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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 마셔도 될까?

베트남에서 사과 안 먹는 이유

by 민선

이 물로 양치해도 괜찮을까.


처음 베트남에서 살게 됐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었다. 이 물을 여행 와서 하루 이틀 쓰는 것도 아니고, 일 년이나 괜찮을까? 누군가는 정수물로 양치를 하라고 했다. 며칠은 그렇게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수돗물과 영영 멀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정수물 쓸 것 같아요? 누군가가 비밀을 말해줬다. 사실 비밀은 아니었다. 문도 없이 앞이 뻥 뚫려 있는 식당에서, 고급 필터를 설치해 깨끗한 물을 쓸 여력은 없어 보였다. 양치로 인해 입에 머금게 되는 수돗물은 온갖 음식에 들어가는 물과 얼음에 비하면 미량에 불과했다.


매일 마시는 생수도 100% 믿을 수는 없었다. 베트남에서는 흔히 20리터짜리 큰 통에 담긴 생수를 주로 마신다. 일회용으로 한 번 쓰고 버려지는, 1.5리터 생수병과는 달리 20리터짜리 생수병은 빈 통을 반납하는 시스템이다. 생수 회사에서는 해당 통을 수거하고, 물이 담긴 다른 통을 배달해 준다. 재활용하기 때문에 누가 봐도 사용한 흔적이 역력하다. 처음에는 혼자서 글로벌 브랜드가 생산한 500미리리터 생수병을 가지고 다니면서 유난을 떨었지만, 이제는 나도 그들과 함께 그 물을 꿀꺽꿀꺽 마신다. 일회용품 생수도 개봉 후에는 세균이 급속도로 증가한다는데… 머릿속에는 이 생수와 통을 믿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다.


물은 시작일 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공포는 해결되지 않았다. 과한 걱정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겪었던 이라면, 그 작은 화학 물질이 인간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한 지역의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와서 크게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잊을만하면 뉴스에서는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됐다든가, 어디 제품에서 환경호르몬이나 발암 물질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국에서 그러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어떤 균이나 화학 물질이 나도 모르는 방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염려가 생겼다.


이러한 일의 특징을 나열해 보자면, 우선 문제가 생기거나 검사를 하기 전까지 해당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철저하게 사후약방문식 대책인데, 그것이라도 가능한 것에 감사해야 할 때도 있다. 왜냐하면 개인은 이 사실을 알 수도, 해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시민 사회, 언론, 정부 기관이 정교하게 작동해야 문제의 발견과 해결이 겨우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력하면서도 그것이 어느 정도 작동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나는 그것을 믿고 사과를 껍질 채 먹을 수 있으며, 생 야채가 가득 담긴 샐러드를 해 먹고, 마음 놓고 양치를 한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절대 사과를 껍질 채 먹지 않는다. 사실 그 좋아하던 사과를 멀리하고 있다. 사과 껍질과 사과에 우수한 영양소가 많다는 걸 알면서도, 그 영양소를 거부한다. 베트남의 경우 고유 종자(매우 작고 맛이 다르다)를 제외한 우리가 아는 빨간 사과는 모두 수입을 한다. 미국, 프랑스, 아프리카 등지에서 수입이 되는데, 마트에서 그것들은 어느 열대 과일보다 영롱한 자태를 띄고 있다. 시장에서 파는 과일과는 다르게 흠집 하나 없이, 윤기 나는 껍질로 소비자를 유혹한다. 가끔 가격도 너무 싸서, 주부들이 대형 마트에서 사과만 큰 봉지에 2~3kg씩 담아 사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사과를 볼 때마다 의문이 생긴다. 오랜 기간 바다 건너온 사과가 어찌도 이렇게 모형 과일처럼 온전할 수 있는가. 썩지 않는 자연물은 없다. 각종 화학 물질로 늦출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의 경우 농산물에 대한 잔류 농약 기준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입 과일에서 농약이 검출되어 즉시 폐기 및 회수 조치를 했으며 검사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물론 베트남에서 수입된 사과에도 어느 정도 기준이 존재하겠지만, 검증 시스템이 미약하다.


무엇보다 검증 시스템으로 농약이 검출되었을 때 소비자가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베트남의 모든 언론 매체는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시민들은 농약 검출과 같은 정보를 얻기 힘든다. 언어가 다른 외국인은 그 정보에서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만약 수입과 판매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화학물질을 오남용 하는 사람이 있다면, 소비자들은 고스란히 위험에 빠진다. 그 위험은 당장 알 수 없고, 위험의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특정한 인과관계를 추적하기 힘들어진다. 수입 사과뿐만 아니라 수입 오렌지도 먹었을 테고, 자국의 농산물 역시 어떤 식으로든 오염될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게 되면, 주변을 모조리 의심하게 된다. 당연히 베트남은 위험하고, 한국은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역시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여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언젠가 우리가 늘상 사용하던 어떤 물건에서 위험한 물질이 발견될 수도 있다. 한국에도 여전히 위험이 존재하나,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공포는 구체적인 대상이 있는 공포만큼 강할 수는 없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다 같을까. 어떤 것이 안전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 참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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