기 위한 첫 번째 면담날, 담당 선생님이 묻는 희망 직업에 수줍게 대답했다. 고용노동부의 국민취업지원제도는 직업 훈련과 같은 취업 서비스와 최대 300만 원의 구직촉진수당을 지원한다. 근로능력과 구직의사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희망 직업은 신청자가 반드시 답해야 하는 항목 중 하나다. 나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 중에 제일 좋아했던 일은 글쓰기였다고, 그래서 노동의 형태에 최대한 가까운 직업을 굳이 고르자면 작가라고 답했다. 선생님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힘든데요.”
돌아오는 답은 거절이었다. 구직촉진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제도 지원 절차에 따라 한 달에 최소 2개 이상의 구직활동을 해야 하는데, 작가는 현실적으로 구직활동을 인정받기 힘들다는 설명이었다. 취업을 위한 공신력 있는 직업 훈련 과정도 없고, 업체에 실제 출근하는 하는 일 경험도 하기 어렵고, 구인업체 입사 지원이나 면접도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작가가 되려면 뭘 해야 하죠?”
“우선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요. 혹시 글을 쓰는 건 구직활동 인정이 안 되나요?”
“아… 창착활동은 인정이 어렵습니다.”
아무리 계획도 없이 급하게 만들어진 희망 직업이라 해도 ‘안 된다’는 거절은 익숙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제도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이 제도는 일을 하고 있지 않거나 못하는 청년들을 일하게 만들려는 제도이고, 이로써 국가가 얻는 것은 세금 및 생산량 증대 같은 것이니까. 내가 어엿한 작가가 돼 한몫을 하는 것은 가능성이 낮은 일이기도 하고, 그런 낮은 가능성을 보고 허송세월하고 있는 것보다는 전처럼 하루 8시간씩 열심히 일하며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이 나라에 도움이 되겠지. 이 모든 불만을 떠나 내가 일하지 않고 받을 수 있는 구직촉진수당 300만 원은 희망 직업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게 소중했다.
“그럼 작가 안 할게요.”
즉각적으로 꿈을 버린 나를 보며 선생님의 얼굴에서 잠시 황당함이 떠올랐지만, 이내 다시 아까와 같은 평온한 표정이 됐다. 여기서 내가 작가를 한다고 우긴다면, 이후 구직활동을 인정받는 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보다 구직활동이 용이한 직업을 선택하는 게 우리 둘 모두에게 나았다. 문제는 작가를 포기하고 나니 딱히 원하는 직업이 없었다는 거다. 당장 아무 직업이나 골라 취업을 해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선생님은 일단 생각을 해보라고 했다. 그렇게 3주가 흘렀고, 또다시 그의 앞에 앉아있다.
“희망 직업은 정하셨어요?”
사실 취업을 하고 싶지가 않은데요. 300만 원을 생각하며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킨다. 대신 멋쩍게 웃어 보인다. 취직할 의사는 강력하지만, 아직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본다. 상담 선생님은 작가와 비슷해 보인다며 직업 몇 가지를 추천해 준다. 유망 분야는 나라에서 비싼 훈련을 지원도 해준다는 얘기와 함께. 하지만 추천한 직업들 중 글을 쓰는 직업은 아무것도 없다. 그 어느 것도 작가와 비슷한 직업이 아니었다.
“그럼 원하는 직업 훈련은 있으세요?”
구직 활동을 인정받아(구직촉진수당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의 직업 훈련을 받아야 한다. 희망 직업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하기 어렵다면, 배우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는 얘기였다. 직업 훈련 중 그나마 가장 쓸모 있을 것 같으면서 흥미가 생기는 것을 골랐다.
“네, 저 포토샵을 배우고 싶어요.”
“그러면 일단 희망직업 1순위로 시각디자이너를 올려 둘게요.”
“디자이너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얼렁뚱땅 내 꿈은 갑자기 시각디자이너가 됐다. 나라에서 임시적으로 준 꿈이다. 당시 컴퓨터 학원에서 포토샵 수업을 들으며, 포토샵 수업을 듣게 된 이유에 대해 글을 썼다. 해당 글을 한 글쓰기 플랫폼에 올렸고, 운이 좋게도 누군가에게 업무 제안이 왔다. 그다지 자신감은 없었지만 잃을 게 없다는 가볍게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응했다. 계획이나 기대 없이 우연하게 시작한 일이지만, 퇴사 후 가장 기분 좋게 꾸준히 진행한 프리랜서 작업이 됐다. 결과적으로 취업지원제도를 통해 일을 찾게 된 셈인데, 정작 이 제도 하에선 취업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다른 돈 버는 일들도 갑자기 시작됐다. 애초에 돈을 어떻게 벌겠다는 계획은 전혀 없었다. 통장 잔고에는 한계가 있으니 언젠가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누가 보면 로또라도 당첨된 줄 알만큼 하염없이 놀고만 있었다. 단지 근무 형태나 방식, 시간과 같은 기준만 머리 안에 있을 뿐, 그렇게 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시간은 거의 전무했다. 그 시기에 나는 일이 너무 하기 싫어서 일 자체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프리랜서로서 굶어 죽지 않을 만큼 소소하게 일을 하게 됐는데, 시작은 모든 백수가 한 번쯤은 겪게 된다는 ‘현자타임’이었다. 평소 잔병치레가 없는 편이지만, 퇴사 후 반년쯤 지나고 꽤 아팠던 적이 있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처럼 강한 몸살이 걸려서 3일 내내 누워만 있었다. 당시 꼼짝없이 누워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무력감이 강하게 밀려왔다. 돌이켜보면 아마 일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놀지 못해서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돈을 받는 일은 하지 않아도, 나름 즐겁거나 생산적인 행동을 해왔다. 하다못해 책이라도 읽었다. 그런데 정말 아프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누워서 핸드폰으로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 퇴사한 후 처음으로 들어간 그 사이트에서 ‘재택근무’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내 기준에 맞는 일이 몇 개 보였고, 짧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지원 버튼을 눌렀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하다가 부정적인 감정이 밀려들 때마다 지원서를 썼다. 노동 시간 대비 돈이 너무 적을 때, 작업 내용이 취향에 맞지 않을 때, 함께 일하는 사람이 너무 무례할 때와 같이 불만이 생길 때마다 일을 가차 없이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았다. 퇴사할 때만 해도 프리랜서의 삶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나는 어영부영 작업에 따라 돈을 받는 프리랜서가 됐다.
누군가에겐 퇴사를 하고 어떻게 먹고살 수 있을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돈벌이 수단을 고민하다가 결국 대안을 찾지 못하고 지금의 월급을 선택하곤 한다. 하지만 삶이란 전혀 예측할 수 없으며, 인간은 각자의 방식대로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는다. 나도 모르게 전혀 다른 차원의 불안감이나 욕망이 덮쳐 와서 재취업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의 기준만 제대로 세워 놓으면 원치 않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은 확연히 줄어든다. 느리거나 비효율적이라도 선택한 기준에 맞게 움직이는 것, 그렇게 움직이다 보면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퇴사 후 가장 잘한 선택지가 있다면 ‘재취업’이라는 가장 단순한 선택지를 아예 제거한 것이다. 거기서부터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