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3년 차
살면서 정신병원에 와보게 될 줄이야. 동생 덕에 처음 와본 정신병원은 상상과는 달리 동네 치과와 별 반 다르지 않았다. 깔끔한 인테리어도, 친절하지만 영혼 없는 간호사도, 대기 중인 환자들의 지루한 표정도 모든 것이 평범했다. 대기 손님이 많다는 것과, 그래서 예약이 필수라는 것이 다소 의아했지만, 생각해 보면 치과도 그랬다. 굳이 차이를 꼽자면, 상담실과 진료실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정도.
동생과 함께 처음 상담을 받은 날, 어쩌면 언제나 병원 진료에 긴장감이 높았던 동생보다 내가 더 긴장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모두가 만취한 술자리에서 혼자만 살아남아 술집 주인과 대면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난 취하지 않았지만, 알콜 농도 0%가 보증된 술집 주인은 나를 취한 사람으로 볼까, 아님 나를 정상으로 볼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의사를 대면했다.
동생은 치료를 위해 마주한 의사에게도 병세를 숨기고 있었다. 약이 싫어서였다. 의사는 약을 강요했고, 동생은 약을 거부했다. 약에 대한 부작용을 호소하면, 그 부작용에 대한 약이 추가되었다. 그렇게 약알의 개수는 점점 늘어났고, 또 그에 따른 부작용이 늘어나는 악순환이었다. 다크나이트에 나오는 '조커'가 먹던 알약이 8개인데, 당시 동생에게 처방된 약은 5개였다.
동생은 약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의사에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나더러 의사에게 그 사실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약을 먹었다고 거짓말한 건 지난 2년간의 신뢰를 깨는 일이라며, 그걸 의사에게 불어버리면 다시는 그 병원에 가지 않을 거라고 협박까지 하면서. 의사에게 동생은 수많은 환자들 중 하나일 뿐이었지만, 관계가 극히 제한적이었던 동생에게 의사는 사회생활의 거의 전부였다.
당연히 나는 첫날부터 의사에게 동생이 약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발했다. 아주 대단한 것 마냥 고자질하며 의사가 동생을 혼내주길 바랐지만, 의사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한 무덤덤한 태도였다. 나에게 동생의 이상 행동은 모두 '특별히' 이상했지만, 의사에겐 그저 전형적인 병의 패턴일 뿐이었다. 정신병 증상은 거의 모든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매우 보편적인 특징이다. 약을 거부하는 것도 그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고 동생이 약을 아예 안 먹는 건 아니었다. 그중에 먹고 싶은 약은 스스로 잘 챙겨 먹었다. 그 사실을 전하자 의사가 말했다. "그 노란 약만 먹지요?"
나름대로 열심히 관찰하고 탐구해 온 동생을 이미 다 꿰뚫고 있는 의사를 나는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그의 친절하고 나긋한 말투도 신뢰감을 더했다. 수많은 정신병자들을 상대하면서 평점심을 유지하는 의사가 처음엔 대단해 보였다가 점차 로봇처럼 느껴졌다. 친절한 말씨로 '앞으로 동생의 병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무서운 말을 하면서도 말에 어떠한 감정도 씌우지 않았다. 감정이 결여된 차가운 문장들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나를 한 번에 이해시켰다. 안정된 말투도, 명확한 진단도 너무 완벽해서 기계적이었다.
덕분에 내가 동생에 대한 분노와 걱정과 불안이 담긴 감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도, 동료 하지 않고 명확하게 해결책을 재시해줄 거라 기대할 수 있었다. 의사에 대한 신뢰는 나 자신을 안심시켰고, 그래서 편하게 솔직할 수 있었다. 반면 동생은 의사를 사적으로 대했다. 의사에게 너는 수많은 환자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몇 번이나 설명했지만, 동생은 의사에게도 병을 부끄러워 했다. 그래서 나로 인해 의사에게 자신의 병세가 까발려지는 것을 매우 불편히 여겼다. 점차 동생보다 나의 면담 시간이 더 길어졌다.
급기야 동생은 어차피 (약먹기 싫다는) 자신의 의사는 무시되고, 큰누나랑 의사만 말하는데 내가 굳이 있을 필요가 있냐며, 차라리 혼자 병원에 가라고 했다. 하지만 정신 병원에서는 상담이 곧 진료였기에, 환자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동생이 동행하긴 했지만, 겨우 얼굴만 비추고는 건물 밖으로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동생 치과에 보호자로 따라갔다가 동생 대신 내가 충치치료를 받고 있는 꼴이 되어버렸다.
나는 동생의 증상을 설명했고, 의사는 동생의 병을 설명했다. '병'에 대한 인지가 끝나자, 내 질문은 점차 보호자인 나의 역할로 옮겨왔다. 동생이 강박행동을 할 때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통제해야 하는지, 공감하고 이해해줘야 하는지, 어느새 습관이 되어버린 나의 말들이 동생에게 도움이 되는지, 병에 대해 언급하고 이를 각인시켜 주는 게 좋은 것인지, 등에 대해서.
이런 일은 상담 센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고등학교 때 다녔던 정신병원에서 엄마에게 인천에 있는 심리 상담사를 추천했다. 마침 그분이 동생이 다니는 학교 소속 연구원이라고도 했다.
처음 본 사람 앞에서 동생의 불안증세는 더 심해졌다. 내가 옆에 있는데도 상담 선생님 앞에서 강박행동을 했다. 나한테는 따박따박 잘만 따지면서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는 주뼛거렸다. 한참이 걸려 간신히 삐져나온 말들은, 그조차도 대부분 '잘 모르겠어요'였다. 답답한 마음에 또 내가 입을 열었다. 동생의 심리상담이었지만, 이번에도 동생보다 내가 더 많은 말을 했다. 동생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주관적인 말들을 상담사는 전문가답게 객관적으로 진단했다. 로봇 의사가 그랬듯, 내겐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첫 상담이 끝나고, 상담사는 엄마에게 상담 내용을 전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물었다.
"상담사가 뭐래?"
"강박증 자체가 불안증이 심해서 생기는 병인데, 동생은 그중에서도 불안이 많이 심한 편 이래.
단시간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고 최소 1,2년, 어쩌면 10년 이상 오래 보고 치료해야 한다더라."
"아, 그렇구나. 그럴 줄 알았어."
"근데, 상담사가 너도 같이 상담 치료받아 보라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