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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chur Oct 21. 2022

정원을 품은 ‘같지 않은’ 백화점

더현대 서울, 서울

“정원이야? 백화점이야?”

2021년 2월, 서울 여의도에 대규모 백화점이 개장한다는 뉴스가 주요 일간지와 포털을 도배했다. 서울에 10년 만에 개장하는 백화점은 규모 면에서 서울 내 단일건물 중 가장 컸고 전국에서도 일곱 번째였다. 사전 개장일을 포함한 6일 동안 100만 명이 다녀갔고 누적 매출액도 372억 원이 넘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의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이 다른 백화점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우리가 백화점 하면 흔히 생각하는 모습은 상점과 그 사이의 통로 그리고 사람들로 가득한 에스컬레이터 정도다. 하지만 더현대 서울을 대표하는 사진은 나무와 조경시설 사이로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었다.

요새는 백화점과 쇼핑몰의 경계가 많이 희미해졌지만 두 판매시설은 태생부터가 달랐다. 백화점은 18세기 말 프랑스와 영국에서 시작됐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과 고급 디자인 용품을 즐기는 소비문화가 백화점 등장의 토대가 됐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르봉 마르셰(Le Bon Marché), 프랭탕(Printemps)이 모두 프랑스 백화점이다. 반면, 쇼핑몰은 1954년 오스트리아 태생의 건축가 빅터 그루엔(Victor Gruen)이 디트로이트 인근에 설계한 노스랜드 몰(Northland Mall)을 시작으로 미국 교외지역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건축적으로도 백화점과 쇼핑몰이 지향하는 바는 달랐다. 백화점은 고객들의 쇼핑 몰입도를 흩트리지 않기 위해 건물에 창을 만들지 않았고 시계도 설치하지 않았다. 반면, 쇼핑몰은 도심의 더럽고 위험한 길과 대비되지만 길의 속성은 유지한 일종의 모조 도시를 지향했다. 쇼핑몰의 가로등과 벤치 심지어 천장에 그려진 파란 하늘은 마치 방송 세트장 같았지만 고객들은 도시의 공공공간처럼 그곳을 돌아다녔다.

백화점과 쇼핑몰의 건축적 전략은 다르지만 목적은 단 하나다. 바로 고객들을 백화점과 쇼핑몰에 가급적 더 오래 머무르도록 하는 것이다. 판매시설의 층별 배치 전략 중 하나인 ‘샤워효과’와 ‘분수효과’도 고객들의 체류시간을 늘려 판매를 촉진하기 위함이다. 판매시설 상층에 영화관과 식당가, 사은품 증정 장소를 배치해서 고객들을 위로 유인하는 것이 샤워효과이고 아래층에 푸드코트, 식품매장, 행사장을 마련해 아래로 이동하게 하는 것이 분수효과다. 그런데 이런 전략으로 배치되는 집객시설들이 대부분 동일하다 보니 효과가 점차 감소했다. 실제 우리 주변 대부분의 판매시설 위에는 멀티플렉스와 음식점이 있고 아래에는 푸드코트나 대형 서점이 있다. 더현대 서울 5층에 배치된 3천3백㎡ 규모의 정원(Sounds Forest)과 6층에 배치된 갤러리(ALT.1)는 멀티플렉스를 대체하는 집객시설인 셈이다.


정원은 인간의 필요에 맞게 만들어 낸 자연이지만 그럼에도 핵심은 식물로 둘러싸인 녹색의 공간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인공의 요소가 가급적 배제되어야 한다. 더현대 서울이 품고 있는 정원도 비록 건물 안에 있다 하더라도 고객들에게는 야외 공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일단 그전까지 백화점 건물을 설계할 때 잘 쓰지 않았던 자연채광을 건물 안으로 깊숙이 끌어들였고 곳곳에 숨겨 둔 스피커를 통해 녹음된 새소리를 흘려보낸다. 무엇보다 건물 가운데에 있어야 할 기둥을 모두 없애서 인공의 요소를 최소화하고 개방감을 높였다.

건물에서 기둥은 상층부의 하중을 기초로 전달하는 뼈대 역할을 한다. 그래서 기둥을 없애는 일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더현대 서울과 같이 규모가 큰 건물에서는 특별한 구조적 처리가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지붕 위에 올려진 빨간색의 8개 크레인(crane)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현대 서울의 지붕은 철골이 삼각형으로 연결된 트러스(truss) 구조로 만들어진 세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려 880톤이나 되는 판을 지탱하는 건 판의 모서리에 고정된 줄이다. 이 줄은 크레인을 통해 네 줄로 나뉘어 건물 아래로 내려가고 최종적으로 벽체에 단단히 고정돼 있다. 지붕의 판을 연, 크레인과 벽체 고정장치를 얼레, 줄을 실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크레인과 줄을 고정하는 장치가 설치된 벽과 지붕은 정원이 있는 가운데 영역과 분리돼 있다. 마치 포장 박스 속 케이크처럼 가운데 영역은 별도의 구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가운데 영역에는 기계장치가 필요한 엘리베이터나 설비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화장실이 없다.

개점 1년이 된 더현대 서울의 성적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코로나 상황과 3대 명품 브랜드가 입점하지 않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획기적이라 할 수 있다. 더현대 서울의 1년간 매출액은 목표치를 초과해 국내 백화점 중 최고를 기록했고 방문객 수는 3000만 명을 넘겼다. 쇼핑을 통해 힐링(healing)한다는 ‘리테일 테라피(retail therapy)’, 점원이 없는 ‘언커먼 스토어(uncommon store)’, 관광지에나 있을 법한 포토 스팟(photo spot) 등 기존 백화점에서는 생소한 개념도 등장했다. 언론에서는 30대 고객이 37.6%로 가장 많고, 31세가 가장 높은 구매력을 보여주었다는 통계를 인용하며, ‘MZ백화점’이라 불렀고 매해 새로운 트렌드를 분석하는 교수는 고객들이 자신의 개별적인 특성을 찾고 투영한다며 ‘페르소나(persona) 공간’이라고 정의했다.


무엇보다 더현대 서울은 변화와 창조는 정통을 자처하는 중심이 아닌 다른 것들과 접해 있는 경계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백화점을 찾는 고객들의 목적을 상품의 ‘판매’에서 상품의 ‘체험’으로 전환시키고 있다. 더현대 서울을 둘러보면 백화점과 쇼핑몰, 정원과 미술관에서 느껴지는 공간이 떠오르지만 어느 하나가 확실하게 우월하지는 않다. 동시에 각 공간의 모습도 전형에서 벗어난 채 심지어 이미지적이기까지 하다. 더현대 서울은 백화점, 쇼핑몰, 정원, 미술관, 도시의 거리, 식물원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한 모호하지만 새로운 판매시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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