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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천장에는 쥐가 살아요

그 많은 쓰레기는 어디로 갈까

by 민선

선생님 집에도 쥐 있어요? 귀가하다 만난 동료 봉사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간 있었던 일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심지어 거실에서 음식을 먹다가, 방에서 잠시 쉬고 나온 사이에 음식이 사라진 적도 있다는 공포 영화 같은 얘기를 웃으며 했다. 더 끔찍한 사실은 그와 나는 같은 건물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렴풋이 짐작만 한 쥐의 실체를, 생생하게 인지한 날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소리로만 쥐를 상상했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한국의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쥐를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천장에서 원인 모를 소리가 들려도, 그 소리를 쥐로 연결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바퀴벌레 같은 비교적 작은 벌레는 절대 낼 수 없는 묵직하면서도 날렵한 소리, 개수는 많지만 손대면 부러지는 곤충의 얇디얇은 다리와 육중한 포유류의 네 발이 내는 소리는 차원이 달랐다. 베트남인 동료에게 몇 번이나 묻고 나서야, 무게 있는 소리를 내며 천장에 살 수 있는 건 쥐 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쥐는 항상 내 위에 살고 있었겠지만, 어느 날 들린 그 소리로 나의 세계는 달라진 것이다. 단단한 시멘트 벽을 뚫고 내려오지 못할 걸 알면서도, 이 아파트에서 살아남은 쥐라면 어떻게든 내 방으로 침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생각은 천장의 전구 사이로 쥐가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상상까지 이어졌다. 쥐가 일부로 내려오지는 않더라도, 혹시 발을 헛디뎌서 떨어지지 않을까. 하필 전구는 내 머리 위에 달려 있었고, 쥐가 머리로 떨어지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결국 나는 한밤 중, 전구를 꽂는 구멍에 테이프를 붙이고 나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상식적으로 그 구멍은 너무 좁고 작아서, 바퀴벌레라면 몰라도 쥐는 떨어질 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동료의 집과 달리 고층이고 사면이 잘 막혀 있는 우리 집에서는 쥐를 직접 본 적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없을 때 우리 집을 방문했을 수는 있지만, 그 가능성에 대해서 굳이 생각하진 않겠다.


이 정신적 사투를 집에서만 벌이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전거를 탈 때 앞보다 땅을 더 많이 본다. 혹시 있을지 모를 쥐를 피해 가기 위해서다. 당연히 살아 있는 쥐들은 인간보다 빨라서 잘 보기 힘들다. 하지만 죽어 있는 쥐들은 명을 다한 이후에도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죽는다. 밤새 오토바이나 차에 치여 붉은 내장이 나온 모습을 시작으로 그 쥐를 여러 번 밟고 지나가 아스팔트에 단단히 붙어 버린 모습까지. 매일 같은 거리를 지나기 때문에 그 사체가 어떻게 소멸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쥐의 일부였던 무언가를 밟고 지나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이다.


쥐 외에도 온갖 벌레를 생생히 마주한다. 굳이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에선 모기도 손으로 죽이기 싫어하던 내가 (벌레가 손에 직접적으로 닿는 느낌이 너무 싫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 조우에 익숙해지고 있다. 쥐와 벌레가 없는 세상은 깨끗하고 편하다. 나는 그 세상이 좋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당연한가 생각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곳에 쥐가 있는 이유는 먹을 것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쥐를 싫어하지만, 쥐는 사실 아무 잘못이 없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우, 모든 쓰레기를 집 안에서 버릴 수 있다. 아마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상상이 어려울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집마다 구석에 작은 철제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떨어 뜨리고, 문을 다시 닫는다. 같은 라인의 쓰레기들은 세로로 난 긴 통로를 따라 지하로 모인다. 일반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구분하지 않고 한 데 담아 밑으로 보내기 때문에, 그곳에는 쥐는 물론이고 각종 벌레들의 신나는 파티가 열린다.


주택가도 마찬가지다. 쓰레기를 집 앞에 내놓거나, 집 앞에 있는 플라스틱 통 안에 넣어 둔다. 날씨가 더운지라 음식물 쓰레기는 금방 부패한다. 환경 미화원이 매일 아침 주기적으로 수거하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사설 업체가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수거를 한다. 주기가 맞지 않으면, 쓰레기는 꽤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게 된다. 쓰레기 수거에 돈이 들다 보니, 집에 조금 떨어진 곳에 쓰레기를 버리거나 하수구에 음식물 쓰레기를 흘려보내는 경우도 많다. 바로 옆에는 쥐가 숨기 좋은 안식처가 있다. 자전거를 타고 제멋대로 자란 열대 식물들을 지나갈 때마다, 마구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한국은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모범 국가’다. 아파트의 음식물 쓰레기는 개폐가 확실한 곳(심지어 음식물 쓰레기 양을 자동으로 계산한다)에 모이기 때문에 쥐가 접근할 수가 없다. 주택가도 확실하게 음식물 쓰레기를 밀봉해 플라스틱 통 안에 넣는다. 과일 껍질이라도 착각하고 일반 종량제 봉투에 버렸다가는 금방 과태료를 내게 된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한국도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악취가 나지도 않지만, 그 쓰레기들은 그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흘러 흘러 어딘가로 간다. 그곳에도 쥐가 없을까?


음식이 부패하고 악취가 나는 곳에 쥐가 모여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슷하게 음식물 쓰레기와 녹지가 많은 뉴욕도 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쥐 앞에서 경제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등바등 목매는 성장이나 발전이니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는 얘기다. 살아남기 위해 음식을 탐하는 생명체를 그 누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결국 그런 존재인데 말이다. 심지어 그 음식물은 인간이 버린 것들이고, 그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쥐가 천장에서 운동장 마냥 뛰어다녀도 잘 잔다. 결국 나도 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생명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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