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옆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2010.2.21, 방글이 3세)

by Archur

방글이를 키우면서 세 가지 경계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세 가지가 아이의 삶에서 일부가 됐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첫 번째는 미술관과 박물관이다. 그래서 방글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미술관과 박물관을 데리고 다녔다. 물론 내가 더 보고 싶어서 그랬다. 그중 집 근처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가장 자주 갔다. 꼭 전시를 보지 않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기분전환을 하곤 했다. 두 번째는 도서관이다. 도서관이 아이의 일상 속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동네 도서관의 위치를 보고 집을 구했다. 물론 예산이 더 중요했다. 마지막 경계는 국경이다. 지금은 역마살 때문에 '국경은 조금 느껴도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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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미술관 옆 동물원' 때문에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동물원과 서울랜드로 들어가려는 차량 행렬에 같이 서 있어야 한다. 반갑지 않은 일이다. 청계산 서쪽에 자리 잡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으로 오는 길은 거리에 비해 유유하다. 설계자 김태수는 방문객이 미술관으로 오면서 산등성이의 흐름을 따라 순차적으로 변하는 외부공간을 경험하기를 바랬다. 이를 위해 가능한 미술관 건물을 숨겼다. 이 과정에서 건축가가 떠올린 장소는 영주의 부석사다. 특히, 부석사 일주문에서 무량수전까지 단段을 이루며 산세에 적응해 가는 구성은 좋은 가르침이 됐다고 한다. 부석사에서 무량수전으로 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장면의 변화는 한국 전통건축의 백미로 꼽힌다.


그런데 김태수의 이런 의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방문객이 두 가지 행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 첫째, 동물원으로 들어가려는 차량 행렬을 함께 한 뒤 야외조각장 북서쪽이 아닌 제1주차장이 있는 정거장에 내려야 한다. 동물원으로 가는 스카이 리프트 중간 도착지가 있는 곳이다. 그다음 제1주차장에서 1시 방향으로 난 짧은 길이 아닌 3시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저수지를 끼고돌아야 한다. 그래야 단 위에 올려진 미술관의 정면을 바라보며 물을 건너 넘어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짧고 무엇보다 인지성이 높은 1시 방향의 길을 택한다. 그래서 설계자의 의도는 본의 아니게 무시된다. 결국 제1주차장이 꽉 차서 제2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차량에 탄 탑승자가 우연히 미술관의 정면을 봤을 때 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의도가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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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안쓰러운 상황이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으니 춥다고 칭얼거리는 방글이를 안고 그 동선을 한번 따라가 봤다. 물론 아내는 짧은 길을 통해 벌써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제1주차장에서 미술관의 한쪽 어깨가 보였다. 그러다 저수지로 향하는 길에 접어들자 저수지 옆에 심어진 나무가 미술관을 가렸다. 잠시 후 저수지 가운데, 미술관 정면으로 곧게 뻗은 다리의 시작점에 서자 대지에 순응하며 낮게 앉혀진 미술관이 한눈에 보였다. 아마도 설계자는 이 순간이 부석사에서 범종각을 나와 안양루와 무량수전을 한눈에 보는 순간이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서상우와 이성훈은 "산 중턱의 장소성을 고려하여 작은 스케일로 제어된 전통적 조형 이미지를 의도하고 있으며, 크고 당당하면서 주변 경관에 순응하는 건축이 시도되고 있다. 경사진 대지 형태에 순응하는 위계적 볼륨Volume은 전통건축에서 연유되어 온 기단 방식과 화강석으로 통일된 재료의 사용은 부드럽고 담백한 조형 표출을 하고 있다. 층층이 쌓아 올린 원통과 그로 인한 곡선의 조화 그리고 몇 개의 작은 개구부는 성곽을 연상케 한다. 이는 전통건축의 접근 효과와 유사한 개념으로, 수평적 구성이 수직적 구성으로 변화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장식을 배제한 대신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가 건물을 돋보이게 한다. 이와 같은 조형이 한국의 전통적 양식에서 서구의 진취성을 접합시킨 작가의 의도로 이해된다."라고 했다《한국 뮤지엄건축100년, 서상우&이성훈, 기문당》. 뭐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난 영주 부석사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설계자가 일부러 그랬다'라는 고의성이 너무 다분히 느껴졌다. 설계자의 의도를 위해 관람객들의 동선을 너무 심하게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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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가운데 놓인 다리를 건너 미술관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좌우측의 곡선 벽과 그 가운데 원뿔 지붕이 몇 개의 단이 겹쳐진 원통 상부에 올려져 있다. 평면에서 보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대칭이 아니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는 완벽한 대칭에 가깝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후 국내 공공건물에 유행처럼 쓰인 괴산석이 어떤 개구부도 없이 입면을 덮고 있다. 그래서 미술관은 마치 성벽처럼 보인다. 실제로 설계자 김태수는 건물 디자인의 기본골격을 수원 화성華城에서 얻었다고 밝혔다.


성벽이 떠오르는 형태에 좌우로 긴 건축물. 이 장면을 보며 겹쳐지는 건축물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완공 몇 달 전에 완공된 독일의 슈투트가르트 갤러리Stuttgart Gallery다. 영국 건축가 제임스 스털링James Stirling이 설계한 이 미술관은 완공과 동시에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았다. 슈투트가르트 갤러리도 '주변 환경과의 조화'라는 설계지침을 따르기 위해 건축물이 들어선 땅에 있었던 성곽을 떠올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너무 직절적이지 않느냐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큰 무리는 없다. 반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성곽과 전혀 상관이 없는 땅이다. 그럼에도 설계자 김태수는 왜 수원 화성을 가지고 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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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김태수는 "나는 개인적인 스타일이나 탁월한 건축을 창조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나는 매 프로젝트를 대할 때마다 그것의 물리적, 문화적, 역사적 조건을 발견하는 데서 비롯된 참신하고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찾고자 한다. 프로젝트의 물리적, 문화적, 역사적 조건 하나하나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의미와 존재를 작품에 불어넣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설계자가 외부공간을 전개하기 위해 차용한 부석사가 그렇듯 건축물 설계를 위해 가지고 온 수원 화성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과는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지 않다. 물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외부로 난 창은 그렇게 필요한 요소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런 특징을 전통 건축물인 성곽과 연관 짓는 건 너무 전통에 집착한 결과는 아닐까? 오히려 육중한 돌로 쌓인 수원 화성과 유연한 목구조로 열린 전개가 펼쳐지는 부석사가 너무 상반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투트가르트 갤러리 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떠오르는 공간이 또 있다. 우선 건물 동쪽에 세 개층을 관통하는 중앙홀과 양쪽에 배치된 1~6전시실에서는 파리의 오르세이 미술관O'rsay Museum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이 있는 경사로 코어Core에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뉴욕에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Guggenheim Museum이 생각난다. 물론,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경사로는 이동 공간 이기도 하고 전시공간 이기도 하다. 바로 이 부분이 뉴욕 미술계에 이슈Issue를 일으켰고 한참 후 이기는 하지만 혁신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경사로는 미술관 전체를 관통하는 이동 동선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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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처음 갔을 때 방글이는 자기가 보는 TV 프로그램 '뚜뚜데이지'에 나오는 집처럼 생긴 조형물에만 관심이 있었다. 온 세상을 다 뛰어다닐 듯한 기세를 보일 때는 경사로 코어에서 질주본능을 불살랐다. 언젠가는 다리 한쪽에서 미술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내게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부석사와 수원 화성 이야기를 꺼내려는 순간 방글이는 조각공원으로 달려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어린이 전시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 몇 번을 갔지만 방글이는 부석사와 수원 화성에 대한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아직 해보지 못한 일이 있다. 날씨 좋은 날 청계산을 한없이 바라보는 일이다. 시도를 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술관 옆 동물원과 서울랜드로 가는 행렬에 동참해야 했고 '내가 왜 굳이 여기서...'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른 곳으로 차를 돌렸다.


설계자: 김태수(1982)

주소: 경기도 과천시 광명로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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