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문 앞 배송'이 사라진다면
한국의 편리한 택배 시스템은 수많은 믿음 위에 가능하다. 상품페이지에 사실에 가까운 것이 적혀 있으리라는 믿음, 카드 결제 시 내 카드 정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허튼 곳에 사용되지 않으리라는 믿음, 판매자가 약속대로 상품페이지에 적힌 동일한 물건을 약속한 시간 내에 보내줄 것이라는 믿음, 택배 업체가 그 시간 내에 내 물건을 안전하게 가져다줄 것이라는 믿음, 택배 기사가 내가 없는 사이에도 문 앞에 택배를 놓아줄 것이라는 믿음, 무엇보다도 그 도착한 택배가 아무리 고가의 제품이라도 그 아무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베트남의 택배 시스템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이 모든 믿음들은 조금씩 허술하다. 이 믿음은 결국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장기간에 걸쳐 반례가 거의 나타나지 않아야 지켜지는 법이다. 동시에 믿음이 깨졌을 때, 사회 공권력이 믿음을 깨뜨린 자를 적절한 방식으로 벌해야 한다. 그러니까 사회구성원의 자발적 노력과 경찰과 같은 사회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베트남은 아직 그렇지 않다. 거창하게 썼으나, 단순하게 말하자면 베트남에서는 택배 기사가 택배를 문 앞에 두고 가지 못한다.
쇼핑몰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물건과 가격 비교 시스템, 그리고 비교적 빠른 배송까지는 한국과 비슷하다. 하지만 마지막 결정적 순간, 배송을 받아야 할 때는 무조건 기사와 만나야 한다. 심지어 다수의 경비원이 24시간 일하며, 층별로 CCTV가 설치된 아파트 비슷한 곳에 살고 있음에도 그렇다. 아무리 쇼핑이 좋은 사람이라도 마냥 집에서 택배만 기다릴 수가 없다. 그래서 급한 물건은 봉사를 하는 근무지로 시킬 수밖에 없다. 그런데 늘 근무지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배송 기사와 엇갈리기 일쑤다. 또한 전화를 받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봉사를 하다가 받지 못할 때도 있다.
한국에서 모든 물건을 거의 인터넷으로 사곤 했던 나는, 이곳에 와서 인터넷 쇼핑에 흥미를 급격히 잃었다. 대부분의 물건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겠으나, 불편한 택배 시스템이 가장 큰 이유다. 기사와 만나야 한다는 그 수고가 일종의 장애물이 된다. 식료품 배송도 비슷하다. 전화를 기다리다가, 제시간에 전화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1층까지 내려가서 직접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빠른 배달 시스템이라도 한국의 새벽 배송에는 비할 수가 없다. 결국 사야 할 것도 안 사고 어떻게든 버티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의 편리한 배송이 얼마나 소비를 부추겼는지 깨닫게 되었다. 불편함이 소비를 멈추는 것처럼, 편리함은 소비를 조장한다. 유튜브를 보다가 누군가의 내돈내산 추천 리스트 따위를 보고, 링크를 타고 상품과 리뷰를 확인하고, 클릭 한 번이면 결제 후 다음날 내가 없는 집으로 도착한다. 외출 후 나는 문 앞에 놓인 상품을 확인한다. 이 얼마나 편리한 시스템인가. 애초에 찾던 제품도 아니었지만, 갑작스럽게 화면에 뜬 상품이 꼭 필요했던 제품이었던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익숙할 것이다.
습관적으로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갔던 지난 세월은 또 어떻고. 좋아하는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를 주기적으로 들어가며 신상을 확인하고, 마켓컬리와 같은 식료품 앱에 들어가 신상품이나 리뷰가 좋은 상품을 구경한다. 추운 겨울 밖을 나가지 않아도, 다양한 쇼핑 플랫폼에는 요즘 유행하는 제품이 안목 좋은 편집샵처럼 디스플레이 돼 있다.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지다 보면, 눈에 끌리는 상품을 만나는 것은 일도 아니며, 스트레스받는 상황이라면 쉽사리 구매로 이어진다. 이 모든 행위는 결국 택배가 자동적으로 문 앞에 잘 도착할 것이라는 믿음하에 진행된다.
하지만 한국과 먼 이곳에서는 그런 곳에 아예 들어가지 않는다. 어차피 살 수 없는 것을 아니까. 반대로 생각하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살 생각으로 그런 곳을 유영했던 거다. 배송 불가능이라는 제한 하나만으로, 나는 온갖 아이템을 구경하는 것조차 흥미가 떨어지게 될 줄은 몰랐다. 자주 봤던 내돈내산 추천템 같은 영상을 클릭하지 않을뿐더러, 가끔 보게 되더라도 갖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과거였다면 굳이 상품 페이지까지 들어가곤 했을 텐데, 지금은 ‘아 이런 걸 샀구나’하고 넘어간다.
한국에서의 나는 꼭 필요하다거나 내 취향에 맞다는 이유로 꾸준히 무언가를 샀다. 택배 상자가 매일같이 쌓이지는 않아도, 습관적으로 물건을 탐색하며 그러다가 인플루언서와 마케터들이 세심하게 깔아놓은 덫에 종종 걸리곤 했다. 다른 사람을 탓할 것도 없이 스스로 만든 덫이기도 했다. 베트남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충동적으로 한 스포츠 브랜드의 반팔 셔츠를 산 적이 있다. 그건 그렇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었고 돈을 쓰는 행위가 그리워 습관적 소비를 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그 사실을 깨달았고, 그 이후로 식료품을 제외한 물건을 거의 사지 않았다.
편리한 한국 택배 시스템으로 가능한 일련의 쇼핑 과정은 특권이다. 분수에 넘치게 소비할 수 있는 능력과 동시에 소비를 줄여야겠다는 마음가짐까지 역시 특권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특권은 소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굴레 안에서 탄생한 것이다. 살아 있는 한 자본주의의 굴레는 끊을 수 없겠지만, 습관적 소비로 이어지는 내부의 굴레는 끊어낼 수 있지 않을까. 온라인 쇼핑이 야기하는 환경오염과 쓸만한 물건이 버려지는 낭비, 멀리 가지 않더라도 판단력 오염과 재정적 낭비를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내가 없는 동안 문 앞에 놓여 있어야 할 정도의 가치 있는 택배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