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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루 Oct 28. 2022

8. 이주의 때가 아닐지도 몰라

7년 차 직장인, 갑자기 일본으로 이주하기 

"이주의 때가 아닐지도 몰라."


JLPT 시험을 한 달 앞두고 그즈음 매일 했던 생각이다. 아침저녁으로 일본어 과외를 받아도 실력은 계속 제자리걸음인 듯했다. 회사 출퇴근길에 들고 다니는 단어장에 일본어를 빼곡히 채워보고, 처박아두던 아이패드도 꺼내어 굳이 애플 펜슬까지 구입하여 일본어 연습장으로 쓰고, 이면지도 가득 들고 와 깜지도 해보고, 핸드폰 바탕화면도 일본어 단어장으로 바꿔보고, 퇴근하면 스터디 카페 가서 일본어 시험공부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러한 자잘한 노력들이 있었지만 대학교 이후로 워낙 오랜만에 하는 공부라 그런지 공부 요령도 모르겠고, 굳은 머리로 온전히 새로운 언어를 모두 집어넣으려니 쉽지 않았다. 분명 처음에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일본어 공부는 히라가나를 배우며 '나마비루 구다사이!(생맥주 주세요!)', '곤니찌와', '스미마셍' 등 그동안 드립으로 알던 일본어를 읽고 쓸 줄 알게 되어 딱! 거기까지만 재미있고, 가타카나와 한자를 공부하는 순간부터 매번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심지어 나는 대학생 때도 공부가 싫어 일찍 인턴을 시작했던 케이스가 아니었는가? 그때 못다 한 공부에 대한 벌을 지금에서야 받는 걸까 라는 생각도 했다. 집에서 쉬는 시간에도 일본 예능 등을 보면서 귀를 트이려고 했는데 가끔은 내가 무얼 위해 이렇게까지 하나 자괴감이 드는 날도 더러 있었다. 


일본 법인에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기업문화' 담당과 같은 같은 직무 자체가 없었다. 꼭 기업문화가 아니어도 그동안 내가 꾸준히 해왔던 '콘텐츠 기획', 혹은 '마케팅'분야는 너무나도 명백하게 일본어를 잘해야 했다. 그것도 센스 있게 잘해야 가능한 직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콘텐츠를 만들거나 마케팅을 하려면 트렌드를 잘 읽으면서 타깃이 호기심을 가질만한 키워드를 뽑아내고 센스 있는 워딩을 만들어내야 하니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다 보니 나 스스로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를 아무리 발휘해보려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았다. 잘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갑자기 떠나겠다며 이렇게 모든 에너지를 다 쓰는 이유가 무엇이었을지 지금의 나도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다. 이런 제안을 시작했던 J가 원망스러워 이유 없는 짜증을 내는 날도 수두룩했다. 이유가 어찌 됐든 지금 있는 곳에서 나와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계속 찾는 것에 몰두하다 보니 현재 일하고 있는 직무에 대한 애정도도 자연스레 떨어졌다. 아직은 내가 영어가 아닌 다른 외국어를 쓰는 나라에서 일하기엔 커리어가 준비가 안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고민은 금세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할까?'라는 마음으로 불씨가 번졌다. 



이쯤 되니 '일본 취업'이라는 팻말은 어느덧 '이직'이라는 팻말로 바뀌어있었다. 나는 갑자기 뭐에 홀린 듯이 이렇게 된 이상 이직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국내 기업문화가 좋은 중견기업들을 리서치하여 관련 직무에 서류를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대기업 법인이다가 최근 분사하여 독립적인 기업문화를 갖고 있고, 대기업 체제와 안정성을 갖추었으나 스타트업 정신으로 똘똘 뭉쳐 업계에서도 소문이 좋은 W사의 서류전형이 통과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류전형을 통과하고도 과제와 면접만 총 3차례를 진행하여야 했지만, 한 단계 한 단계 계속 통과할 때마다 일본어로 고단했던 마음과 판이 계속 바뀌어지는 회사생활에서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어디서든 인정받지 못한 '나'라는 존재지만 국내 시장에 나갔을 때 생각보다 먹힐 수도 있겠구나. 아직 내 커리어 인정받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어깨춤이 절로 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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