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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요니 Dec 15. 2020

스트레스 없는 삶에 대한 스트레스

시간 강박에 대하여

 포카라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흘렀다. 분명 지루한데 쏜살같이 지나갔다. 이곳 사람들은 시간에 대한 강박이 없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산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뿐이다. 매일 같은 날들을 지루해하는 나에게 정하 다이는 낚싯대를 빌려주셨다. 살면서 처음 던져보는 낚싯대였다. 미끼를 건 낚싯대를 던져놓고 기다린다. 한 10분 지난 것 같은데 입질안 온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걷어올려본다. 너무 오래 기다렸나, 이미 떡밥물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다시 떡밥을 바늘에 뭉쳐놓고 던진다. 여전히 입질안 오지만  금방 건져 올린다. 이번떡밥 그대로 붙어있. 물고기가 근처에도 안 왔나 보다. 좀 더 인내심을 가져보기로 한다. 입질이 올 때까지 기다. 20분쯤 지났나. 낚싯대가 살짝 움직인 것 같아  한 번 건져 올린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없다. 움직이는 것 았던 건 기분 탓이었나 보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낚싯대를 던지고 다시 건지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순식간에 하루가 다 갔다. 나만 물고기한 마리도 못 잡았다. 대나무 막대와 낚싯줄을 돌돌 감아놓은 페트병들 사이에서 나 들고 있는 번듯한 낚싯대가 민망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성과 없는 시간들이 흘렀다. 성과가 없는 시간들은 시간낭비 느껴졌다. 결국 삼일 만에 시간낭비는 그만하기로 한다. 그 후로 다시는 낚싯대를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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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을 때는 젊음이 소중한 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젊었어도 걸 잘 알았다. 예쁘장한 또래애들이랑 술이나 퍼마시는 게 젊음의 즐거움인 줄 아는 애송이들은 모른다. 그게 젊음의 특권의 다가 아니라는 것을. 다니던 대학교가 집이랑 멀었다. 그래서 방과 후엔 주로 집 근처에서 활동했다. 또래들이 동아리 활동한답 치고 술이나 퍼마시는 동안 나는 지역 말아톤 동호회에서 활동했다. 동호회에서 우리 엄마가 거의 막내였으니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어렸겠는가. 막내도 이런 막내가 없었을 테니 사랑을 듬뿍 받았다. 마땅한 이유도 없다. 내 선배들이 석사 자리 하나 달라고 아부하는 교수들이 나를 지켜 세웠고, 내 선배들이 '주인님 일 좀 시켜주십시오' 하며 굽신거리는 연습을 하는 동안 그 주인님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젊었을 때 한 미모 했을 것 같은 이모들은 내가 그렇게나 예쁘단다. 받아쓰기 100점 받은 아이에게 '판검사 해야겠다' 같은 격의 말들이었지만, 그 말들은 내 미래를 설레게 했다. 청춘들은 그들처럼 되기 위해 젊음을 희생하지만, 그들은 되려 젊음을 부러워했다. 젊다는 건 그토록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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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사회적 책임감을 느낀다. 그래서 언제나 친절하. 젊은이들에겐 아있는 미래가 길고,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그래서 살아온 날들에 대한 성과보다는 앞으로 남은 날들의 가능성을 높히 산다. 대단한 어른이 되고 싶었던 젊은 날들에 남들보다 열심히 젊음의 특권을 누리려 애썼다. 대단어른들 강연을 따라다니고 강연이 끝나면 기다렸다가 명함도 받아오곤 했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기특해했다. 덕분에 또래들이 뒷고기나 구워 먹으며 과팅이나 하는 동안, 나는 소고기 어먹으면서 유익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다. 여기까지만 듣고 보면 훌륭한 어른들의 가르침을 받아 청년 성공 신화가 되었습니다, 하는 결이 자연스럽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성과 없는 어른이 되었다. 애송이로 여겼던 친구들이 사회에서 번듯이 자리를 잡아가는 동안에도 나는 성과가 없었다. 좋은 낚싯대를 먼저 잡아버린 바람에, 시간 인내하지 못하고 의욕만 넘쳤던 탓이다. 성과 없이도 사랑받을 수 있었던 젊은 날들은 속절없이 지나가고 이제 사회는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냉철하게 평가하는 나이가 되었다. 내가 별 성과 없는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마주하기 힘들 때면 나는 여행을 했다. 내 여행에 온갖 그럴듯한 말들을 다 갇다 붙였지만 결국은 그래, 네 말이 맞다, 현실도피다. 계절이 변하는 게 무서워서 여름만 쫓아다녔다. 일 년 내내 여름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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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을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탓인지, 젊을수록 시간 강박이 심하다. 곧 초등학교 입학하니까, 이제 중학생이니까, 고등학생이니까, 하는 말로, 어리다는 이유로 온갖 타당성을 갖다 붙여 쪼아댔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적엔,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 놓은 학습 스케줄러와 초시계가 유행했다. (현 고등학생인 남동생을 보니 아직도 이런 것들이 유행하고 있나 보다.) 하지만 이 곳의 아이들은 종일 낚시 하며 세월을 낚았다. 한참 배워야 할 나이에 학업에 게으르다, 생각하며 혀를 차다가, 공부해서 얻은 게 고작 주어진 시간들을 견디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꼴이라니, 스스로가 한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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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흐르면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성과들이 있다. 공부도 안 하고 학교도 안 간 남동생은 중졸 딱지를 떼고 고졸 딱지를 달았다. 입사하자마자 이직하겠다던 여동생은 코로나로 취업문이 더 좁아지자 그냥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뿐인데 경력이 일 년 더 쌓였다. 다들 별  일 없이 살던 대로 계속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뭐가 그렇게 스트레스인지, 삶이 그리도 힘들단다. 아무리 거저 얻는 성과라도 성과엔 스트레스가 따랐다. 저절로 쌓이는 성과조차 없는 나에게는 스트레스라도 없어야 마땅지만, 나에게도 스트레스가 없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다. 매일 맛있는 것만 먹다 보니 배고파지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나타나 주길 기다렸다. 삶이 힘들면 비록 성과가 없더라도 그 삶을 견뎌냈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안이 될 것 같았 때문이다. 스트레스에도 강박이 있는 나를 보니 행복해할 줄도 모르는 것 같아 내 삶에게 미안해진다.


"스무 살, 서른. 그런 시간 개념을 담당하는 부위가 두뇌 바깥 부분의 신피질입니다. 고양이는 인간과 다르게 신피질이 없죠. 그래서 매일 똑같은 사료를 먹고 매일 똑같은 집에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도 우울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아요. 그 친구한테 시간이란 건 현재밖에 없는 거니까. '스무 살이니까, 서른이라서, 곧 마흔인데' 시간이라는 걸 분초로 나눠서 자기 자신을 가두는 종족은 지구 상에 인간밖에 없습니다. 그게 인간이 진화의 대가로 얻은 신피질의 재앙이에요. 서른도, 마흔도 고양이에겐 똑같은 오늘일 뿐입니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


  내가 태어난 세상이 제일 난세라고들 하지만, 삶이 뭐 별건가. 그냥 사는 게 삶이지. 아직 진화가 덜 된 사람들 사이에 있다 보니 없는 스트레스도 일부러 만들어 받는 나는 진화된 생명체인가 퇴화된 생명체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극도로 진화된 사람들이 온갖 데이터를 들이밀며 세상이 어쩌니 저쩌니 하며 열을 올리는 동안, 진화가 덜 된 사람들은 그저 웃는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들썩이는 동안에도, 그들의 삶에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여전히 낚시를 하고 산과 호수를 바라보며,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내 알바 아니라는 듯이 살았다. 하늘길이 막히고 이동이 통제된 시대 진화가 덜 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니 마치 석기시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언론에서는 코로나가 변화의 흐름가속화시킨다며 떠들어댔지만, 나의 세상은 시간을 역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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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곳에는 저 높은 히말라야 산맥이 해저에 있었을 무렵에 생성된 조개 화석들이 돌멩이처럼 굴러다다. 수억 년의 흔적돌멩이일 뿐인데, 한세기도 못 사는 인간의 시간은 모래알보다도 못한 것이다. 그 모래알을 분초 단위로 쪼개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찰나의 순간일 뿐이다. 시간 앞에서 자만하지 않는 사람들과 고양이처럼 사는 이 곳에서의 시간은 다른 속도로 흐른다. 더 이상 시간을 피해 다니지 않아도 시간 멈춰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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