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사람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은, 이미 과학적으로 충분히 증명된 말이다. 머리 속에서 안정적으로 행복을 느끼는 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굳이 무리해서 더 많은 것을 탐할 이유가 없다. 그만큼 내적으로 충족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 이르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한데, 여기엔 타고난 유전적 기질과 행복하게 지낸 어린 시절의 경험, 건강한 신체와 정신 등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욕심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먼저 건강한 욕심은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도전해서 이룰만 한 것, 혹시 이루지 못하더라도 금방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을 뜻한다. 반면 지금 현재 상태가 매우 불안한 경우, 내적으로 채워진 느낌이 들지 않을 때 솟아오르는 욕심이 있는데, 이는 상당히 비현실적 욕심으로 건강하지 못한 욕심이라 할 수 있다.
불건강한 욕심엔 과도한 사치와 허영, 특정 대상에 대한 집착, 남을 어떻게든 짓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공격적인 욕망 등등이 있다. 현재가 불만족스럽고 내면이 공허하니 불안해지고, 이같은 불안은 현재 상태를 서둘러 바꿔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조급함이 불건강한 욕심을 낳는다.
이를테면 장기간에 걸친 노력으로 차곡차곡 성취를 해서 인정을 받기 보다 당장 값비싼 사치품을 구입해서 인정 받으려는 욕망, 좋아하는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 돈으로 마음을 손쉽게 구입하려는 욕망, 남들이 외면하는 길이라도 자신에게 맞는 길이라는 판단이 들면 그 길을 꾸준히 가려는 자세 보다 대세의 흐름에 휩싸여서 얻어 가고 싶어하는 욕망 등등이 바로 조급함에서 나온 불건전한 욕심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그런 욕심 자체에 대해, 그리고 그런 욕심을 가진 사람이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그런 욕심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머리 속 행복 회로에 이상이 생겨 행복을 충분히 느끼지 못해 불안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비난을 받기 보다는 '정상 상태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마치 사고가 나서 다리가 불편해진 사람이 정상이 되기 위해 재활 훈련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면 왜 비난을 받을까?
이는 그 사람이 '불행한 상태' '이상이 있는 상태' 라는 것이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다리가 다치면 모두가 알아보지만, 머리에 이상이 생긴 경우는 알아보기 쉽지 않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불건강한 욕심을 가진 사람은 이중으로 고통을 받게 된다 - 1) 그 욕심을 부려서 원하는 것을 결국 얻지 못하므로 2) 남의 비난을 받으므로
돈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많은 돈을 얻어도 이번에는 다른 부족한 것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애초에 문제는 불안한 뇌, 내적으로 채우지지 못한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높은 자리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가진 사람 역시 아무리 높은 자리를 얻어도 이번에는 다른 것이 눈에 거슬린다.
자기 자식에게 과도한 기대를 걸어 좋은 학교나 좋은 직업을 갖기 원하는 부모는, 자식이 결국 그 목표를 달성해도 그 다음 또 맘에 안드는 구석들을 자식에게서 발견한다. 근본 문제는 자식이 아니라 마음이 불안하고 불행한 부모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 자식이 나중에 성공해서 좋은 배우자를 얻어 자녀까지 낳으면, 이번에는 자식의 배우자 혹은 손주들이 마음에 안들기 시작한다. 머리 속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모든 것은 자기 마음의 문제다' 라는 종교적 가르침은 어떤 면에선 꽤 과학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런 종교적 가르침이 놓친 것은, 그런 마음의 문제를 스스로의 노력이나 의지로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뇌의 문제에 대해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그런 뇌 속 회로의 이상을 발견하고 고치는 방법은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