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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루 Oct 28. 2022

9. 퇴사를 너무 두려워마

7년 차 직장인, 갑자기 일본으로 이주하기 

상황 1. 남자 친구랑 서울-도쿄 장거리 연애 중 (4개월째 못 봄) 

상황 2. 9월에 호기롭게 시작한 JLPT 2급 떨어짐 

상황 3. 회사 내 조직개편의 연속으로 상사들끼리 갈등 

상황 4. 일본 취업은 일단 포기하고 이직을 위한 면접 과정 진행 중 


위의 상황들이 22년 2월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장거리 연애의 끝은 기약 없이 이어졌고, 울며 겨자 먹기로 나름 서른에 시작해서 4개월간 벼락치기로 공부했던 일본어 시험은 보기 좋게 떨어졌다. 회사는 계속 성장과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고 사내에서는 이 팀, 저 팀 모든 팀에서 갈등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의 일상은 퇴근 후 스터디 카페에서 일본어 공부를 하던 일상에서 퇴근 후 스터디 카페에서 면접 준비를 하는 일상으로 변화하였다. 


엄청나게 불행한 일이 나에게 벌어진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인생을 살다 보면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으나, 나는 꾸준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쌓아왔다. 떨어져 지내는 연인, 준비하던 시험의 탈락, 살얼음판 같은 회사생활과 계속해서 진행되는 면접 과정. 뭐 하나 나에게 확실하게 보장된 미래가 없는 듯했다. 일단 시장에서 나의 위치나 알아보고자 시작했던 면접이었지만 그 과정을 진행할수록,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더욱 붙고 싶은 마음도 강해졌다. 기본적으로 2-3차면 끝났을 면접 과정이었으나 1차 면접을 마친 후 다른 팀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지원 팀 변경에 대한 면접을 추가로 보았고 또 마지막 면접을 마친 후에는 이 법인이 아니라 다른 법인에서 면접을 보는 게 어떻냐는 제안을 받으면서 총 5번의 면접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나를 괴롭히려고 세상이 안겨준 숙제가 아닌가, 내가 괜히 새로운 길을 만들어보겠다고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은 또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나에겐 연인과 친구, 그리고 가족도 있었으나 이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가 2-3개월 지속되다 보니 언제까지고 그들에게 반복적인 푸념을 할 순 없었다. 그래서 좀 더 내가 마음 편하게 나를 돌아보고 털어놓을 수 있는 심리상담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선생님이 나에게 해 준 이야기들이 있다. 


선생님 : 다솔님, 이직을 하고 싶은 이유가 뭐예요? 

나 : 지금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느껴져요. 저는 저를 더 동기부여시켜 줄 동료들과 일하고 싶거든요. 

선생님 : 지금 겪는 회사 스트레스가 이직을 한다고 혹시 없어질까요? 실은 어딜 가나 있어요. 원인을 타인에게 찾기보다는 본인 스스로에게서 찾아보는 것이 더 좋아요. 다솔님은 되게 고3처럼 살고 계시네요.

나 : 고3처럼요? 너무 힘들게 살아서요? 하하 전 그냥 매일 주어진 걸 열심히 하면서 사는 건데요. 전 열심히 사는 제가 좋아요. 

선생님 : 그냥 열심히 사는 사람이면 제가 굳이 '고3'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요. 일상에 마치 무언가 끝마쳐야 할 수능 같은 목표가 주어진 사람 같아요. 매일이 시험 보는 거 같다는 거죠. 스스로를 굉장히 채찍질하면서요. 원래 일본에 가서 생활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던 거 아니었어요? 

나 : 맞죠. 

선생님 : 일본에 가는 거에 대해서 지금 가장 걱정되는 게 뭐예요? 

나 : 제가 혹시나 일본에 가게 되어도 백수로 지내는 게 싫어요. 꼭 일을 하고 싶어요.

선생님 : 백수가 나쁜가요?

나 : 그렇진 않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면서 사는 건 싫어요. 좀 더 주체적으로 제 생활비는 제가 벌어서 제 한 몸 정도는 제가 건사하며 살고 싶어요.

선생님 : 하지만 지금 그 상황이 잘 안 만들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대학원이든, 이직이든 계속 다른 방법들을 찾아보고 계시죠. 그런데 다솔님은 안 되는 상황인데도 자기 자신을 너무 거기에 끼워 맞추려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거 같아요. 7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충분히 열심히 살았어요. 일본에 가서 잠시 백수로 지낸다고 해서 삶이 망가지지 않아요. 지금 있는 곳에 계시면서 그 안에서 다솔님이 원하는 상황을 바꾸려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이 모든 것은 처음 J와의 연애를 계속 꾸려나가고자 일본에서의 생활을 꿈꾸게 되었고, 일본에서 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던 프로젝트였다. 프로젝트의 킥오프로 일본어 시험 접수부터 시작하여 일본 대학원과 해외 취업 리서치 등을 하다가 그 과정에서 현재 회사에 대한 불만이 발견되어 이직까지 이어져오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같이 생활하게 된다면 당장 취업은 어려울 테니, 일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보며 지내는 것도 J가 가장 처음 제안해주었던 이야기였다. 다만, 내가 전혀 받아들여 볼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 몇 번의 입퇴사로 인한 공백과 프리랜서를 해보며 백수로 지내는 것이 잠깐은 행복하지만 장기전에 돌입할수록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지내볼까? 했던 작은 불씨가 인생에 크나큰 변화를 맞이할 사람처럼 큰 화재로 이어져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여전히 어떤 선택지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2-3개월 내내 종착점 없는 달리기를 하다 겨우 내가 달려온 길을 돌아보게 된 것 같은 순간이었다. 그래, 정말 일본에 가고 싶다면 퇴사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거야.라는 선택지도 같이 집어넣었다. 


심리상담의 좋은 점은 내가 어떤 상황과 어떤 스타일의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는지 혹은 편안한지를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그런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되거나 혹은 피하지 못하고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나의 불편의 원인을 알 수 있으니 원인 모를 분노 같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후 결국 W사의 면접 전형은 N사의 면접 전형으로 이어졌고, 3개월의 긴긴 대장정 끝에 결과는 최종 탈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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