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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루 Sep 23. 2022

5. 히라가나도 모르면서 JLPT 1급

7년 차 직장인, 갑자기 일본으로 이주하기


아래는 내가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써 본 온갖 방법들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어와 친해져 보고자 노력했는데, 그 과정과 결과를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일본어 공부 체크리스트>

1. 온라인 일본어 강의 듣기

2. 주 2회 온라인 일본어 과외받기

3. 같이 일본어 공부할 친구 만들기

4. JLPT 시험 신청하기

5. 네이버 오늘의 회화 일본어 매일 1 에피소드씩 공부하기

6. 주변에 일본어 공부해 본 사람들 만나 조언받기

7. 넷플릭스로 <귀멸의 칼날>과 <테라스하우스> 보기


마지막으로 자리에 앉아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한지가 대학 4학년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러니 거의 공부와 담쌓고 지낸 지 5년이 지나버린 것이다.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조차 까먹어버린 게 아닐까 싶은 서른살이었다.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었는가. 언어 공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일단 유튜브에 '일본어 공부'를 검색하여 모든 공부법 영상을 섬렵해본 뒤에 온라인 인강 사이트에서 '쑥쑥 실력이 늘어나는 일본어' 인강 중 가장 저렴한 것부터 결제해 듣기 시작했다. 일본어 문자인 히라가나, 가타카나도 모르지만 초등학생 때 한자 공부했던 기억을 되살려 그림을 따라 그리듯이 연습장에 일본어를 따라 써 보고 시간 날 때마다 인강을 들었다. 인터넷 강의 수강 기간은 3개월이었고 일주일에 2개 정도씩만 들어도 충분한 양이었지만 결과는 처참. 3개월간 1/5의 양도 못 들은 채 오랜만에 로그인해보니 수강기간이 끝나버렸다.


이래선 안 되겠지 당연히? 라는 생각에 공부법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일단 같이 일본어 공부를 할 친구를 찾는다. 일본어 공부를 하는 큰 목표가 없으니 동기부여가 안되어서, 나와 함께 할 동지를 찾아야 했다. 일단 주변에 영어 공부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일본어 공부하는 사람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일본어를 하는 직원이 많은 회사에서 찾는 게 쉬울 것 같았다. 바로 옆 동네 친구이자 가끔 일본 출장이 있는 옆 부서 언니에게 물어봤는데 흔쾌히 좋다고 하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 언니는 이미 영어 과외도 받고 있었다. 사교육에 점철된 언니였기 때문에, 일본어 하나쯤 더 공부하자고 꼬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같이 할 동지를 찾은 후에는 숨고(숨은 고수)라는 어플을 통해 일본어 과외 선생님을 찾았다. 저렴한 인터넷 강의가 아니라 돈을 좀 더 내어 압박을 스스로에게 줘야 공부를 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니고 있으니 아침 이른 오전이나 밤늦은 시간에도 가능한 온라인 수업으로 찾았다. 숨고에 견적을 요청하니 5-6명의 선생님들이 제안을 보내왔다. 그중에서도 프로필 사진이 와인병으로 내 마음에 쏙 드는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부산에 살고 계시며 말투에서도 느껴지는 감성과 겸손함에 꽂혀 바로 수업을 요청드렸다. 첫 수업 날 부드럽고 겸손한 말투와는 반전된 덩치가 크고 수염을 멋지게 기르신 부산 사나이 남자분이 화면에 등장하셨다.


선생님과 줌으로 주 2회 오전 8-9시에 일본어 수업을 받기로 했다. 일본어 공부를 본격 시작하려고 하니 J가 그래도 목표를 설정해두면 좋지 않겠냐며 일본에서 주관하는 일본어 능력시험인 JLPT를 응시해볼 것을 추천했다. 1년에 딱 2회만 열리고 1-2급은 일본에서 취업할 때에도 일본어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했다. 목표는 클수록 좋다는 생각에 덜컥 1급을 목표하겠다고 J와 선생님께 말했고, J는 1급은 너무 높은 거 같다며 2급이나 3급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지만 이미 눈에는 의지가 활활 불타고 있었으므로 말릴 수는 없었다.



일본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동안 이자카야 갈 때마다 궁금했던 '야키토리', '부타동', '하이보-루'등의 단어들을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이 신났고, 무엇보다 "나마비루 이치구다사이(생맥주 한잔 주세요)"를 일본에 가서 당차게 외칠 생각하니 설레임에 소름이 돋았다. 일본에 가는 비행기는 막혀있지만 10년을 일본에 산 J 를 옆에 두고 내가 유창하게 이자카야에사 술을 주문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발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어는 한국어와 문장 어순이 닮아있어 쉽게 느껴졌다.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는 계속 눈과 손에 익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알아보는 글자들이 생긴다는 게 신기했다.


과외를 시작한 첫 주에는 같이 수업 듣는 언니랑 카페에 만나 자체 시험도 보고 복습도 했다. 서점에 가서 수업 교재도 아닌데 재밌어보이는 문제집도 사고 볼펜과 노트도 샀다. 마치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1학년의 기분이었다. 예쁘게 생긴 일본어 단어장이나 책도 구매했다. 내가 공부를 신나 하는 사람이었다니? (물론 예상하셨듯이 이 신남은 곧 사라집니다.) 그리고 서점에서 1급 단어장을 펼친 순간, 언니와 다급하게 회의에 들어간다. 1급 단어장에는 내가 평소에 회사에서도 잘 안 쓰는 고급 단어들인 '관중', '규격', '관록'등의 단어들을 마주했다. 갑자기 교환학생 갔을 때 토플 영단어를 외웠을 때의 숨 막히던 씁쓸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황급히 단어장을 접고 언니에게 진지하게 얘기했다.


"언니 우리 2급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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