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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만 원짜리 팝업스토어

내 공간 네 공간

by 민선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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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뭐예요? 팝업 스토어예요?


어느 날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 생긴 천막을 보며 동료 선생님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소리 내어 푸하하 웃었다. 지금에야 익숙해서, 어디에 천막이 있든 쳐다보지 않지만 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람 사는 구경에 빠져 있을 때는 참 신기했다. 사람도 걷고 차나 오토바이가 다니던 길가에 갑자기 천막이 세워진다. 첫날은 지붕과 기둥만 있다. 며칠이 지나면, 테이블이 놓인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테이블마다 빼곡히 앉아 음식을 나눠먹고 건배를 한다. 가장 좋은 자리에 노래방 기계가 놓이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 최대 볼륨으로 노래를 부른다. 다음 날 천막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서울에서 갑자기 생겼다 사라지는 설치물은 팝업 스토어밖에 없었다. 성수동 같은 힙한 동네에 각 브랜드들이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인다. 눈을 사로잡는 거대한 구조물과 다채로운 디자인, 직원들이 밤새 고민한 흔적이 느껴지는 각종 이벤트들, 그리고 내향적 인간들의 혼을 쏙 빼놓는 텐션 높은 구성원들. 누가 더 시선을 잡아끌어 SNS에서 바이럴 될 수 있을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나조차 사진을 찍는 척을 해야 할 것 같은 그곳. 잠깐만 지켜봐도 업계 구성원들의 그간의 노고가 고스란히 느껴져 어딘가 처연해지는 곳. 그래서 나는 꽃이나 알록달록한 천으로 꾸며진 천막을 보고  팝업 스토어가 먼저 연상됐다.


알고 보니 그 천막은 각종 행사를 위해 임시로 설치된 구조물이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도 하고, 생일잔치나 개업식도 한다. 기념하는 내용은 다르지만, 천막 아래에서 함께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노래 부르는 것으로 귀결된다. 바닥에는 빈 맥주 캔과 쓰레기가 나뒹굴고, 천막 업체 직원들은 끊임없이 잔에 얼음을 채운다. 적당한 장소만 있다면, 테이블 개수에 따라 규모는 얼마든지 커질 수 있다. 이 적당한 장소라는 게 우리가 생각할 정도로 적당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 집 앞 도로는 물론이고, 양해를 구하고 옆 집 앞까지 쓸 수 있다. 심지어 오토바이가 다니는 도로를 반 이상 차지해도 괜찮다.


나는 늘 서울의 팝업스토어를 보며, 저게 얼마짜리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베트남인 동료에게 저게 얼마인지부터 물었다. 베트남 팝업 스토어의 비용은 테이블당 2,000,000동. 원화로 환산하면 약 11만 원 정도다. 이 정도는 애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6개 정도의 코스 요리(물론 개별 플레이팅이 아니라 앞 접시에 덜어먹는 구조)가 나오고, 푸짐하게 음식을 내어 초대한 사람들에게 당당할 수 있을 정도의 가격대다. 천막을 치면 적어도 5개 정도의 테이블이 설치되기 때문에 약 55만 원 정도, 여기서 테이블 개수나 음식 가짓수가 많아지면 그에 비례해 가격이 올라가는 방식이다. 어찌 됐건 형편이나 기념하는 내용에 맞게, 적절히 가격을 타협할 수 있다. 몇 주 간의 홍보를 위해 방대한 양의 쓰레기가 생산되는 한국의 팝업 스토어와 비교하면, 나름 합리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집 앞 팝업스토어가 가능한 이유는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여행하다 보면 잊히지만, 가끔 길가에 세워진 공산당 선전물을 마주할 때면 이곳이 사회주의 국가임이 실감 난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 개혁 이후 시장 경제를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다만 원칙적으로 국가만 생산 수단을 소유할 수 있다. 그래서 베트남인이든 외국인이든 토지를 살 수 없고, 장기 임대만 가능하다. 결국 토지와 같은 재산은 완전한 내 것이 될 수 없고, 함께 쓰는 공공의 것으로 남게 된다. 공공 공간과 사적 공간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집 앞 행사도 가능해진다.


한국에서 집 앞 행사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단 대부분의 경우 행사를 열 집 앞 공간이 없을 것이다. 수직으로 켜켜이 쌓여 있는 아파트 세대들의 집 앞 공간은 과연 어디인가. 빌라가 많은 동네에서 집 앞 행사를 했다가는, 일방 통행인 좁은 도로가 막혀 난리가 날 것이다. 공간이 좀 여유롭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행사 자체가 통행을 방해하게 되고, 행사 시작 전부터 민원이 쏟아질 것이다. 무엇보다 허가 없이 집 앞 공간을 점거하는 것은 불법이기도 해서 애초에 이 논의를 시작할 수도 없을 것이다.


공간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은 이뿐만이 아니다. 어느 날, 한 남성이 내가 봉사를 하고 있는 센터 앞 나무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톱질을 하고 있었다. 나는 센터에서 고용한 조경 업체 직원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근처에 사는 지역 주민이었다. 그가 사다리를 탄 이유는 나무가 무성해 벌레가 많이 생겨서였다. 그 주민은 미리 허락을 맡거나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벌레가 많다는 이유로 이웃집의 큰 나무를 잘랐다. 어느 날은 나무 사이사이에 각각 다른 집 자동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 공간은 우리가 더운 날 다 같이 땀 흘리며 잡초를 뽑고 쓰레기를 치워 깨끗하게 정비해 놓은 공간이었다. 자기네 집 앞은 공간이 부족하거나 통행에 방해가 되고, 값비싼 차가 훼손될 여지가 있어 안전한 센터 앞에 세워둔 것이다. 날 좋은 날 빨래 건조대를 끌고 와 하루종일 빨래를 말리는 일은 너무 흔하다.


반대로 한 주민은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자기 집에서 호수를 길게 끌어와 센터 앞에 있는 식물에 물을 주고 있었다. 명확하게 남의 땅이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닐까? 아무리 선한 의도여도 남의 식물을 키울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는 그 사람을 보면서 자기 땅처럼 맘대로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땅처럼 관리해 주기도 하는구나, 깨달았다. 아마 이 땅은 그 누구의 땅도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센터 앞에 있는 인도가 다른 도로와 명확한 단 차이가 있고, 우리가 책임지고 관리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우리 땅이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공용 공간일 수도 있다. 실제 법적으로 누가 사용권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역 주민에게 그러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곳은 언제든지 누구나 사용하고 관리를 할 수 있는 모두의 땅이었다.


무엇이 더 낫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그 흐릿한 경계에서 좀 더 창의성이 발현될 여지가 생긴 게 아닐까.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할 일이 있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을 한 데 불러 모아 밥 한 번 대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꽤 근사하게 느껴졌다. 초록이 무성한 나무를 마음대로 자르는 일은 황당하게 느껴졌지만, 아무도 보지 않아도 물을 주는 모습에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간을 소유의 개념으로 나누는 일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 장단점조차 파악되지 않는다. 태어난 순간부터 당연하게 생각된 이 자본의 시스템에서 나는 어떤 것을 놓쳤을까, 놓치게 될까. 이곳에서 나는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다. 어쩌면 우리는 함께 정원을 가꾸거나, 집 앞에서 파티를 열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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