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가 변해도 나는 나니까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에서 눈사람 올라프가 '여름'을 노래했다. 잊을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여름을 좋아하는 '행복한 눈사람'은 내 삶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올라프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다. 그의 유쾌함과 순수함은 내 삶의 지향점과 닮았다.
올라프는 긍정과 낭만의 아이콘이다. 사람들은 올라프를 좋아한다. 올라프를 보면 미소 짓게 된다. 내 스타벅스 닉네임도 '울라프'다.
올라프가 부른 노래, ‘In Summer’ 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I'll find out what happens to solid water when it gets warm!
난 더우면 얼음이 어떻게 되는지 볼 거야!
고체화된 물(solid water)이라는 표현에서, 올라프는 자신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열기를 만났을 때 자신이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라프에게 뜨거움은 자신을 녹여 없어지게 만드는 위기가 아니다. 자신의 상태를 변화시켜 주는 환경이자 본질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올라프가 그리는 뜨거운 여름의 낭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고체화된 나. 나는 알게 모르게 굳어져왔다. 생각과 사고도, 업과 일도, 역할과 책임도. 그런 나에게 '비전 상실'이라는 뜨거운 감자가 주어졌다. 이런 삶의 고민은 나를 소진시키지 않는다. 나를 사라지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나의 고민은 눈사람이 느끼는 여름의 온도와 비슷하다. 위기가 아니다. 상태가 바뀌는, 본질로 돌아가는 여행이다. 올라프가 '자유로운 상태로의 회귀'를 노래했던 것처럼.
일이 재미없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허무함을 느낀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괜찮다. 형태가 변해도 나는 나다. 우리의 상실과 실패는 또 다른 '형태의 변화'를 만든다. 그래서 올라프의 노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눈사람이 여름에 더 쿨해진다는 표현도 좋다. 쿨해진다는 표현은 더 멋져진다는 뜻이다. 더 나다워진다는 뜻이 함께 전달된다. 단어가 가진 중의적 의미를 노래에 실었다. 기가 막히게 녹였다.
Just imagine how much cooler I'll be in summer.
정말 멋질 거야 여름날 눈사람.
눈사람은 여름이 오면 사라진다. 하지만 올라프에게 여름은 소멸이 아닌 '가장 나다워지는 계절'이다. 여름에 더 멋진(cooler) 내가 될 거라고 한다. 이 역설적인 순수함은 무거운 현실을 위로한다. 눈사람에게 여름은 고통일 수 있다. 그런데 고통을 노래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여름보다 겨울을 더 무겁게 여긴다. 드라마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에서는 이 무거움을 Winter Is Coming으로 표현한다.
겨울은 두려움과 무거움을 내포한다. 몸이 움츠려든다. 겨울에 존재하는 눈사람에게는 여름이 겨울이다. 여름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 여름을 노래한다니 대단한 거다.
때로는 삶이 벅찰 때가 있다.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돈 때문에. 나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걱정을 먼저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덤으로 따라온다. 스트레스에 취약하다. 요즘은 근거 없이 타인이 나를 싫어할 것이라고 단정할 때가 있다. 나와 무관한 사건을 나 자신 때문이라고 탓할 때도 있다. 나는 올라프처럼 노래할 수 있을까?
우리들에겐 각기 다른 여름이 찾아온다. 내게 찾아온 여름은 '비전 상실'이고 뜨거운 태양은 '타인의 시선'이다. 이제는 올라프처럼 노래하며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질 때가 되었다. 경직된 삶보다 좀 더 유연하게 살고 싶다. 조금 취약해진 모습도 괜찮다. 올라프와 함께 낭만을 노래하자.
The hot and the cold are both so intense, put 'em together it just makes sense!
뜨거운 거 찬 거 반대지만 한 군데 담아도 어울리잖아!
견디기 어려운 감정이나 여러 변화들을 피하지 않고, 그것이 내 삶의 일부임을 기꺼이 수용하자.
눈사람이 녹으면 없어지는 걸까. 아니다. 물이 된 눈은 땅으로 스며든다. 씨앗을 적신다.
형태가 사라져도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곳으로 흐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괜찮다. 눈사람이 녹아도 괜찮다. 이제 다시 설계할 땅이 준비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