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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기 Mar 04. 2024

'유쾌'하게 대신 싸워드립니다.


2023년을 시작하면서 작성했던 글입니다. 


글의 마지막에 작성했던 올렸던 변호사 수임료는 여전히 상담하는 과정에서 다시 낮아졌고, 송무는 여전히 도망치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위해서 대신 싸워준다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개업을 하고 처음 수임했던 형사사건은 사기사건이었다. 성당을 다니는 할머니셨는데, 동종전과도 많았고, 이미 학교에도 2번이나 다녀오신 분이었다. 법리적으로는 사기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지만 피해자 역시 할머니를 이용한 부분도 보였고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었다. 돈이 없다고 하셨었는데, 돈이 없으니까 초짜변호사인 날 찾아오셨겠지라는 생각에 국선변호인 비용 정도의 돈을 받고 해드렸었다. 그랬더니 할머니는 본인 집 냉장고에 있던 오래된 공진단도 가져다주고, 맨날 나를 위해서 기도해준다고 하셨다. 공진단은 그떄 있던 사무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사무실 옮길 때 안가지고 왔었다. 결과는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했는데 2년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법정구속이 되었고, 찾아올 가족이 없다고 사무실로 편지를 보내서 구치소도 방문하고, 영치금도 넣어드리고 했었다. 그리고 해가 지나서는 사무실로 연하장도 보내오셨다. 연하장에 대한 답장은 하지 않았었다. 또 영치금을 넣어달라고 할 거 같아서였다. 그래도 처음으로 법정에서 변론을 해 본 형사사건이었고, 법정구속도 처음, 구치소 방문도 처음, 영치금 넣어본 것도 처음, 모든 것이 처음이어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던 사건이었다.


그 후로는 당연히 잊고 지냈었는데 3년전쯤 사무실 전화로 전화가 왔다. 그 할머니의 딸이었다. 위 사기사건의 피해자가 할머니에게 민사소송을 여러 건 걸어왔는데, 그 중에 본인도 함께 피고가 된 건도 있어서 찾아온다고 하였고, 할머니와 딸이 함께 사무실에 방문했었다. 5~6건 정도였고, 그 중에 3건 정도가 딸도 피고인 사건이었다. 그 중에 2건은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1건은 딸의 인감도장이 찍한 차용증과 인감증명서가 첨부된 건이어서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사실대로 어려울 것 같다고 하였더니 그래도 믿을 사람은 나뿐이라면서 해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래서 수임료를 이야기했는데 이번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그 돈을 다 주기 어렵다고 하셨다. 지금 같으면 절대 안하는데 3년 전만 해도 조금은 더 순수했었기에 거의 실비만 받고 진행을 했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건은 기각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기존 형사판결문에 기초하여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한 건과 딸의 인감도장이 찍혀있던 건은 예상했던 바와 같이 1심에서 졌다. 둘 다 별다른 방법이 없어보였는데 딸이 다시 사무실에 찾아와서 꼭 안이겨주셔도 되니까 한 번만 더 싸워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형사판결문에 기초한 건은 항소를 하지 않았고, 딸 인감도장이 찍힌 차용증이 있는 건만 항소를 했었다.


어제 항소판결이 나왔고, 우리가 이겼다(어떻게 했는지는 영업비밀이다). 딸에게 결과를 전해줬더니 너무너무 고맙다고 하였다. 내 첫 형사사건이 8년만에 완전히 끝이 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서 대신 싸워준다는 일은 참 거지같다. 특히, 나는 형사사건을 많이 하기에 고객들은 늘 나한테 너무 불안해서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을 정도라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들의 스트레스가 나한테 어느 정도 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결과가 좋게 나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고객이 소개로 오기에) 그 이후의 스트레스와 자괴감도 너무 심하다. 그래서 송무(재판)는 이제 정말 정말 그만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도 오늘과 같은 일이 있기에, 누군가를 위해서 대신 싸워준다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이제 설날이고, 진정한 새해가 시작된다. 참 올해부터는 수임료를 높였고, 돈이 없다고 하셔도 깎아드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그렇기에 2023년에는 더 유쾌하게 누군가를 위해서 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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