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해외여행을 가신다면
한국에서 해외여행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은 이벤트다. 자녀가 없는 직장인이라면 연차를 써서 주기적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고, 갔던 곳을 여러 번 가는 사람들도 주변에 흔하다. 물론 현실적 이유로 해외여행이 어려운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적어도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는 것이 과거처럼 어떤 대단한 이야깃거리는 되지 못한다. 특히 여행지가 일본이나 베트남처럼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는 곳이라면, 그 감흥이 국내여행만큼 줄어든 지 오래다.
하지만 일생에서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니, 국내여행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누군가에겐 수많은 취미 중 하나에 불과한 선택지일지라도, 사실상 여행은 많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크게 보면 여행할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그 안에는 다양한 조건이 숨어 있다. 미리 약속한 시간 동안 일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 돌아와서 일자리가 보장될 것이라는 믿음, 여행하지 않았다면 얻게 될 기회비용을 나의 행복을 위해 가뿐히 포기할 수 있는 여유 같은 것 말이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 원하는 국가를 방문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가능하다. 외국인을 만났을 때 스몰 토크를 하다 보면, 한국에 대한 것을 물을 수밖에 없다. 한국 알아요, 한국 음식 먹어봤어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어요 같은 가벼운 질문들. 베트남에서 봉사를 하며, 한국말을 잘하는 베트남 동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나온 물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와봤어요?”라는 이 평범하고 사소한 질문이 어떤 의미에서는 폭력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 사람이 한국에 방문할 자유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한국어를 하며 한국인과 일하는 나의 동료들은 한국에 올 수 없다. 단순히 돈이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입국 자체가 어렵다. 오늘도 수많은 한국인이 무비자로 베트남을 입국하지만, 반대로 베트남인이 한국에 오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자가 필요하다. 관광 비자라는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발급이 불가능하다. 한 명의 동료가 한국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한국에 가족이 살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족 만남이나 유학 등 뚜렷하고 합법적인 목적을 증명해야 만 한국에 비로소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한국은 너무 먼 얘기일지도 모른다. 쉬는 날 떠날 여행지로 해외를 고려해 본 적 조차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니 말이다. 어느 날은 근교 대도시인 호치민에 방문할 일이 있어 주변 베트남 사람들에게 호치민 맛집을 물은 적이 있었다. 봉사를 하는 곳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도시이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이 그곳 맛집 사정에 정통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 달리 호치민에 놀러 가본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이들에겐 휴일에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국은 여가를 즐기는 행복한 여행지라기보다 고된 노동의 장소에 가까울 수도 있다. 많으면 10배쯤 차이 나는 임금 격차로 인해 그 노동을 원하는 사람은 많은 반면, 대부분은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노동이 금지된 비자로 입국해 암암리에 전국 각지에서 일하는 베트남인들이 많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집안을 먹여 살리기 위해 국제결혼을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일반연수 비자로 한국에 들어와 영영 돌아가지 않고 마약을 유통한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무시하고 “한국 와 봤어?”라고 묻는 것은 무지와 무례가 합쳐진 결과다. 현실적인 문제로 기회가 박탈된 상황에서 그것을 고려하지 않고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처럼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어떤 구조적 한계와 그로 인한 좌절감을 은연중에 떠오르게 하는 일종의 폭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오늘도 수많은 불법 체류자가 위험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같은 국민인 그들과 철저하게 다르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자유 의지를 갖고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대한민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누구든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순간들을 마주한다.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정말 쉽게 해 놓고 ‘이걸 왜 안 해?’, 나는 절대 고려할 수 없는 옵션을 제시하며 ‘그냥 이렇게 하면 되잖아’ 같은 말이 누군가에게 튀어나올 때가 있다. 상대방에게는 그런 의도가 없을지 몰라도, 너와 나의 차이를 비롯한 구조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쉽게 내뱉는 말들에 우리는 종종 상처를 받곤 한다.
얼마 전 해외로 휴가를 다녀왔다. 동료들을 위해 선물을 사 오긴 했으나, 결국 주지 못했다. 아니 주지 않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겐 얄팍한 선물을 받는 즐거움보다 구조적 한계를 깨닫는 미세한 박탈감이 더 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느 날 굴러 떨어진 봉사자의 존재, 그리고 마음 편히 해외로 놀러 다니는 그 모습이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누군가는 그냥 선물을 주면 좋아할 것을 뭘 그런 것까지 생각하냐고 말할 수 있지만, 이런 생각은 조금 과해도 괜찮지 않을까.
- 덧붙여서, 저는 얼마 전 시드니에 다녀왔고 '물가의 차이'를 고찰한 아래 글을 함께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