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홀로 '뗏'을 보냅니다
베트남의 설날은 ‘뗏’이라고 불린다. 베트남의 가장 큰 명절로 공식적인 뗏 기간은 1월 25일부터 2월 2일까지다. 장장 9일간의 꿀 같은 연휴다. 이 시기를 앞두고 길거리에 큰 시장이 열리고, 사람들은 집을 꾸밀 꽃을 사고 넉넉하게 장을 본다. 연휴 기간 동안 베트남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과 주변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관광지가 아닌 곳일수록 대부분의 가게가 닫는다. 길면 1월 한 달 동안 문을 휴식을 갖는 곳도 있다. 그만큼 뗏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이다.
아무리 기쁘고 큰 명절이라도 가족 없이 타지에 홀로 있는 봉사 단원에게는 그저 쉬는 날일 뿐이다. 마땅히 문을 여는 곳이 없어 집에서 9일 동안 살아남아야 하는 중대한 미션과 함께. 나는 뗏 기간 전에 마트에 들러 각종 식재료를 한가득 샀다. 그전에 집주인에게 말해 냉장고부터 고쳤고, 수리한 냉장고가 언제까지 시원할지 모르기 때문에 실온에서도 버틸 수 있는 단단한 야채와 과일을 골랐다. 그리고 식수를 배달시켰고, 어딘가 부족한 것 같아 다시 한번 시장에 나가 눈에 밟히는 음식들을 샀다. 다람쥐를 모으는 도토리처럼, 최선을 다해 먹을 것들과 간식거리를 모았다.
음식이야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는 명절은 처음이었다. 돌이켜 보면 명절은 자동적으로 만남으로 귀결되곤 했다. 평소에 자주 뵙지 못하는 할머니나 친척들과 안부를 물으며 맛있는 밥 한 끼 하고, 반갑게 그동안의 근황을 업데이트한다. 하지만 근황이란 게 자주 보지 않는 사이에서 주고받기에는 그 깊이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피상적인 대화가 이어지고, 그렇게 공백을 채우다 뜻하지 않게 감정을 건드리는 그런 말까지 나오고야 마는, 결국 한 방향으로 앉아 티비를 보며 연예인에 대해 얘기하다 과일과 떡을 먹는 그런 시간으로 끝날 때도 많았다.
나는 유독 미세한 분위기를 감지해 내곤 해 곧잘 불편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 아포칼립스 같은 9일간의 휴가가 얼마나 소중한지. 베트남 직원,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명절을 홀로 지낼 나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냈지만, 속으로 나는 웃고 있었다. 이 9일은 어린 시절 상상 속에만 존재했던 어른의 겨울 방학이다. 해야 할 방학 숙제나 눈치 볼 사람도 없이, 풍족한 음식과 즐길 거리가 준비되어 있는. 그 순수한 설렘에 공복 요가를 하고, 정성껏 스스로를 먹이고, 보고 싶었던 책과 영화를 몰아 보고, 매일 한 장씩 그림을 그리고, 평소엔 최대한 미루는 바닥 물걸레질까지 자발적으로 하며 혼자 부지런을 떨고 있다.
해외에 철저히 고립되고 나서야, 온갖 관계와 책무 속에서 살아가는 한국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그런 시간을 연속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집에 홀로 있는 날이 명절뿐이겠는가.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도 온전히 혼자 보내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물론 퇴사를 하고 나서도 줄곧 캘린더에는 약속이 적혀 있었다. 그것이 결코 강제적인 만남은 아니었고 분명 그 힘으로 살아낼 만큼 즐거운 순간도 많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이 꼭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의문이 생긴다. 분명 그 약속 중에는 그저 당연하게 생각되어 관습적으로 이어온 관계도 있었다.
약속 없는 삶을 살아보면 약속이 나에게 과연 무슨 의미였던가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무수한 약속으로 만들어지는 인간관계라는 것이 소위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도구가 아닐까. 인간관계가 부질없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보통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려면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본래적 가치라기보다 도구적 가치에 가깝다는 얘기다. 살다 보면 부탁하고 부탁받을 일이 생긴다. 사람을 불러야 할 경조사도 있다. 그저 수다를 떨며 목적 없는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거나, 고민을 털어놓고 의견이나 위로가 듣고 싶을 때도 있다. 세간에 있는 약속 하나 없는 삶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무시할 수 없다. 혹은 혼자 재밌게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모르거나, 혼자 밥 먹거나 노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가족도 친구도 없이 기본적으로 모든 것을 홀로 해결해야 하는 이곳에서는, 그런 이유들이 고민할 새도 없이 깡그리 사라진다. 물론 애초에 약속을 잡을 수 없다는 이유가 선행한다. 해외살이 반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새로운 누군가를 찾아 약속을 잡고 싶다거나, 약속 없는 삶의 문제점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심지어 약속 없는 주말로도 모자라서 나 홀로 보내는 9일간의 명절에 격하게 기뻐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약속 없는 삶을 객관적으로 돌아봐도, 나는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있고, 꾸준하게 운동을 할 여유가 생겼으며, 독서와 같은 취미 생활을 더 깊게 즐기고 있다. 건강한 음식 섭취량이나 운동과 독서와 빈도가 더 나은 인간이 됐다는 절대적 지표가 될 순 없지만, 과거의 나는 수없는 만남을 반복하면서 더 나은 인간이 됐다는 느낌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 나는 이곳에서 약속의 부재를 통해 그에 가려져 있던 모종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관계와 책무에서 벗어나 좀 더 많은 여유와 에너지가 허락된다면, 나는 방학계획표 따위가 없어도 부지런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싶거나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자꾸 하지 못한다면, 무언가를 과감하게 빼야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어떠한 관계일 수도 있다. 평생 몰랐으나, 나에게 적합한 약속의 빈도는 아주 낮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