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어려워지는 아이들과의 대화

아이라는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불안과 마주하기

by 행복한자유인

아이들이 중학교,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대화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아졌습니다. '어렵다'는 표현보다는 속이 타고 마음이 무겁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친구 관계에 스트레스를 받는 모습은 속상하고, 연예인에 집착하거나 하루 종일 휴대폰 화면에 눈이 붙어 있는 아이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물론 부모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다 문제는 아닙니다. 부모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아이들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죠. 아이들은 자아를 확장해 가는 단계인데, 곁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그 변화가 낯설고 예민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그런데 문득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서 제 모습을 봅니다. "아빠도 그렇게 행동하잖아요. 아빠한테 배웠어요"라는 날 선 말이 환청처럼 들릴 때면 가슴이 철렁합니다. 제 또래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더군요.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단점을 발견하고 괴로워하며, '내 아이만은 나처럼 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오히려 아이를 옥죄고 있다는 사실에 미안해하곤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Projection)'라고 부릅니다. 나의 결핍을 아이라는 거울을 통해 발견할 때 우리는 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아빠인 나의 해소되지 못한 욕망과 불안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는 영어를 못해 힘들다. 너는 나처럼 평생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빠는 어렵게 휴가를 냈는데, 너는 어떻게 친구하고만 놀러 간다고 하니?"


아이를 향한 이런 당부와 서운함은 아이들을 생각하기 이전에 나 자신에 대한 후회이고 보상받고 싶은 마음에 가깝습니다. 내 아이만은 힘들지 않았으면 하는 당연한 바람이 어느덧 욕심이 되고 일방적인 요구가 된 것입니다. 이쯤 되면 멋진 부모가 되고 싶었던 의욕은 사라지고, 정작 나 자신도 성장 마인드셋이 부족한 한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깨닫습니다. 대화 스킬이 부족해 답답한 마음에 대화를 회피해 버리는 제 모습이 속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부모도 완벽할 수 없음을 말입니다. '부모가 문제다'라는 자책은 오히려 우리를 멈추게 합니다. 그보다는 '부모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중이다'라는 믿음이 우리를 더 나은 대화로 이끌어주리라 믿습니다.


부모라는 이름 뒤에 숨겨둔 저의 불안과 솔직하게 마주하는 것, 그것이 아이와의 대화를 여는 진정한 첫걸음이 아닐까 고민해 봅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통해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요.


참고: 가족 체계 이론의 권위자 머레이 보웬(Murray Bowen)은 부모가 자신의 불안을 자녀에게 전이시키지 않고 스스로 다스릴 수 있을 때, 자녀 또한 독립적이고 건강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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