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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위에서 자라는 아이들

오토바이라는 세계, 그리고 그 세계의 밖

by 민선 Mar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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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아이들은 오토바이 위에서 자란다. 간신히 천으로 머리를 가린 갓난아이들이 뒷자리에 앉은 엄마 품에서 생애 첫 오토바이를 경험한다. 그 아이가 조금 크면, 아빠와 엄마 사이에 끼워진 채로 장소와 장소 사이를 이동한다. 조금 더 활발한 아이들은 운전자보다 앞에 앉아, 엄마나 아빠의 손과 포개어 운전하듯 의기양양 핸들을 잡고 있기도 한다. 발아래에는 고개를 빼꼼 내민 강아지가 보일 때도 있다. 전기 자전거나 소형 오토바이를 지나, 오토바이를 탈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당연하게 모두 한 대씩 장만하게 된다.


이들에게 오토바이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생존의 도구이자 삶의 공간이다. 만약 오토바이를 뺏긴다면, 이들의 공간은 방 한 칸으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오토바이는 문자 그대로 ‘모든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하다. 오토바이가 없다면 학교나 회사, 병원에 가기 어렵다. 일상적으로 친구와 놀거나 데이트할 때도 필수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집까지 실어오기 위해서도 사용된다. 기차나 버스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는 경우도 많다. 그 작은 공간에 여럿이 몸을 실어, 덜덜 떨리는 상태로 3시간 넘게 움직이는 것은 이들에게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잠시 쉴 때는 오토바이 위에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오토바이 자체가 생계를 책임지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오토바이만 있다면, 다른 자본이나 기술이 없어도 우리가 잘 아는 그랩과 같은 교통, 택배, 배달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 정작 그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매일 활용하기에 너무 비싸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오토바이에 작은 주방이나 기계를 설치해 느억미아(사탕수수 음료), 반미(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 고이꾸온(월남쌈) 등을 판매한다. 간단한 음식뿐만 아니라 쌀국수와 같은 국물 요리까지 거뜬히 판매하는 노점이 되기도 한다. 오토바이로 장사를 시작하고, 그 돈으로 새로 태어난 가족에게 오토바이를 사준다.


한국에서는 트럭이 하는 일을 베트남에서는 오토바이가 다 한다. 어느 날, 그랩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앞 오토바이가 거대한 퀸 사이즈 매트리스를 싣고 가는 것을 보았다. 내가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매트리스의 한 부분은 오토바이 뒷자리에 고정되어 있었고, 휘어진 다른 부분은 거의 땅에 끌릴 것 같았지만 결코 땅에 닿지는 않았다. 어느 날은 적어도 3평짜리 가게 안에 있어야 할 양의 채소가 종류별로 오토바이 양 옆으로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도 목격했다. 언제든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물건들이 하루 종일 오토바이에 실려 다닌다.


이들의 세계는 오토바이만큼 확장됐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이들의 세계가 오토바이만큼 제한되는 모습도 마주한다. 베트남에서 내가 사는 곳은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 버스가 있다고는 하지만,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드물게 다녀 거의 이용하는 사람이 없는 수준이다. 대중교통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민의 필요가 필요한데, 퇴근길 오토바이 행렬을 보고 있다면 대중교통이 발전할 이유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버스를 타고 콩나물시루가 되어 집 근처(평소처럼 집 앞도 아니고 집에서 한참 먼 곳)에 내려야 할 이유가 있겠는가. 오토바이를 포기할 만큼 매력적인 대중교통 시스템이 나올 가능성은 요원하다.


호치민에서는 지난해 말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관광객 입장에서는 어차피 그랩 탈 거, 편하게 멀리 갈 수 있어 좋겠다고는 하지만 과연 이 지하철이 현지인의 일상생활에 잘 녹아들 수 있는지는 의문이 따른다. 지하철이라는 시스템은 지하철역에 내리는 순간 보장된 안전한 인도 또는 골목골목을 누리는 마을버스와 함께 완성된다. 지하철역에서 목적지까지 가는 위험하거나 험난하다면, 지하철이 지하철로 완전하게 기능한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결국 도착지까지 오토바이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라면, 아예 처음부터 오토바이를 타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대중교통의 발달이 늦어지면서, 오토바이 문화에서는 소외되는 사람이 생긴다. 청소년들은 통학을 도와줄 가족이나 서비스가 필요하다. 학업 외에 통학에 드는 비용과 노력이 추가되면서, 그 과정에서 일부 청소년이 정규 교육 과정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신체가 불편한 사람이나 노인들도 이동권이 제한되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동네에서 자전거에 겨우 걸터앉아 페달도 밟지 못한 채 발을 땅에 디뎌 움직이거나, 앞뒤로 손을 움직여 이동할 수 있는 탈 것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그 사람들은 매우 느리고, 큰 다리를 건너야 하는 시내는 갈 수 없다. 안 보이는 곳에 그것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물론 대중교통이 발달한 나라의 아동・소수자 인권이 그렇게 높은가에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동권을 보장하려는 모든 시도는 헛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오토바이에 익숙해져 새로운 세계를 마주할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도 있다. 내가 봉사를 하고 있는 센터에서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멀리 이동할 때가 있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이동을 위해 당연하게 한국에서처럼 버스를 대절하게 된다. 하지만 이때 ‘멀미가 난다’ 거나 ‘차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못 가는 학생들이 있다. 태어나고 지금까지 오토바이만 타다 보니, 차를 탈 기회가 있어도 타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쩌면 단순한 소풍이 아니라, 인생에 몇 없는 큰 기회가 멀어지는 순간을 스쳐왔을 수도 있다.


오토바이는 이들의 세계를 형성하고, 동시에 제한한다. 자유롭고 기동성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지만, 오히려 어떤 단절이나 포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때로는 나를 제한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 모순된 관계를 파헤칠 수 있는 사람만이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매일 실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오늘도 길 위를 달린다. 내가 아는 세계라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 세계의 밖은 영영 모르는 채로.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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