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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냉장고가 아니라 서랍입니다

냉장고 없이 매일 집밥 해 먹기

by 민선

냉장고는 내가 가진 첫 기억에서부터 존재하는 가전제품이다. 에어프라이어, 캡슐머신, 로봇청소기 같이 이름에 영어가 들어간, 자라면서 만난 새로운 가전과 달리 오래전부터 어느 집에서나 늘 함께 했던 가전. 그래서인지 냉장고 없는 삶은 상상할 기회조차 없었다. 모양과 크기는 달라도 냉장고는 내가 방문했던 모든 집을 비롯해 학교나 회사처럼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존재했으며, 그 모든 냉장고는 적어도 신선한 과일과 야채는 없을지언정 시원한 마실거리를 속에 품고 있었다.


해외 봉사를 하며 살게 될 집을 구했을 때 역시 부엌에는 내가 여태 보던 것과 다름없는 까만색 투도어 냉장고가 있었고, 브랜드는 생소할지언정 이 것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못했다. 잠시 머물던 임시 숙소에서 떠나 이제 좀 더 큰 냉장고가 생겼으니 부지런히 장을 봐서 안을 채워 넣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요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만 넘쳐흘렀을 뿐. 그리고 그 음식과 이가 시리도록 시원해진 맥주를 함께 먹을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일층 슈퍼에서 사 온 차가운 맥주가 실시간으로 냉기를 잃어간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3일 전 냉장고에 넣은 청경채가 본연의 초록빛을 잃고 노란색이 되었고, 냉장고에 넣으면 안 된다는 망고나 바나나 같은 후숙 과일은 냉장고 안에서도 무사히 익어갔다. 계란과 고기에서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부터 들고 온 유산균조차 걱정될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고치면 되겠지, 안일한 마음이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니 그는 다행히도 수리기사를 곧바로 불러주었다.


수리기사는 30분 간 나의 냉장고와 씨름하며 냉동고 뒤편을 열고 안에 있는 얼음을 깼다. 얼음이 한 무더기 나왔고, 소통은 전혀 되지 않았지만 추정컨대 얼음이 냉장고로 가는 냉기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수리 기사 다녀간 뒤 냉장고는 고쳐진 것도 안 고쳐진 것도 아니었다. 한국인의 시선에서는 고장 났다고 말할 법한, 하지만 기존에 비해서는 시원함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애매한 냉기를 일주일쯤 머금었다가 점차 시들어갔다.


'냉장고에서 음식 썩기 -> 집주인 연락 -> 수리 기사 방문 -> 애매한 냉기'라는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한 번은 내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나 싶어 베트남 친구에게 연락해 집주인에게 요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흔쾌히 우리 집 냉장고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어 음식이 상하고 있으며, 내가 음식을 냉장고 대신 냉동고에 넣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또한 냉장고를 수리하거나 바꿔줘야 한다고 분명히 강조했다.


집주인의 시원한 대답과 달리 같은 수리 기사가 네 번째 방문했고, 나는 문 앞에 서 있는 건조한 표정의 그를 봤을 때 모든 기대를 잃었다. 놀랍게도 그는 좀 더 오랜 시간 수리를 했으며, 그 이후의 냉기도 한국의 그것과 비슷해졌다. 하지만 여기까지. 냉장고는 좀 더 오랜 시간 더 낮은 온도를 유지했으나 여지없이 차가움을 잃고 말았다. 그 냉기는 아무리 저장하려고 해도 결코 보관할 수 없는 시간처럼 문을 열 때마다 급속도로 빠져나갔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다가 내가 먼저 손을 들었다. 그냥 냉장고 없이 살아보자, 나의 냉장고는 식료품 서랍이다, 되뇌었다. 베트남에서는 온도가 높고 벌레가 많기 때문에 식재료를 상온에 보관해 뒀다가는 벌레가 꼬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나는 곡류나 견과류 등 냉장 보관이 필요 없다는 식재료까지 모조리 냉장고에 넣었다. 냉기 없이 외부와의 차단만 가능한, 전기를 먹는 고급 서랍에 나는 건조된 식재료를 보관하기 시작했다.


흔히 집에 냉장고가 없다고 하면, '아 요리를 진짜 안 해 먹는구나'라는 반응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나는 냉장고가 없는 상태에서도 매일 저녁 집밥을 먹었다. (어떻게든 집밥을 해 먹어야 했던 이유는 추후 설명할 예정이다) 집밥을 먹기 위해서는 식재료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식재료를 보관할 냉장고가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봉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식재료를 샀다. 계란이나 과일, 야채 같은 식재료는 냉장고에서도 며칠 버틸 수 있지만, 고기는 그날 요리를 하지 않으면 상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구매했다. 대개는 사온 식재료를 전부 써서 요리를 했다. 보통 2~3인분 정도 만들어지는데, 한 끼는 바로 먹고 남은 음식은 밀폐 용기에 담아 냉동고에 넣었다. 이상하게도 냉장실과 달리 냉동실은 1회 수리한 전력을 제외하고는 멀쩡히 돌아갔기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냉동실에 모든 식재료를 넣을 수는 없었다. 냉장고에 비하면 3분의 1 크기여서 남은 음식을 보관하면 공간이 거의 찼다. 베트남 슈퍼는 한국만큼 다양한 종류의 냉동식품을 취급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에 소진해야 할 식재료 위주로 판매하고 있어 냉동 제품에 대한 선택권도 없었다. 대신 병아리콩, 홀토마토 등이 담긴 캔을 자주 애용했다. 냉장고가 없는 삶에서 캔은 아주 귀중한 식재료였다. 무엇보다 오래전에 읽은 궁극의 미니멀리스트 사례처럼 근처 마트를 우리 집 냉장고로 이용했다.


냉장고 없이 살아보니, 냉장고 있는 삶이 모든 삶의 기본값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마주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냉장고가 보이는 가게가 드물었다. 동남아에 가면 맥주에 얼음을 넣어 먹는 문화가 있는데, 가게마다 많은 술을 넣을 냉장고를 갖추기 어렵고 전기세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지근한 소주와 맥주를 가져다주면 화내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광경이다. 여기서는 얼음 역시 잘 갖춰진 냉동고에 있는 게 아니라 아이스박스 안에 있다.


가정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냉장고뿐만 아니라 부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있어 아침을 사 먹는 사람들이 많다. 저녁에는 그날 사온 재료를 몽땅 때려 넣고 버너 위에서 샤브샤브 같은 전골 요리를 해 먹는다. 그래서인지 시장은 물론 마트에서도 식재료를 조금씩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망에 토마토가 5개쯤 들어 있을 경우 그 망을 찢어서 토마토 1개만 결제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도 그들과 함께 망을 찢었다.


단순히 냉장고라는 가전이 없다는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냉장고는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기기고, 냉장고가 있더라도 하루종일 켜 놓아야 하는 그 전력량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정전이 잦다. 멀쩡한 냉장고는 물론이고 냉동실만 기능하는 반쪽자리 우리 집 냉장고도 정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정전이 잠깐씩 발생하는 게 아니라 길면 예고 없이 하루 종일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에 식재료를 마음 놓고 쟁여 둘 수가 없다.


냉장고가 편리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매일 장을 보기 어려운 사람들도 있거니와 식재료를 바깥에 두면 버리는 무언가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냉장고가 있어서 버렸던 음식이 얼마나 많은가. 냉장고를 핑계로 감당하지 못할 식재료를 사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 대신 새로운 음식을 해 먹는다. 언제 샀는지도 모르는 재료가 냉장고 한 구석에 쌓여 있고, 발견한 후에는 유통 기한이 지나 버려야 하는 상황은 한국 가정에선 흔하디 흔한 풍경이다.


거기다 더해 사람들은 더욱더 큰 냉장고와 많은 냉장고를 구입한다. 누구네 집에는 양문형 냉장고 3대가 있다는데, 먹일 식구가 몇 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래 장을 보지 못할 만큼 바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바쁜 사람은 음식을 할 시간도 없을 테고. 텅 빈 냉장고 앞에서 나갈 채비를 하며 생각한다. 냉장고가 없어서 버리는 음식보다 냉장고가 있어서 버리는 음식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냉장고가 없는 삶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의 식재료를 살 여력이 없다. 고장 난 냉장고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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