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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도 병원 안 가고 참는 이유

믿을 수 있는 병원이라는 안전장치

by 민선

한국에서의 나는 굳이 따지자면 건강한 편에 속했다. 치과 방문과 같은 정기 검진을 제외하면 병원을 방문할 일이 별로 없는 그런 사람. 그래서 해외생활에서 아프면 큰일이다, 같은 말을 듣고도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거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해외생활을 시작하니, 급격하게 뒤바뀐 환경 탓에 몇 번의 고비가 있었다. 오자마자 심한 감기에 걸렸고, 원인 모르게 눈이 불편한 적도 있었다. 생전 나지 않던 부위에 뾰루지가 나고 생리주기가 불규칙해졌다. 운동을 잘못한 탓에 밤마다 목에 통증이 생겨 깨기도 했다.


한국이었으면 바로 병원에 갔을 일을, 이곳에서는 일단 참았다. 병원을 가서도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과 달리 선뜻 병원을 가기에는 심리적 부담감이 있었다. 봉사하는 곳의 베트남인 직원이 통역에 도움을 준다고는 하지만, 매번 아플 때마다 부탁하기도 어딘가 죄송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나는 베트남 병원에 대한 낮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베트남 병원이라기보다는 내가 봉사를 하고 있는 이 지역에 있는 병원을 믿을 수 없었다. 언어가 안 통하는 데다 믿고 맡기면 알아서 잘해주겠지라는 기본적인 신뢰가까지 없으니, 한국과는 다른 이유로 병원과 담을 쌓게 되었다.


처음 오자마자 법규에 따라 건강검진을 하게 되었는데, 아무리 요식행위라고 하더라도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를 확인하는 수준의 건강검진이 진행되어 경악한 적이 있다. 이어 키를 재는 기계에 올라섰더니, 전혀 다른 숫자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매년 받았던 건강점진에서는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숫자였다. 진료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수치인 키와 몸무게도 정확하게 집계하지 못한다면, 다른 어떤 병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내가 갔던 병원은 동네의 허름한 의원급 병원이 아니라, 나름 깨끗하고 사람으로 북적이는 큰 종합 병원이었다.


몇 달 지나 예방 접종을 위한 피검사를 받으러 해당 병원을 다시 찾았을 때는 그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다. 나의 얕은 상식으로는 바늘을 피부에 꽂을 때는 위생 상태가 정말 중요하다. 바늘이 피부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각종 균이 직접적으로 침투할 위험이 있어서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주사를 맞거나 채혈을 할 때, 의료진은 손을 알코올로 닦거나 일회용 장갑을 착용한 후 알코올솜으로 환자의 피부 표면을 강하게 문지른다. 그런데 베트남에서 채혈을 하려고 하니, 의사는 장갑을 끼거나 손을 닦지도 않았고 컴퓨터를 만지던 손으로 내 피부에 알코올 스프레이를 멀리서 칙칙 뿌렸다.


그걸 보자마자, 단순히 황당하다는 생각을 넘어서 공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후 다른 병원도 가기 꺼려졌다. 혹시 의사가 내 증상을 잘못 진단하지 않을까, 항생제나 스테로이드제를 과도하게 처방하지는 않을까, 채혈이나 검진 과정에서 감염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남들이 보기에는 유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마음속에 한 번 자리 잡은 공포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부정출혈로 산부인과를 가야만 하는 상황인데 질초음파를 한다고 생각하니, 더더욱 불안했다.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공포의 근거를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한몫했다.


현지인이 병원에 가는 못하는 사정은 사뭇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부담감 때문에 병원에 쉽게 가지 못한다. 어른이 된 후 사정이 좀 나아지더라도 과거부터 병원을 자주 방문하지 않아서 심리적 장벽이 높을 수도 있다. 대신 조금 과장해 사람이 모인 동네에는 한 블록마다 약국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의약 분업 제도 도입 이후 전문의약품은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만 살 수 있지만, 베트남은 약국에서 자유롭게 전문의약품을 살 수 있다. 과거 한국처럼 약사에게 증상을 말하면 약을 처방해 주는 식이다. 알다시피 그때 우리나라에서는 항생제가 오남용 됐다.


어떤 이유에서든 이곳에서는 병원에 쉽게 가지 못한다. 아프면 병원에 바로 갈 수 있는 환경은 문제 상황을 바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병원에 가는 것이 그 즉시 고통에서의 해방을 보장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정확하거나 빠른 해결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목에 통증이 생겼다면 당장 정형외과로 달려가 체외충격파와 같은 필요한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믿을 수 있는 의료진과 실비 보험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낮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이곳에서 목이 낫기까지는 무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완전히 나은 것도 아니고, 자다가 통증에 깨지 않을 정도가 됐다. 나는 그 과정에서 정확한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챗GPT에 물었다가 유튜브를 뒤지다가, 스트레칭을 했다가 안 했다가, 베개를 높였다가 낮췄다가, 온찜질을 했다가 냉찜질을 했다가, 바보 같은 행동들을 했다. 보다 못한 친구가 전문가인 지인에게 내 증상에 대해 물어보았고, 염좌인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서야 나는 목에 좋지 못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소염제와 근육이완제라는 필요한 약 성분을 찾아 셀프 조제까지 했다.


단순 염좌로 끝나 다행이지만, 운이 좋지 않게 걸린 어떤 병은 빠른 병원 치료가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러 장벽으로 인해 그 골든 타임을 놓친다면, 이곳의 사람들은 쉽게 더 고통을 겪게 된다. 문제 상황을 곧바로 해결하지 못하는 그 환경이 건강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방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프면 일을 하지 못하고, 그 결과 더욱 경제적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또는 정상적으로 학교에 갈 수 없어 교육의 기회를 놓치거나, 평생 장애를 얻게 될 수도 있다. 한국의 거의 모든 건물마다 있는 병의원과 의료 시스템은 그런 최악의 상황을 막아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이기도 하다.


내가 베트남에서 만난 어느 아이는 볼 때마다 등이 굽어 갔다. 병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큰 수술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척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렵게 수술을 하더라도 남들처럼 곧은 등을 갖지 못할 확률이 크다. 등이 굽어 친구들처럼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없고, 그 결과 학교에 가기도 힘들어졌다. 그 나이에 꼭 필요한 친구들과 뛰어놀기와 같은 모든 행동에 제약을 겪는다. 하루빨리 수술이 시급하지만, 집 안에서는 아이를 위해 큰돈을 마련할 수 없다고 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 그는 부모를 보채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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