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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인 May 07. 2024

특이점 신화를 깨부수다. 사실상 커즈와일 때리기

장 가브리엘 가나시아, 『특이점의 신화』, 글항아리사이언스, 2017.


“파국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장삿속이다.”


저자는 특이점이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 특이점 가설의 근거를 검증하고 그 의미와 진실, 윤리 및 정치와의 관계를 알려주려고 이 책을 썼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특이점 개념의 유래와 한계를 설명한다. 특이점은 무어의 법칙이 영원히 계속된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이 전제에는 네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는 귀납적인 성격의 이 법칙을 무제한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인 문제. 둘째는 소형화와 추진 같은 물리적인 한계. 셋째는 경험적으로 종합된 자료에 불과한 이 법칙을 고대 생물 종의 진화와 비교하는 것의 문제. 넷째는 연산 능력의 증대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중반부에서는, 강한 인공지능 같은 분야가 스스로 인공지능이라 칭하고 있는 현상을 ‘가상 假像’(실물처럼 보이는 거짓 형상)이라는 용어를 빌려 설명한다. 왜냐하면, 본래 의미에서의 ‘강한 인공지능’과 ‘인공지능’은 목표와 방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저자는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데 기초를 둔 과학의 한 분야였던 것이 지금은 논증에만 기초한 철학적 접근법이 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어서 또 하나의 가상인 그노시스주의와 특이점의 주요 특징을 비교하며 네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첫째, 자연을 바꿔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는 점. 둘째, 논리와 이야기를 혼합한다는 점. 셋째, 극단적 이원론. 넷째, 시간의 단절이 바로 그것이다.


후반부에서는, 특이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미래관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에 관한 다양한 인식과 비교하여 그 유사점과 차이점을 살핀다. 특히 시간을 형태로 취급하여 시간의 테두리, 한계, 단절, 경계선에 주목함으로써 특이점 이론이 결정적인 단절. 즉 파국이라는 전환점을 상정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결국, 저자는 특이점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진정한 미래를 숨기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이점 주장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정치권력이 누구에게로 이동하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장가브리엘 가르시아’가 쓴 <특이점의 신화>가 인공지능의 미래에 관한 합리적인 관점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논리적이고도 균형 잡힌 시각에서 기술적 특이점의 한계를 알려주는 매우 유익한 책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첫째, 특이점의 근본적인 한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 비판. 과학적 증명이 빠진 인식론적 오류. 여러 가지 모순들. 특이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헤치려는 노력은 무척 설득력 있다. 바로 직전에 읽은 책들인 <특이점이 온다>, <슈퍼인텔리전스>, <라이프 3.0>의 저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오히려 이런 점이 좋았다. 이 책은 비판이 논리 정연하면서도 기존 저자들과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또한, 쉽고 분량이 매우 적으면서도 벽돌 같은 책들(앞서 언급한 3권)을 압도한다. 진흙을 파헤쳐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다. 


둘째, 시간에 관한 인식이 무척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물리적 특이점은 공간에 주목하는 반면 기술적 특이점은 시간에 주목한다. 저자는 시간을 둥근 고리(영원 회귀) 시간, 분절된 시간, 무한한 직선, 절단된 시간, 인간의 자유를 고려한 시간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시간의 구분은, 단일 미래가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의 미래 가능성을 탐색하게 해 준다는 측면에서 미래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셋째, 특이점이 가리고 있는 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이점을 선전하는 기업의 목적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가려진 미래. 즉 국가권력에서 초국가 기술기업으로 권력이 이동하는 과정을 그림 그리듯 독자에게 보여준다. 저자가 가진 생각의 폭과 깊이가 놀랍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왜 이런 좋은 책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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